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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l 03. 2022

엄마, 부끄럽다고.

사람 사는 이야기

이번 주는 워터파크

매주 일요일 둘째와 여행, 오늘은 강릉에 가기로 한 날이다. 장마철이라 비가 올까 걱정도 되고, 차 렌트하기도 귀찮다. 강릉행 기차를 취소했다. 그래. 워터파크나 가자.


전날 남편이 수영복이 들어가는지 한번 입어봐야 하지 않냐고 놀린다. 나는 늘어나는 재질이라 상관없다 주장을 했다. 남편 말을 을걸. 로켓와우로 위에 걸칠 거라도 주문했어야 하는데, 선명하게 드러나는 허리 타이어, 민망하군.


내 몸을 돛단배 삼아...

워터파크 가장자리에는 수로 같이 길에 이어진 물놀이 공간이 있었다. 한쪽에서 물이 나오는 건지, 가만히 있었는데 몸이 앞으로 밀렸다.

"이거 저절로 가는데?"

남편이 무릎을 바닥에 대고 가만히 있어보라고 한다. 오호... 무빙워크처럼 몸이 앞으로 저절 밀린다.

신기하네.

나란히 무릎을 바닥에 대고  'ㄴ'자로 만들고 가만히 있었다. 밀린다~밀린다~.

옆에는 튜브 끼고 물장구치는 아이들, 아이들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 수영을 시도하시는 어른들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출처 : Pixabay>


물에 닿는 체면적을 넓혀볼까? 배를 앞으로 내밀어 몸을 화살처럼 휘었다. 이거 돛단배 같은데? 몸을 돛삼아 보자. 배면 노를 저어야 하나? 손을 노 삼아 저어 본다. 헛... 더 잘 나간다.

배를 앞으로 내밀고 손으로 노 젓는 시늉을 하고 있는 엄마, 잠자코 보고 있던 둘째가, 못 참고 결국 한 마디 한다.


엄마 부끄러워. 하지 마.


넌 내가 부끄러운 거냐? 엄마가 손으로 노 젓는 건 눈에 안 띄었을 텐데...

넌 왜 걸핏하면 내가 부끄러운 건데?

사춘기냐? 흠, 사춘기 맞지.


엄마라면 모름지기 아이 사진도 찍어주고 같이 놀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가만히 앉아있기라도 하던가. 내 몸은 돛단배 타령이라니...'좋은 엄마' 기준에서 탈락 인 셈. 고작 몇 분이었는데. ㅜㅜ


사춘기 아이들은 남들 보기에 어떤지가 중요하다. 잘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눈에 띄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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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이 많다고 학교 오지 말라고 했던 사촌 동생이 생각나네.


아이가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 몇 가지


마트에서 포인트를 적립한다.

단골 고깃집에서 카톡으로 보내준 돼지 껍데기 쿠폰을 잊지 않고 사용한다.

네이버에 영수증 인증, 사진 올려주면 음료수 준다는 말에 냉큼 올린다.

교복 입으면 국수 무료란 말에, 아이가 체육복 반바지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편의점 가면 1+1, 2+1 가 없나 살핀다.


사소한 혜택에 연연하는 모습들이다.

"엄마, 비도 오는 데 택시 타고 와. 택시 불러줄게."라고 하는 녀석이니, 몇 원 포인트 적립을 하겠다고 키오스크에서 바코드 찍고 있는 엄마가 '쿨'하지 못하게 느껴질 밖에.


이 놈아, 네가 부모가 돼 봐라.

엄마도 쿨한 여자였다고! 너, 엄마도 택시 잘 타고 다녔다. 백날 말해봐야 무엇하리. 네가 자식 낳아봐라. 아끼고 아껴, 네 입에 고기 한 점 더 넣어주고, 옷 한 벌 더 해 입히려는 거라고.


그거랑 물놀이는 상관없지 않냐고? 상관있다. 이 놈아. 엄마도 엄마가 아니라 나로 있고 싶었거든. '좋은 엄마'가 아니라, 물놀이하는 '나'로 있고 싶었단다. 비록 몇 분이지만...

그리고 엄마도 쿨하게 적립 안하고 싶다고...라고 쓰려 하다, 적립하고 싶다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엄마가 잠을 줄여 가면서 기어이 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야.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이기 위해서, 나로 있어야 해. 그게 네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어. 엄마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일 거라는 점도 이해해. 네가 다 자라면, 엄마가 너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나'로 있었던 것에 대해 너도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을걸?...이라고 엄마 혼자 생각해본다.


한줄 요약 : 너는 내가 부끄럽다지만, 나는 그냥 이리 살란다. 너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면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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