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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an 10. 2022

'상처뿐인 영광'을 주장하는 사장님에게

직장 생활 소고

나는 7번 직장을 옮겼고, 업을 바꾼 것은 5번이다.

내 세 번째 업은 '비서'였는데, 당시 사장님은 '상처뿐인 영광'이란 표현을 즐겨 썼다.


"네 기준엔 내가 다 가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다 상처뿐인 영광이야."

사장님은 서랍에 가득한 차용증을 보여줬다.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면, 주변에 돈 빌려달라는 사람뿐이다. 차용증을 쓰긴 했지만 이 중 아무도 돈을 갚은 사람은 없다. 끊지 못할 관계라 빌려준 거지."

그 차용증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차용증과는 달랐다.

자필로 몇 월 몇 일 얼마를 빌렸고, 꼭 갚겠다는 내용을 쓴 '서약서'에 가까웠다.

그냥 구두로 돈 빌려달라고 하니, 이거라도 적으라고 사장님이 내민 종이에 마지못해 기한 없이, '꼭 갚을게'라는 다짐을 쓴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사장은 자기가 독해 보여도, 결국 서랍 가득한 차용증만 가지고, 떼인 돈도 제대로 못 받는 인간적인 면을 가진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사장쯤 되면 주변에서 워낙 떠 받을다보니, 주어가 없는 혼잣말 가까운 말을 잘한다.

듣는 사람을 고려하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는 주어와 목적어가 결여된 맥락 없는 말을 잘 던졌고, 나는 그가 캘린더에 메모해 놓은 흔적, 밥 먹으면서 우연히 한 말들을 유추해서 그의 스케줄을 추정? 해야 했다. 그는 스케줄을 나에게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스케줄을 놓치면 그건 고스란히 일을 제대로 못한 내 책임이었다.


사장의 대화법은 그러했다.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만의 독백, 그 독백이 자기에게서 그치면 좋으련만, 그 독백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오해를 해도 못 알아들은 자기 탓을 하며 가슴을 치기 마련이다.


윗분들 중에서는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의중을 알아채고 행동대장처럼 나서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씌우기 위해서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하는 영리한 생존 방식이다. 

자수성가형보다는 운 좋은 임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종종 보았던 것 같다.

자수성가형은 독불장군이지만 책임감이 강했다. 그들의 독백은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자신은 상처뿐인 영광이라 생각하겠지만, 자리가 변하면 사람이 변한다고, 유아독존인 사람을 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그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이라면, 추억에 기대서, 변한 모습도 그간 그럴만한 사정으로 이해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가족이 아니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지 않은가?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하니, 나를 좀 이해해달라는 말은,

나는 너를 배려하지 않을 테니, 너는 나를 이해해라라는 독선적인 말에 불과하다.


그 사장님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부족하다.

굳이 자기가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공감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안 그래도 내 주변에는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사람으로 넘치니 말이다.


일전에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에 대해 우리나라 출신에 외국에서 벤처캐피털 회사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이끌 고 있는 CEO를 인터뷰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분이 이야기하시길,

"영어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화자에게 있어요."

그래서 교수의 질문에 학생이 논점을 파악 못하고 엉뚱하게 답변을 해도 교수가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다시 풀어서 질문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수직관계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장님의 화법이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임금님은 벌거벗었대요!"라고 외칠 수 있으려면, 임금님에게 받아먹는 콩고물이 적어야 한다. 동화 속에서는 '아이'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동화이기 때문에, 설마 임금님이 순진한 아이에게 해꼬지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아이'라는 심리적인 안전장치를 둔 것일 수도 있다.


이전부터 우리 엄마가 했던 말이 있다.

"돈을 주는 사람과 너의 거리가 멀 수록 좋다."

- 그러니 공부해서 공무원을 해라.

사기업에서는 떡과 콩고물을 건네는 주체가 사장님이기에 엄마는 내가 공무원 시험을 보기를 내지는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셨다.


실업급여, 국민내일배움카드도, 사장님의 콩고물 위협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살기 위해 사회가 마련한 단체보험인 고용보험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제도들이다. 사회적인 안전망이 지금보다 도타워져야, 자기 할 말 하고 사는 당당한 직장인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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