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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Feb 26. 2022

ENTJ - 대한민국 사회와는 잘 맞지 않습니다.

워킹맘 이야기

요 며칠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코로나가 극성이라, 혹시나 싶어 검사를 하루 건너 한 번씩 받았다.

결과는 다 음성.

남편 왈, "그냥 늙은 거야."


작년 말부터 쭈욱~달렸으니, 그럴 법도 하다만,

다른 건 몰라도 매사 의욕은 넘쳤는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번 아웃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결국 회사-집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는 소파에 뒹굴 거리며 레오 도도랑 놀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이려니.


나는 일을 정해진 스케줄대로 하는 편이다. 사전에 장애요인을 정리해서 일정에 맞게 기계적으로.

그러다 보니,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을 하는 데 취약하다.

A-Z까지 계획을 해놔야 마음을 놓는 편이라, 그렇지 못한 상황이 올 때, 유독 마음이 힘들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음을 깨닫고 내려놔야 한다는데, 그러질 못하는 걸 보면,

마음이 어리다. 그릇이 작기도 하고.

그게 다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참고 꾸역꾸역 하고 있다 보니 번아웃이 온 것 같다.


MBTI로 보면 나는 ENTJ와 ENFJ를 왔다 갔다 한다. "J"로 끝나는 사람답게 계획적이고 성실하다.

- 성향이 이렇다는 거지, 이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성격은 주로 혼자 하는 일이 잘 맞을 텐데,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타고난 지도자"형으로 나온다.

남에게 관여하기 싫어하지만, 비효율적인 걸 못 참는다. 그래서 한두 마디 하게 되고 결국 그 일을 하고 있다.


유독 업무 스타일이 안 맞았던 상사는 '애사심'을 강조하시던 그분이었다.

https://brunch.co.kr/@viva-la-vida/261


(부장) "직원을 연봉계약만료일, 12.31로 맞춰져 있는 거 다 입사일자 기준 1년 단위로 바꿔놔."

(나) "작년에 개인별로 연봉적용기간이 다 달라서, 연말 기준으로 올해 인금인상률 적용해서 일할 계산해가며 일부러 12.31로 맞춘 건데요. 이걸 꼭 바꿔야 하나요?"

(부장) "실장님이 OO회사(경쟁사)는 그렇게 한다고 하잖아."

(나) "거기가 운영을 잘 못하는 게 아니고요? 게다가 **씨가 급여 맡은 지 얼마 안 돼서 실수도 많은데, 이건 실장님을 잘 설득해주시면 안 되나요?"

(부장) "넌 뭐 그렇게 일을 시키면 말이 많나?"


그분에게 나는 자기 할 말 다하는 직원이었을 것 같다. 할 말은 다했지만,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개인 입사일 기준으로 연봉적용일을 다 원복 했다. 그 회사는 나중에 다시 연말 기준으로 연봉기준일을 맞췄다고 한다.

그분에게 중요했던 건 실장님에게 잘 보이는 거였을 텐데,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걸 못 견뎌했다.

결국 시키면 할 거면서.


나중에는 그분은 내가 은근 마음이 약하다는 걸 눈치챘고, '명령'에서 '설득'으로 전술을 바꾸셨다.

사실 직장 일이라는 게 결국 '남의 일' 해주는 건데, 뭐 그리 '내 일'처럼 자기주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일이 내가 아닌데 말이다.


재미로 찾아본 MBTI의 성격 유형별 직장생활에서 ENTJ는 상사에게 제일 잘 대드는 유형이라고 한다.


꼰대와 같은 권위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이 저항하는 유형 중 하나로, 경우에 따라서 사회를 뒤집어엎는 경향을 가진 이들도 있는지라 대한민국 사회와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ENTJ 성향을 지닌 이들은 대체로 ENTP의 성향과는 다르게, 3차 기능인 Se(외향 감각)으로 오히려 체제에 최대한 순응하려고 하거나 순응하는 척 향후를 도모하는 등 좀 더 현실적으로 안정을 중시하며 치밀하게 움직이는 성향이 강하다.

<출처 :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NTJ>


벤처사업가이자 강연가, 작가로 활동 중인 싱가포르 항공 동기랑 나는 소싯적 명동 어딘가에서 사주를 봤다.

얼마 전 "이쁜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다가 동기가 생각나 전화를 했더니, 거기 어딘지 기억나냐고 다시 가보자고 한다. 동기도 그때 들었던 말이 잊히지가 않았나 보다.


동기에게는, "재주가 많아. 직업을 여러 번 바꾸겠어."

나에게는, "외국 가서 살아. 대성할 거야."

'전 이미 귀국했는데요?' 그리고 나는 '대성'하지 못했다.


나의 어떤 면이 그리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제대로 봤다.

대한민국 사회랑 잘 맞지 않는다는 말의 이면에는, '권위'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해서였을까?

고 3때는, 아이들 앞에서 두발 상태가 불량하다고 일으켜 세우고, 면박을 주던 담임에게 보란듯이, 그 다음날 스포츠 머리로 밀고 등교했다.


그날 바로 교무실에 불려 갔는데,

담임 왈.

"너 지금 나에게 반항하니?"

그 담임은 나중에, 그 일이 걸렸는지, 내가 또 반장이 될테니, 초반에 기를 죽여놓으라는 다른 선생님들의 충고에 따른 것 뿐이라는 말도 안돼는 소리를 했다.


담임은 내 수능 성적이 본인 마음에 흡족했는지,

수능 전날 자기가 돼지 꿈을 꿨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나도 아무 꿈을 안꿨는데 말이다.

자기 아들도 고3이지만, 내 생각이 나서 얼른 돼지를 자기 치마 폭에 감쌌다고 한다.

- 수능 보는 날도 아무 말이 없다가 결과가 나오자 본인이 돼지 꿈을 꿨댄다.

담임이 나에게 평상시 애정이 있었다면 모를까?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한번 오셔야겠다."


학기 초 담임은 엄마에게 자기도 진급을 해야 하는데 교장, 교감 선생님과 식사를 하려면 아무래도 비용이 드니 그걸 좀 부담해 달라고 했다. 엄마는 단박에 거절했다.

귀 밑 3cm가 안됐던 나의 단발머리가 두발불량으로 반 아이들이 다 보는 가운데 지적을 받은 사연은 그러하다.


없는 집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이런 사단이 난다.

엄마는 차마 돈을 보내기는 싫어 학교에 화분을 보냈다가, 결국 집요하게 전화가 오자, 담임에게 돈을 보냈다.

담임은 수능이 끝나고 엄마에게 한번 더 연락을 했고 엄마는 없는 살림에 황금 열쇠를 선물했다.

담임 입장에서는 왜 하필 내가 반장이 되어서, 돈 달란 소리를 굳이 자기 입으로 하게 하냐 싶었을 것이다.


부언하자면, 나의 고3 담임과 같은 사람은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사람이다.

살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런 분들 덕에 중고등학교 시절 학비 걱정 없이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제도적으로도 이런 선생님들이 버티기 어렵다.

내가 겪은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대학 동기들을 포함하여,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기에 혹시나 이 글에 오해할까 싶어 덧붙인다.


기득권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면, '권위'에 대한 반발이 덜했을까?

유독 '권위'에 대해 민감했던 것도 결국 나의 피해의식이었으려나?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된 이후에도 이리 삐딱한 걸 보면, 내 성격이고, 그래서 내 팔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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