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정 Jan 15. 2022

애사심을 운운하는 당신에게

직장생활 소고

나는 7번 회사를 옮긴 경력직이다.

첫 번째, 두 번째는 공채로 입사를 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내가 회사를 선택한다기보다는, 이리저리 물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그리 많이도 옮기게 되었다.

- 이것도 의외인 것이 사주 상 나는 뭘 옮기는 타입이 아니라고 한다.


기업 문화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회사의 규모가 크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을수록 '공채'라는 제도를 활용하여 회사에 뼈를 뭍을 사람을 뽑는다.

지금 다니는 곳은 사업의 특성 때문인지, 워낙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경력직 채용조차 없다가 10년 전에 경력직을 처음으로 분야별 공채 형태로 뽑았다고 한다. 그전에도 한 두 명 정도는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긴 한 것 같다. 내가 입사할 당시 경력직은 그 10년 전에 뽑힌 선배와 나보다 1년 빨리 입사한 사람 이렇게 3명이었고, 인사부는 총 8명이었다.


점심 먹고, 오후 일을 준비하는 데, 옆에서 팀장이,

"그 사람 경력이야. 나가려고 퇴직금 알아보는 것 같아.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없고."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출처 : Pixabay

나도 내가 용병 같다 느낄 때가 많긴 하지만, 팀장이 언급하는 "그 사람"은 회사의 목적 사업을 위해 영입한 사람이었다. 12년을 그 일을 열심히 최전선에서 해왔고, 건강이 악화되어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의 12년에 대해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니 당연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경력직이 바친 세월은 애사심과 무관하게 그냥 월급 값을 한 것일까? 같은 일을 공채가 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결코 애사심에서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와 달리 신입부터 여기서 일한 사람들이 애사심이 투철하다고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이전 회사 부장님은 장교 출신이었다.

인적자원관리 서적 첫 파트는 개론 이후 인사관리의 첫 단계인 "채용"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바이오 테이터'라는 개념을 배우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골 출신, 대가족 출신, 군 경력이 길수록 장기근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회사에서는 ROTC 공채를 별도로 뽑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파트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한참 궁금했던 시절이라, 우수한 인력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평가등급이 높은 사람의 바이오 데이터를 추출해야 한다며, 혼자 직원들의 등급과 그들의 데이터 간 상관관계를 돌려보고자 애썼던 적이 있다.

(데이터가 충분하지 못해서 유의미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유독 애사심을 강조하는 또는 애사심이 강한 사람들은 도시보다는 시골 출신이 많은 것 같긴 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에는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이 자기 딸을 죽인 이웃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음으로, 용서를 하고 공존하는 모습이 나온다. - 진정한 용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가족, 작은 마을과 같이 서로 부대낄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암튼 군 경력이 길었던 부장님은 '애사심'을 늘 강조했다.

그러면 나는 애사심 운운하는 사람들보다, 애사심이 없다고 주장하는 내가 일을 더 열심히 할 거라는 말로 응수했더랬다.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 자기 전문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회사에 더 큰 기여를 할 거라는 말로 말이다.

애사심을 운운했던, 전 회장님의 수행비서 출신의 다른 팀원들은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회장의 계열사로 도피했고, (부언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의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경력이 애매했기 때문에) 난 남았다.


내가 회사에 이렇게 했는데?! 회사가 자기를 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회사에 살신성인 한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 계발을 등한시하고 이리저리 밀려 자리만 지키는 경우가 없다고는 말 못 할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가 헌신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기는 공채 문화가 워낙 짙은 곳이라 그런지, 노조가 왜 경력직을 위해 같이 애쓰냐는 글이 노조 게시판에 버젓이 보인다.

분야별로 어떻게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는 파트에서는 경력직이 여기 출신들보다 훨씬 일을 잘했다. 다른 회사와 컨버팅이 불가능한 이상한 자체적인 제도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적어도 경력직은 시장에 팔리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언급한 그 사람은, 누가 뭐래도 회사의 중추적인 사업을 할 사람을 자체적으로 수급하지 못해 외부에서 데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경력직에 대해 잠재적으로 비난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 다른 회사를 가기 위해 여기를 그만두는 경우도 아니다.


그러니, 운이 좋아 그 시절 신입으로 입사한 것에 감사히 여기고, 애사심 같은 망발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듣는 경력직 기분 나쁘다.


이전 07화 답이 없는 것도 답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