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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May 27. 2022

경험에 이름 붙이기

직장 생활 소고

시간이 약이다.

이 말을 믿으시나요? 시간은 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 일이 사소한 문제였을 때는 즉면하기보다는 묵히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상처들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닙니다. 해결되지 못한 상처에 대한 기억은 고장 난 테이프처럼 끊겼다가 이어지면서 재생을 반복합니다. 상처를 다시 헤집어놓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미완의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순환(Repetition Compulsion)이란 어릴 때 받은 상처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채우려고 같은 패턴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처 : 오은영의 화해) 매 맞고 자란 아이가 커서 자기 자식을 때린다거나,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했던 딸이, 아빠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합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지 않고, 꾹꾹 눌러놨다면, 사람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상처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결정합니다.(출처 :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지은이 기시미 이치로)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상처를 덮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살펴봐야 합니다. 내 안의 욕구는 무엇이었을까요? 상대방의 욕구는 무엇일까요?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이제, 내 경험에 이름을 붙입니다. 인생의 서사에서 지금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당신이 겪은 에피소드에 뭐라고 제목을 달 건가요? 일전에 저는 '엿 먹어라'라고 파일 하나 던지고 그만둔 직원분과의 일화에  "If they go low, we go high"로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이번에는 "타인의 숙제"라고 이름 붙이려고 합니다. 그 사람 내면의 문제는 그 사람이 풀어야지 내가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거든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버립니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상식이 있고, 일반적인 도덕 기준을 가졌습니다. 타인의 판단을 참고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습니다. 상대방이 무리한 부탁을 할 때, 내 인격을 모독할 때,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내가 거절했다고 상대방이 화를 낸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합니다. 그 사람은 나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닙니다. 식선으로 한 말에도 지나치게 화를 내던가요? 내 말이 그 사람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겁니다.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합니다. 이런 분들은 타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합니다.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지나치면, 상대방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내 기분이 좌지우지됩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관심의 초점을 남이 아닌 자신에게 두시길 바랍니다.


남 탓하지 않습니다.

남 탓을 하는 이유는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 탓을 할 수 있으려면, 내가 선택에 관여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결과가 나에게 돌아오는 일에 대해 내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남 탓은 그만합니다. 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직장에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신이 보복을 당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참고 있었다면, 그 사람과 얽힌 다른 일이 있어서 그만두질 못했다면, 이게 당신을 위한 최선인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외부의 조력을 찾길 바랍니다. 때로는 그만두는 것도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에 지나치게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나 싶나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런 의문은 왜 생기는 걸까요? 생각에 생각을 물고 따라가 봅시다.

상대방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내 생각과 다릅니다. > 내 뜻에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생각한 데로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합니다. 나는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건사하기도 벅찹니다. 

상대방의 선 넘는 행동을 봐주지 않지만, 상대방을 바꾸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접근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부모가 아닙니다. 어떻게 살지는 그 사람이 결정합니다.


10년 후에 당신은?

당신이 겪었던 고통이, 당신을 주저앉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반석이 되길 바랍니다. 전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무섭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더 사람을 겪어야 하는 건가? 의문이 생깁니다. 이제 좀 그만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이 되는 건 아마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잘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서사에 이번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봅시다. 10년 후에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것 같아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겸허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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