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정 May 16. 2021

나이가 들어서도 해야 할 것

워킹맘 이야기

벌써 작년 초 일이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으로 부모님 통장 공인인증서를 받아, 소득 감소 증빙 자료를 준비했다.

농협 통장 하나만 쓰고 계신 데다, 작년, 올해 자료에서 '소득'과 기타 내용을 분리하여 자료를 정해진 양식에 일일이 옮기는 거라 작업양이 꽤 됐다.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은 본인 핸드폰 인증만 하면 되는데,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은 국세청 홈택스 등에서 연소득 증빙 서류도 떼야하고, 소득 감소를 증빙하는 서류도 준비해야 한다.

소득 감소를 증빙하는 서류는 아래 3개 중 1개였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 VAN사 또는 카드사를 통한 신용(직불, 현금) 카드 매출액과 현금영수증 매출 내역

   ▲ POS로 확인된 매출액 내역

   ▲ 매출액 입금내역 확인 가능한 사업자통장(또는 은행계좌) 거래내역 사본 등


쓸데없는 오지랖일까 싶지만, 부모님께 동네분들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아무도 신청을 못했다고 한다.

다들 서울시 것만 신청했단다.

일단 동네 자영업자 분들 중에서는 부모님처럼 공인인증서가 뭔지도 모르시는 분들도 있었고, 있다 한들, 위 서류들을 준비하는 걸 겁내시는 분들이 많았다.

소득이 25%(연소득 5천만원 이하), 50%(연소득 7천만원 이하)만큼 감소했다고 증빙 서류를 양식에 맞춰서 내는 건 더더군다나 엄두를 못 내셨다.

부모님도 2020년은 둘째치고 2019년 통장만 3개라고 한다.

나도 2일 꼬박 걸려, 통장에 찍힌 내용들을 추려내서 정리했다.

이걸로 연차도 썼다.


저 작업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부모님을 은행에 보내서 공인인증서를 신청하게 하고, 다시 통장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너무 말을 못 알아들으셔서 갑갑했던 지라, 다른 분들은 도와준다는 말도 안 꺼냈다.

부모님도 나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지출? 까지 다 보이게 돼서 민망해하셨는데, 남들 통장 입출금 내역을 정리하는 건 오버다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소득이 줄고, 이런저런 지원금 대상이 될 일이 더 많을 텐데,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을 보면, 일단 이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걸 안 다해서 기본적으로 은행에 간다던가, 주민센터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셨다.

귀찮아서도 있지만, 막연하게 중언부언 말하면 혹시나 자기를 무시할까?라는 걱정도 하시는 것 같다.

아무도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잘해드리려고 애쓰는 은행 직원들이나 공무원들이 더 많을 텐데, 괜한 노파심 내지는 자격지심에 그러신다.


이것도 소득계층이나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것 같다.

조금 사는 형편이 낫던가, 내지는 좀 더 정보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것저것 잘 찾아보고, 자기에게 해당이 되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잘 사는 사람들일수록 장학금도 잘 타고 각종 지원제도를 잘 찾아 써먹는다.

부동산에 빠삭한 모 선배는 자기 재산은 일찌감치 자식들 다 주고 '임대아파트' 지원 자격 조건 맞춰 들어가겠다고 한다.

-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재능나눔플랫폼에 임대아파트, 장기전세 당첨법 같은 전자책도 있더라.


부모님은 이런 지원제도 대상이 되니, 제발 이렇게 좀 하자고 해도, 완강하시다.

이제는 말하는 나도 지치고 결국 언성이 높아질까 싶어 말도 안 꺼낸다.

- 단지, 두 분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정부지원금 받아보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두 분이 소신이 있어서 안받겠다는 마음이면 이해하겠는데, 그냥 막연히 하기 싫은 거다.


이것도 결국 어떤 마음으로 늙어가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나 몰라라 하지는 말아야겠다.

뉴스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우리 부모님 기준 '키오스크 같은 새로운 시스템'이 나오면 피하지 말고,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 쫄지 말고 한 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덤벼봐야겠다.

틀리면 좀 어떤가?


"나도 67살은 처음이야."

배우 윤여정의 말처럼, 세상은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이전 02화 믿어라. 이루어질 것이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