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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28. 2021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직장 생활 소고

회사에서 기간제 근로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계약 연장을 하려면 통상 한 달 반 전에 평가를 하고, 해당 내용을 가지고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아직 법제화는 안되었지만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당사자에게 재계약 여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젊은 친구들이야, 본인이 재계약을 안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계약 기간 만료 전에 더 좋은 곳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문제는 만 55세 이상의 고령의 기간제 근로자이다.

법상으로 사용기간 2년의 제한을 안 받으니, 2년 넘게 장기근속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게는 회사에서 정년 퇴임하고 다시 입사를 하신 베테랑들이시다.


회사 입장에서는 숙련된 저임금 노동자들을 기간 제한 없이 쓸 수 있어서 좋은데,

사실 이 포지션도 치열하다.

그러니 가능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옛날 분들이라 정말로 근면 성실하시다.

연차 쓰라고 해도 잘 안 쓰신다.

딱히 계약 종료 사유가 없다. 본인도 더 일하고 싶어 하신다.




이분들에게 이번 계약기간이 끝나면 종료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걸 누가 할 것인가?

현업 관리자가 하는 게 맞는데, 현업에서는 HR에서 하는 게 맞다고 우긴다.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HR입장에서는 그렇다.

이 분에 대해서 서류상에 나와 있는 내용 이외에 아는 게 없는데,

이분에게 계약 종료를 HR에서 하는 게 맞을까?

HR도 안내를 하긴 한다.

그런데 그건 현업부서에서 통보를 한 이후 행정절차 등에 관한 것들이다.


지난번에는 당연히 통보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퇴직 안내를 하는데, 대상자가 계약이 종료되는 지를 몰랐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퇴직 안내를 한 달 전에 했고, 대상자는 부랴부랴 부장을 설득해 1년 계약기간을 연장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을 겪으니,

HR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시 고민이 생긴다.

역할, 직위, 책임, 보상은 같이 가는 것이 아니던가?

인적자원관리에서 분명 그렇게 배운 것 같은데?

R&R 많이 강조하면서 왜 이럴 때는 빼는 것인가?

Role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Resposibilities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관리자라면 부서 관리는 본인이 해야지.

왜 그 책임을 안 지는 가?

만약 HR실무 담당자에게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통보할 권한이 있었다면,

내가 실무가 아니고 관리자였겠지.




결국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인 거다.

껄끄러운 말은 피하고 싶은 거지.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라도 그런 마음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회사는 조직이고, 조직은 위와 그에 따른 역할이 있는 걸.

막스 베버가 관료제의 열쇠는 조직이 부여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권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회사는 이윤추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조직된 단체다.

사람이 모인 곳은 맞지만, 목표 달성이 우선이 되는 곳이고,

조직 내 역할은 개인적인 권위가 아닌 조직이 부여한 권한으로 행사된다.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그런 건 개인적으로 술 한잔 하면서 풀길 바란다.

여기는 회사고 당신은 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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