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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Feb 26. 2022

나와 닮았던 사람

워킹맘 이야기

강신주의 '다상담'에 소개된 사연이다.

어려서부터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착한 딸이 '결혼'을 하려 하자, 엄마는 너 혼자 빠져나가려 한다며 비난을 한다.

이때 강신주가 건넨 말은 이렇다.


현실적인 제안을 하나 드릴게요. 지금 본인은 난파선에 타고 있어요. 혼자 빠져나와요. 나중에 한두 명이라도 건지려면, 그게 사랑이에요. 편하기는 그냥 바다에 빠지는 게, 같이 망하는 게 제일 편해요. 이 무슨 나약함이에요? 마흔이나 되시는 분이 이러면 안 되죠. 거기서 나와요. 욕먹어도 돼요. 기존 관계를 끊어야 새로운 관계가 가능한 거예요. 지금 관계는 부채로 휘말려 있는 관계잖아요. 나중에 이러다가 온 가족이 쓰러져요. 한 명이라도 육지에 나와 있어야 돼요. 배 위에서 빠져나와야 돼요. 그리고 잃어버린 건강과 자유를 제대로 되찾아야 해요. 누군가 구해 달라고 할 때 손 내밀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요?

<출처 : 강신주의 다상담 3>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강신주의 책들을 건넸다.

그의 글들은 거짓이 없다. '착한 척'하고 살 필요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말들일 수도 있겠지만, '착한 척'을 그만하고 싶었던 나에게 그의 글들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의 말에 다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구해 달라고 할 때 손을 내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부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흔히들 하는 비유처럼 기내 기압이 떨어졌을 때 산소마스크는 본인부터 써야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의 초점은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내가 소중하기에 '나부터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20대 초반, 나는 30대 중반이었다.

살면서 반복되어온 나의 못된 습관 중의 하나는, 내가 감당 못할 인연이면 뒤도 안 돌아보고 끊는다는 점이다.

나는 40이 되었을 때 그녀를 끊었다. 그것도 그녀 결혼식 몇 주 전에.


살아온 상황과 처지가 비슷하면, 성격도 비슷하다.

그 상황과 처지에 맞게 성격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녀나 나나 억척스럽다 내지는 독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봤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와 비슷해서 끌렸지만, 생활력 강한 사람들 특유의 억지스러운 자기긍정 내지는 자기합리화가 싫었다. - 나 역시도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남들 보기에 지탄을 받을지언정, 다른 핑계를 대서는 안된다.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을 '이용'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최소한 나는 너와는 다른 마음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영부영 챙길 거 다 챙기는 게 아니라, 고맙지만 같은 마음이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상대방도 알지만 혼자 감당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일 수도 있다.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놀리는 말 따나, '진지충', 내지는 '혼자 급발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해줘야 한다 주장하는 이유는, 그게 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쿨했다. 나는 쿨하지 못하다. 쿨한 게 추구해야 할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닮지만 닮지 않았던 그녀와 나,


"어린 사람은 무조건 잘해줘야 해요. 어떻게 클지 모르니까."

잘 키워서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아직은 사회의 초년생들이 어리숙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봐 넘겨주라는 의미로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아직은 어렸던 그녀를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도 내 감정을 올바르게 감당하지 못했다.

그 때나 지금에나, 그녀를 끊었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 느낄 뿐.

쿨한 그녀가 그것에 연연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출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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