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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May 15. 2022

자기 탓을 하는 이유

워킹맘 이야기

엄마는 가난은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나는 묘한 반발심이 생기면서도 일면 수긍이 가는 점도 있기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전날 늦게까지 과외를 하고 아침 일찍 자원봉사를 빙자한? 또 다른 알바(외국인 길안내)를 하러 나가는 나에게 엄마는 예의 새마을 정신이 투철한 한 마디를 하셨다. 열심히만 하면 웬만큼은 먹고 산다고.


당신 신념은 당신만 지키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나 같이 참았다가 폭발하는 성질머리의 딸을 두셨는지. 나는 가난은 구조적인 문제다. 가난하면 보는 시야가 제한이 된다. 그래서 더 가난해진다고 말했다. 가난은 단지 돈이 없어 불편한 게 아니라, 정보가 제한되고 정신이 위축되는 과정이며,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똑같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만 만나 더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열심히만 하면 먹고 산다. 엄마는 아까보다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똑똑하신 분이 왜 그러실까. 그 시대 분들이 유독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지만, 내 엄마라 그런지 나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공부하셨어야 했는데, 순진하신 분이 어쩌다 모진 사회에 나가서, 되지도 않는 신념을 지키시느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현실을 똑바로 봐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것이 아닌가?


판도라 상자 바닥에 남아있는 것은 '희망'이었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엄마는 붙잡을 게 '희망'밖에 없어서 '희망'을 붙잡는 걸까?


엄마는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사기를 당하셨다. 한 번은 모르겠지만 왜 두 번이나? 어떻게 같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거지? 엄마는 '사람은 믿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라고 생각한다. 호구 인증 여러 번 했지만, 내가 나를 믿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는 엄마처럼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Belief in a just world)'이 없기 때문이다. 노력한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결과값을 성공에 가깝게 두기 위해 애쓸 뿐이다. - 어린 시절에는 나도 모르게 세뇌가 되었지만, 지금은 확고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탓을 하는 이유는 탓할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 책임을 긍정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이유는 결과가 내 손에 달려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일상이 힘들고 바빠서였을까? 아니면, 열심히 해도 안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였을까? 엄마의 자기 탓은,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라고 불렀다. 동화가 권선징악인 것은, 사람들의 '희망'이 담겼기 때문이다. '인과응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현실은 법륜스님 말 따나 '인연과보'다. '인'이라는 원인이 '연'이라는 조건을 만나, 결과를 낳는 것이다. 베프는 '지 꾀에 지가 넘어지더라.'라고 말했다.


노력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사람을 믿어야 하는 게 아니라, 믿을 사람을 믿어야 한다. 초기에 감이 오면 피하는 게 제일 좋지만, 뒤통수를 한번 맞았다면 두 번 맞아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는 것은 기존에 가졌던 믿음을 깨기가 싫어서다. 나는 이것도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똥을 꼭 찍어서 먹어봐야 는 건가? - 이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나도 굳이 찍어 먹었다.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나는 엄마 탓을 한다. 엄마의 뿌리 깊은 올바른 사회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까지 내려왔다고.


얼마 전 읽었던 심리학 책에서 자기 탓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는 글을 읽고 놀랐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내가 밤늦게 안 다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자기 탓을 하는 이유는 통제가능성을 높이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걸 어떻게 자기 탓을 할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자긍심이 높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내 입으로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이 말이다. 할머니나 엄마나 지나치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뒤통수를 잘 맞았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돈을 벌게 아니라 공부를 해야한다. 타인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다. 남들도 자기 같은 줄 알아서다.


그 시절로 돌아가, 참았다 결국 하고야 말았던 그 말에 대해, 다시 말한다.


가난은 일상을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사치일 수도 있는 배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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