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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May 05. 2024

나는 누구인가

감정, 기억, 육체에 관하여

눈에 보이는 것은 결국 나의 그림자


   가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일까.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건 얼굴, 몸, 생각, 감정, 기억들이다. 매일 거울로 비춰보는 나의 모습이 익숙하다. 그래서 보이는 자체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내 얼굴은 다른 사람과 날 구분 짓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이다. 평생을 가지고 살아 가지만 세월이나 어떠한 이유로든 내 얼굴이 달라진다면 나는 사라지는 걸까?


 때로 감정이 휘몰아치며 그 속에 빠진다. 감정에서 나를 떼어놓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나일까?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감정이 나라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 감정이 나라면, 

나는 늘 변하고 일정하지 않은 존재일 거다.


또 내가 하는 기억들이 나라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이 나라면, 나의 기억을 지운다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가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을 하나씩 다시 바라보면 그 어느 것도 쉽게 나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문을 갖다 보면 결국 나는 육체도 감정도 기억도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들 넘어 눈에 보이지 않고 기억조차 필요 없는 그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다.





   마음과 감정에 관한 책에서는 종국에는 우리가 '에고'라 불리는 나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나라고 생각되는 것을 버려야 비로소 나를 만난다는 말이다. 내가 아닌 것에 눈길을 빼앗겨 얽매이고 착각하고 고통받는 것을 멈추고 진짜 나를 찾아보라 말한다. 렇다면 나를 리기 위해 나라고 착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생각해자.



1. 기억은 나일까?


   과거에 고통받고 마음에 생긴 상처로 우린 자주 괴로워한다. 모든 기억이 내가 되버린다. 만약 기억이 나라면 AI를 통해 내 모든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컴퓨터가 나의 기억을 모조리 기억하고 말한다면 컴퓨터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이란 시간이 가며 다시 만들어지고 과거는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수정된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억은 감정과도 연관이 되니 감정 또한 변화된다. 기억과 감정은 이렇게 쉽게 변화할 수 있으니 나라고 하기 어렵다.



2. 육체는 어떤가?


    우리는 어제와 다르고 5년 전과 다르고 10년 전과 다르다. 육체는 시간의 흐름 속에 나이 들어간다. 육체는 우리가 입는 옷과 같다. 옷도 처음에는 새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기도 하고 움직임에 따라 주름도 생기고 달라진다. 


육체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눈에 띄게 구별해 주는 것이 마치 나 자신이라 착각하게 된다. 물론 육체는 영혼의 발현으로 연관성은 있지만 육체가 결국 나 인 것은 아니다. 내가 죽고 내 육체가 사라지면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 나를 육체 하나로만 정의할 순 없다.



3. 감정은 나인가?


   감정에 휘몰아치다가도 시간이 가면 감정은 우리를 지나간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지속되는 감정은 없다. 물론 치유되지 않은 김정의 조각이 문득문득 떠오르긴 하겠지만.


기쁘다가 슬프다가 좋다가 나쁘다가 싫다가 행복하다가 실망하다가 화나가다 온갖 감정은 우리를 통과한다. 그러니 감정은 내가 될 수 없다. 나라고 착각하게 될 순 있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무엇이다.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 기억 그리고  감정에만 사로잡히면 부딪히고 상처받고 아프고 괴롭다. 감정과 기억에서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가끔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 장자의 '빈배'라는 글이 떠오른다. 나를 빈배로 만들 내가 없다면 더 이상 상처받고 아파할 일은 없을 거다. 보이는 것을 넘어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고 종국에는 나를 버리는 것까지, 이것이야 말로 평화와 고요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빈배
                                                      -장자-

한 사람이 배를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다.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래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매주 일요일, 마음에 관한 글을 씁니다.

아팠고 괴로웠던 순간은 어쩌면 저를 깊어지게 했는지 모릅니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기억도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마음에 관한 책을 읽고 시도해보고 또 시도해봅니다. 그러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저같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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