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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pr 24. 2021

#2 그녀 - 결혼할 여자, 놀 여자

직장 생활 소고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무늬만 기독교인이었던 나도 얼결에 그녀와 같이 한인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 나는 나중에 한국인들 사이에 끼는 게 싫어 대형 로컬 교회에 가서 혼자 예배드리다가 결국 영어 공부나 할 겸 예배만 시디로 사다 들었다.


외국에 있는 한인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요긴한 네트워크의 장이 되기도 한다. 딱히 할 일이 없던 우리는 본 예배도 리고 이후에 있는 예배도 드리고 그냥 주일에는 교회에 살았다.


그 한인 교회에 새로운 회원이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 그는 딱 날라리 같았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뿐이지, 딱히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있어 보일 것 같진 않은데, 외국 생활을 어려서부터 했다고 자기가 깨인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좀 친해지고 나서 그는 자기 여자 친구 생겼다고 자랑을 했고, 그 여자 친구는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그녀,

"그 오빠, 그 여자 친구 그냥 놀려고 사귀는 거래. 결혼할 껀 아니라더라."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안물 안궁이다.


그리고 당시 20대라, 독한 소리를 잘 못했던 나는,

묘하게 기분은 나빴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같이 사는 데 불편한 게 싫었으니까.

이제는 늙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여자가 결혼할 여자랑 같이 놀 여자로 구분되니?"

그게 여자는 창녀 아니면 어머니라는 이분법과 뭐가 다르니?

- 그녀가 이 말을 이해 못했을 거라는 데 레오 똥을 건다.(의미 없다는 소리다.)


"그러는 너는 놀 여자가 아니라 결혼할 여자라는 거니?"

그렇게 여성을 규정하는 시선은 결국 남자들의 시선 아니니?


그 오빠가 그녀에게 왜 굳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그 오빠는 그녀의 말과 달리, 그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외국물 먹어 본인 의식이 깨어있는 줄 착각하던 그 오빠나,

생각 없이, 같은 여성을 놀 여자와 결혼할 여자로 구분하던 그녀나,

지독한 가부장주의에서는 못 벗어났던 것 같다.


하긴 나 역시 동 시대인이니 큰 틀에서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저런 대화가 이상하다는 건 알겠다.


흑 아니면 백의 이분법으로 무언가를 나누는 건 편하지만, 위험한 행동이다.

그 대상을 존중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며, 그 대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몰지각함, 배려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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