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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Nov 18. 2022

커피를 대체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사람 사는 이야기

밤 10시, 모든 일을 끝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 오늘 하루 잘 살았구나!' 자화자찬한다. 커피 향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카페인 성분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니 잠자기 6시간 전에는 카페인을 섭취하지 말라는 말에도, '나랑은 상관없어.'라고 말하며 자만했다. 머리로는 밤에 마시는 커피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마시는 커피 한잔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나는 폐가 튼튼해서 상관없어. 담배 안 피우면 오히려 스트레스 때문에 빨리 죽을 거야.'라고 말하는 심리랑 비슷하다. 한마디로 자기 합리화.

몇 번 잠을 설친 이후에는 밤에 마시는 커피는 끊어볼까 싶었다. 담배 피는 사람들도 담배에서 니코틴 없는 전자담배나, 니코틴 패치 붙이기부터 시작하지 않던가? 커피를 대체할만한 걸 떠올려 봤다.

1) 차, 2) 탄산수, 3) 향 피우기 요 세 개 정도가 물망에 올랐다.


1) 차

카페인 성분이 없다는 루이보스 차나, 지방을 분해해 다이어트에 좋다는 보이차를 마셔봤다. 루이보스티는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보이차는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밖에서 먹는 보이차는 살짝 단 맛도 나던데 집에서 내가 우린 보이차는 영 떫다. 결정적으로 차는 찻잎 특유의 뒷맛이 남아 나랑은 맞지 않았다.


2) 탄산수

요 근래 주로 마셨다. 물은 시원하지만 자극이 덜한데, 탄산수는 목이 따끔따끔하는 자극이 있다. 무언가를 '마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어쩌면 나는 덜 심심하고자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탄산수로 대체하는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나는 하루를 정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은데, 탄산수는 정적이지가 않다. 7~8월 한여름에 땀 왕창 흘리고 목이 타 벌컥벌컥 마셔야 할 것 같은 이미지다. 겨울이 다가오는 11월 중순에 밤 10시 넘어 마신다? 어울리지 않는다.


3) 향 피우기

냥이들은 사랑스럽지만, 냥이 똥 냄새는 고약하다. 베란다에 화장실을 두고 폴딩도어를 설치했다. 냥이들은 폴딩도어에 난 '냥이 문'으로 오간다. 폴딩도어로 막아도 똥 냄새는 솔솔 문틈을 파고 넘어온다. 이분들이 아무리 귀여워도 '호랑이 과'다. 고기로 과식하고 화장실 가면 맡을 수 있는 그 냄새가 난다. 게다가 본인이 서열이 높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똥꼬 그루밍을 하지 않는다. 엉덩이에 묻히고 간지러운지 거실 바닥에 똥 스키를 탈 때도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에 가끔 향을 피우는데, 이게 똥 냄새를 없애주기도 하지만, 마음도 평안해진다. 절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지는 데, 향이 50% 정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

향으로 100% 대체가 되면 좋겠지만 아직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입으로 넘기는 감각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커피는 '향', '맛', '목 넘김' 다양한 감각을 충족시킬 수 있다. 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래저래 커피를 대체할만한 걸 찾지 못하다가 '트렌드 2023'에서 '보리커피'를 발견했다. 이걸 커피 대용으로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바로 쿠*을 검색했다. 유기농 보리커피가 나온다. 모르는 제품을 구매할 때는 상품평부터 본다. 기왕이면 사람들이 도움이 된다고 엄지 척 많이 해준 상품평을 읽는다.

'먹을 만 하지만 커피는 대체가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솔직한 상품평이 베스트에 올랐다. 그다음으로 호평을 받은 상품평은 '임산부인데 커피가 너무 먹고 싶어 구매했다.'는 내용이다.

그래. 이 정도면 모험을 할만하군...(모험이라고 하기엔 가격이 소소하다.)


어제 배송을 받았다. 뜨거운 물에 보리가루를 두 스푼 섞었다.

'흠, 이건 쓴 맛이 나는 보리차군.'

그냥저냥 괜찮다. 일단 떫은맛이 안 난다. 살짝 쓴 맛도 나고 보리차 특유 구수함도 있다. 주 연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느낌. 찐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지만, 이제 커피는 자제해야 한다. 교감신경 활성도가 지나치게 높단다. 커피를 그리 마셔댔으니 그렇지. 이제라도 커피는 디카페인, 밤에는 보리차를 마셔야겠다.


한 줄 요약 : 오 밤 중 마시는 커피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된다. 그러나 40대 중반,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 보리차 + 향 피우기로 루틴을 건전하게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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