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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01. 2022

일석이조, 일타쌍피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에서 미용실 가는 게 제일 귀찮다.


명절 전 연중행사로 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파마하기. 미용실 언니 꼬드김에 넘어가 몇 년 전 단발머리를 한 때를 빼고 내 머리는 대학 때부터 줄곧 긴 머리고 대부분은 펌을 했다. 하나로 묶는 게 얼마나 편한데...

손톱 관리도 안 한다. 승무원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매니큐어를 발랐다만, 의전으로 출장 갈 때를 빼고는 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손톱에 매니큐어가 벗겨진 걸 보면, 저 벗겨진 일부가 밥에 녹아있겠구나 싶다. 반곱슬이라 긴 머리도 생으로 유지하면 보기가 흉하다.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

1년 에 2번, 명절 전에는 파마를 하리라.


사십 대가 되니, 이제 흰머리가 문제다. 뿌염(뿌리 염색)을 해야 한다. 이건 두 달에 한 번씩은 해줘야 한다. 흰머리 보고 일 시키기 무서울라, 염색은 제때제때 해줬는데, 미용실 언니가 그만두고 새로운 원장님이 오시는 바람에 그 마저도 안 하고 있다. 어떡하면 뿌염을 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쿠*에서 효자 템을 발견했다. 머리를 감으면 새치가 염색이 되는 샴푸다.


큰 아이는 그걸 보더니, "도대체 저런 걸 돈 주고 사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했는데, 엄마였군."이라고 시크하게 말한다. 남편과 큰 아이는 다기능 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는 없다. 한 가지에 충실한 제품을 사용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 여기는 것 같다. 


일석이조, 일타쌍피, 이런 걸 좋아하는 심리는 무얼까?


얼마 전 저작권 관련 도움을 받았던 일로 사내 변호사와 부서 동료와 같이 점심을 했다. MBTI가 이야기 중 나왔는데, 둘 다 ESTJ였다. 나는 검사를 볼 때마다 ENTJ와 ENFJ가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ENTJ를 듣더니, ENTJ가 성격이 안 좋기로 유명한 유형이라고 한다. 궁금한 김에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성격이 나쁘기로 1위에 올라있다. 자기가 계획한 일이 있다면 그냥 밀어붙인다. 한마디로 정이 없다. 일은 같이 해도 친구는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다.


헛... 맞는 말이다. 계획 없이 일하는 거 싫어하고, 정해놓은 계획을 흐트러 뜨리면 화낸다. 싫은 소리를 잘 못해서 참을 뿐, 속으로는 이미 책상을 몇 번 뒤엎었다. 무엇보다 제일 싫어하는 건 사전에 정해놓은 규칙을 어기는 것과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효율성을 따지다 보니 업무 tool을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 우리 회사가 올드해서 아무도 나랑 같은 툴로 협업하지 않을 뿐... 프로그래머들과 일할 때만 공유문서를 사용하지, 부서에서는 웹페이지 긁어서 붙이기도 어려운 한글로 일한다. 회의록 정리를 굳이 회의 끝나고 해야 하나? 주제는 정해져 있고, 안건을 공유문서로 올리고, 회의하면서 정리하면 안 될까?라고 생각은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조용히 회의 끝나고 정리한다.


파마하는 데 티브이라도 틀어주지. 미용실에서는 철 지나간 7080 세대 가요만 주구장창 틀어준다. 결국 밀리의 서재를 열었다가, 집중이 안돼서 핸드폰을 내려놨다. 이건 고문이다. 2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머리가 끝났다. 드라이를 해준다는 말에 괜찮다고 덜 말리고 그냥 나왔다. 그래. 1년에 두 번인데 참자. 이제 뿌염은 새로 나온 샴푸로 해결할 수 있잖니?


한줄 요약 : 파마하기 싫은 이유는 그 시간 동안 의자 위에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미용실에 티브이는 필수다. ENTJ는 성격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놈의 효율성 때문에. 그래도 효율성을 추구하니 새치 감추는 샴푸도 찾은 것이 아닌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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