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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Mar 03. 2022

아무리 명품이면 뭘 해. 사람이 안 받쳐주는데

워킹맘 이야기

후버맨 교수 채널을 듣다 보면 이 말이 자주 나온다.

"당신은 당신을 속일 수가 없어요."

"You cannot, simply cannot lie to yourself"


내가 나를 속이는 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한민국 채널 '인생의 변화는 말투에서 시작한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정신승리'와 '정신변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정신승리'는 아Q정전의 주인공과 같이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체,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정신변화'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긍정적인 면과 변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대학시절 행시를 준비하던 동기는,

"난 행시 공부가 재미있어. 즐기는 자는 이기지 못한다잖아?!"라고 했다.

딱히 내 대답을 요구하는 말은 아니었고, 나는 그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 속마음은 그랬다.

'오죽 공부가 힘들면 저럴까.'

그 녀석은 자기 세뇌를 잘 한 덕분인지 3학년 때 행시에 합격했다.

잘난척 대마왕이었던 그는 전공 수업시간에 행시를 공부하며 배운 이론을 들먹이며, 교수들이 뭘 모른다고 비난했더랬다.

- 무식하면 용감하다. 설마 박사까지 한 사람이 시험용으로 이론 몇 줄 외운 너보다 모르겠니?


그 녀석은 욕심쟁이였다.

'정신승리', 다른 이름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이유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척을 하고 싶어서다.

동물이 적에게 자기 몸을 부풀리며 센 척하듯이 말이다.

남에게 실제 자기보다 더 크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그 녀석의 어록 중 기억나는 몇 가지를 읇어보자면,

"형은 싼 옷을 여러 벌 사 입지만, 난 차라리 좋은 옷을 한벌 사."

"OO(다른 동기)이 생일 선물에 랄프로렌 셔츠를 선물했어. 나 이제 이 정도는 돼."


나는 속으로, '어쩌라고?'를 외쳤다.

나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건가?

나는 친구에게 명품을 선물할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는 건가?

나는 명품을 입는 인간이고, 너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왜 자꾸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규정을 하고 그 이야기를 남에게 강조하는 것일까?


대학시절의 나는 리어카에서 파는 5천 원짜리 셔츠나 당시 동대문운동장 야시장에서 옷을 사 입던 터라, 랄프로렌이 뭔지도 몰랐다. 나야 몰랐다지만,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명품이라고 그 유세를 떤 걸까?


"아무리 명품이면 뭘 해. 사람이 안 받쳐주는데..."

싱가포르 하우스메이트(동생)가 한 말이다.

쇼핑을 나갔다가 면세점에서 루이빅통 힙색을 한 배불뚝이 아저씨를 봤는데, 힙색 위로 배가 걸쳐져 있었다.

- 사람에 따라 명품 힙색이 가죽 허리 전대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 가는 내가 입은 옷이나, 내가 하는 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피상적인 관계에서야 관찰의 깊이나 기간이 짧아 그럴 수도 있겠다만, 오래 두고 아는 사이에서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 가'가 그 사람을 가장 잘 보여준다.

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저질렀던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지금은 그게 부끄러운 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 한다. 늙은 덕이다.

그 녀석처럼 나도 내 욕심에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를 했을 터인데, 내 일은 잘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아직 덜 늙었나보다.


그 녀석을 뭐라 할게 아니고 나를 뭐라 할 일이긴 하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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