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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n 26. 2022

어쩌다 해본 명상

사람 사는 이야기

휴대폰을 뺏긴 김에?

토요일 아침, 전날 몸이 좋지 않아 조퇴를 한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코로나 검사는 역시나 음성, 약만으로 안될 것 같아 비타민C 수액을 맞췄다. 그 와중에 못한 과외 숙제를 들고 가 병원 대기실에서 풀고 있는 게 짠했다. - 미리미리 하지. 웹툰은 안 빠지고 보면서...


수액을 맞는 동안, 옆 침대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전 스마트폰 시간제한 설정을 동생(둘째 이놈)이 풀어주는 바람에 과외 숙제를 통으로 안 해간 일이 있었다. 본인 동의 하에? 폴더폰으로 바꿨다. 폴더폰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지라, 아이는 내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수액 맞는 거 기다리면서 유튜브 볼라 했더니만...


스마트폰을 뺏기고 나니, 수액을 맞는 한 시간 반 정도 할 일이 없었다.

헛,,, 명상을 시도하기에 최적의 상황이 아닌가?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 떠올랐다.

침대 커튼을 촤악~치고,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초침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지난 일 년 반 감정적으로 지치게 했던 사람과의 일이 떠올랐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마음이구나... 이 생각이 패턴으로 이어지면 안 되겠다. 다시 집중하자.

- 분노는 데이비드 호킨스에 따르면 낮은 수준의 감정 중 에너지가 높은 감정이다. 분노는 150, 슬픔은 75이라고 한다. 간혹 '분노'를 이용해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생각의 연결고리를 끊으려 한다.

아! 계속 생각이 나네. 이제는 머릿속에서 맞짱을 뜨고 있는 가상 상황까지 떠올리고 있다. 아마 내가 이 생각을 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 보다. 이걸 해결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감정을 이용하고 싶은 걸까? 내가 여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멍 때렸다.

아이가 아빠한테 카톡이 왔단다.

핸드폰을 받아 남편에게 한 시간 정도 톡을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시 가부좌를 튼다.

살짝 멍한 상태가 되자, 얼마 전 스님으로 사시다 출가하신 분 에세이 한 구절이 떠올랐다. 스님들도 명상하다 자기도 한다고. '이러다 조는 거 아니야?'라는 잡생각이 또 든다.


간호사가 잠시 들어왔다. 냉큼 가부좌 튼 다리를 내린다.

"어머니 오래 기다리셔야 하는데, 집에 가세요."

(큰 아이를 쳐다보니) "안돼"라고 말한다.


그래, 가지 말라는데 옆에 있어주자. 다시 가부좌를 튼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속으로) '나 꽤 잘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1분 정도는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잡생각에 연결고리가 생긴다.

자화자찬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얼마 전 읽은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내용이 둥둥 떠다닌다.

감정은 정동 반응이다. 감정(emotion)은 자극을 해석하여 행동(motion)을 하기 위해(e-이끌어낸다) 순간적으로 내리는 판단이다. - 정동 반응은 책에서 가져왔고, emotion의 어원은 출처가 묘연합니다.


감정은 자극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젠 자기 계발 코치 멜 로빈스로 이어진다. @에너지드링크 작가님이 추천한 '5초의 법칙'에서,

멜 로빈스는 무대공포증(불안)을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된 흥분으로 재해석하라고 권유한다. 탁월한 방법이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따르면, 감정은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연결고리가 생기는 군? 이거 글감으로 한번 써볼까?라고 또 잡생각을 한다.


이제는 to do list가...

다시 호흡...

저녁에 둘째 아이 친구 엄마들 보러 가는데, 뭘 챙겨가야 하나? 귀찮다. 그래도 2년 만에 다 같이 모이는 가족모임인데, 귀찮다 생각말고 가야지. 가면 신나서 놀 거면서. 큰 아이 잊지 말고 죽 시켜줘야지. 아! 아침에 빨래 돌렸지. 얼른 건조기에 넣어야 하는데, 집에 가자마자 건조기에 넣어야겠다.

그나저나 둘째는 친구들도 자기 비슷한 아이들로 사귀는군. 저렇게 학원 안 다니고 놀기만 하다, 쭉 노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네. 토요일이지? 레오 도도 화장실 치우는 날이군.


이거 명상 맞아?

명상을 제대로 하려면 어디 가서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그냥 한 시간 반 정도 혼자 잡생각 한 거 아니야? - 잡생각도 하랬어. 후버맨 교수님이 그랬다고. 당신도 집중이 안되면 그냥 이것저것 생각이 흘러가게 둔다고 했어. 우리 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화살 시위를 늘 팽팽하게 당길 수는 없잖아?


책한민국님이 어디서 명상을 배우신다고 했지? 다음번에 이야기하시면 메모해야겠다.

'명상 배울 시간은 있고? 저녁에 밥해야지.'

아, 아이들이 대학 가면 할 수 있으려나?


아이에게 핸드폰을 뺏긴 한 시간 반, 명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막연한 동경만을 가진채, mind valley과 주로 script 있는 헤드스페이스 어플, 유튜브만 기웃거린 초보자는 잡생각을 실컷 한 건지, 명상을 시도해본 건지 모른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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