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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03. 2021

팀원을 배려하는 팀장의 고민

직장 생활 소고

#1 김 팀장의 남 모를 고민

김 팀장에게는 어디 가서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다.

김 팀장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이렇다.

상사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팀장

조직원들에게는 실력과 인간미를 겸비한 사람

부하직원에게는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사람


이런 김 팀장이지만

막내 직원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막내 직원은 소극적으로 반항을 하는 스타일이다.

일을 시키면 "예"하고 대답은 한다.

물론 시큰둥하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으면

알아서 하고 있다는 식이다.

데드라인이 돼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물으면

하나도 되어 있지 않다.

그때 가서야 일이 벅차다고 토로한다.


그 벅차다는 일들을 보면

팀장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온다.

이런 기본 업무도 못하면 어떡하나?

데드라인은 정해져 있으므로,

막내 직원에게 급하게 파일을 받아서 처리하고

어떻게 처리를 하는 건지 설명을 해줬다.

그랬더니 막내 직원 왈

"이거 제가 또 볼 필요 있는 건가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냥 일을 하기가 싫고

책임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2 밀착형 감독이 필요한 유형의 직원

김 팀장은 실무 시절에는

업무 관련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자 애썼고

팀장이 된 이후에는 팀원들을 관리하고자

리더십 관련 세미나도 많이 참석했다.


허쉬와 블랜차드의 상황적 리더십을 보면

실력도 있고 의욕도 높은 팀원 → 내버려 둬라!

실력은 있는데 의욕은 낮은 팀원 → 참여를 시켜라!

실력은 없는데 의욕은 높은 팀원 → 잘 가르쳐라!

실력도 없고 의욕도 낮은 팀원 → 일일이 지시한다!


막내 직원은 실력도 없고 의욕도 낮은,

일일이 지시해야 겨우 일을 하는 타입이다.


#3 김 팀장은 리더십 이론대로 했다.

김 팀장은 막내 직원에게

구체적인 일을 하기에 앞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시범을 보이면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문서를 펼쳐놓고

이런 왜 이렇게 작성이 되었는지,

타 부서와 협조를 구할 때는

경중에 따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일을 하면서 터득했던 암묵적인 지식을 쏟아냈다.

일을 시작하기 앞서 Feed Forwarding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막내 직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냥 일하기가 싫은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일은 돌아가야 하니까

김 팀장은 전보다 더 꼼꼼히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진척 사항을 구두로 보고 받았지만

이제는 파일을 받아서 체크했다.

그랬더니 막내 직원이 대놓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한 번은 막내 직원이 재택일 때

바로 보고해야 하는 건이 있어 전화를 했다.

막내 직원은 자다 받은 목소리로

"누구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웠던 김 팀장은

"OO 씨, 팀장인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막내 직원은 여전히 졸린 목소리로

"아, 예..."라고 대답을 한다.


#4 김 팀장의 리더십은 잘못되었다.

김 팀장은 팀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한다고 여겼다.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타 부서에 앞서 유연근무제도 시행했고,

부담스러울까 봐 꼭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 아니면

부서 단톡방에 공지를 하지도 않는다.


김 팀장은 막내 직원을 뽑을 때 꿈을 되돌아봤다.

그녀는 대학은 그저 그랬지만,

학점이 4.5점에 4.5점 만점이었다.

이 정도 성실한 사람이라면,

꼼꼼해야 하는 업무에 적격이겠구나.

이 사람을 요 파트 전문가로 키우자!


팀원의 의욕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니까!

이 바닥에서 20년을 일한 본인과

당연히 실력 차이가 난다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팀장의 말을 잔소리로만 치부하고

생리적인 거부감을 유감없이 표출하는 막내 직원을 보니,

나의 리더십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5 김 팀장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재택 중에 자다 전화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김 팀장은 막내 직원을 불러다 타일렀다.

그리고 면담 결과를 기록했다.


면담 결과지는

김 팀장의 리더십을 반추하는 성장일기인 동시에

최악의 경우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당할 경우

참작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이리라.


#6 김 팀장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딜 가나 문제 있는 팀원이 있습니다.

팀장은 그런 직원들까지 안고

부여된 임무를 해 나가야 하는데요.


아무래도 '사람 좋은' 김 팀장은

지나치게 막내 직원을 배려한 것 같습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만약 김 팀장이 막내 직원에게,

좀 더 위협적인 존재였다면

저렇게까지는 안 했겠죠?


물론 우리나라는 해고가 쉽지는 않습니다.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인데,

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받기가 어렵다 보니,

업무를 태만히 하면서 태도도 나쁘지만,

자르기 애매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월급은 받으면서 그만큼 일은 안 하는 거죠.

어찌 보면 약은? 현명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7 내가 김 팀장이라면?

내가 김 팀장이라면,

처음에는 배려도 하고 업무도 잘 가르치겠죠.

그런데 싹수가 노랗다.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인다.

그렇다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배려하고 업무를 잘 가르쳐주는 팀장에서

조금은 불친절하고 결과만으로 평가하는 팀장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봅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미 짜증을 부려도 되는 팀장으로 찍혔거든요.


마지막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넘어가지 않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기록도 남겨놔야죠.

평가 시에는 최하등급을 주고,

본인의 소원대로 비교적 업무 난이도가 낮거나

책임이 적은 타 부서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할 것입니다.


타 부서에서는 폭탄을 받는 게 아니냐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약은 사람은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으므로

타 부서에 엄격한 팀장을 만나게 되면

조심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최선인 셈이죠.


물론 우리 부서는 업무가 잠시 과중되겠지만

저런 팀원은 차라리 없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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