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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r 29. 2021

S - Schmarotzer (기생충)

독일에서 경험한 산학 협력 프로젝트

 

EP. 19

S - Schmarotzer



 무임승차자는 어디에나 있다. <무임승차>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 말고도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것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해내야 할 몫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그 단어는 조별 과제를 하면서 더욱 자주 듣게 되었고, 운 좋게 직접 겪지 않는 경우에도 주변에는 늘 <무임승차자>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독일에 와서야 조직이나 무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항상 무임승차자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임승차하다'라는 단어와 가장 비슷한 독일어로는 'Schmarotzen'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부에 게으르게 기댄다는 뜻으로 '기생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명사로는 'Schmarotzer'라 하고, 이는 '기생' 혹은 '기생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라는 책을 통해 유명해진 '쥐의 사회성'이라는 실험이 있다. 실험에서 6마리의 무리 중 무능력 계급이 된 쥐들을 다시 여섯 마리를 모아 같은 실험을 한 결과, 그 전의 실험 결과가 같이 두 마리의 착취자 계급과 또 다른 두 마리의 피착취자 계급 그리고 독립형과 무능력 쥐 각각 한 마리가 나왔다고 한다. 쉽게 풀어쓰자면 '어느 무리든 또라이는 꼭 한 명씩 있다'는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총 4학기로 구성된 우리 대학원의 커리큘럼에서 3학기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다. 그다음 학기는 논문을 쓰는 데 온전히 사용되기 때문에 수업과 시험이 있는 학기는 바로 이 3학기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수업 외에도 산학협력 프로젝트도 하나 있는데, 해당 과목의 크레디트(CP - Credit Points: 유럽 신용 이전 시스템(ECTS)에 따른 유럽의 학점 시스템으로 1CP는 보통 30시간의 교과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프로젝트 과목의 크레디트는 세 번째 학기의 모든 수업의 절반을 차지했다. 고로 아무리 다른 시험을 잘 봐도 프로젝트를 엉망으로 마친다면 해당 학기 절반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 학기가 시작도 되기 전에 모든 학생은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 전달받게 되었다. 세 번째 학기가 시작되는 날 우리는 한 강의실에 모여서 각자가 원하는 교수와 수업을 선택해야 했다.


모두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2학기 이후 몇몇 학생들은 학교와 연계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태국으로 떠났고, 그들의 빈자리는 태국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온 학생들이 채우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학을 한 사람도 몇 있던 터라, 일 년 만에 모두가 모인 강의실은 예전보다는 조금 한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독일에 남게 된 모두를 모이게 한 전임 교수 M은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강의실 안은 방학 동안 다녀온 환상적인 외국 휴가에 대해 자랑하는 이야기나 근사한 대기업에서 인상적인 인턴십을 경험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비자를 신청했다거나 문서 공증을 위해 대사관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관심 가질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씁쓸한 기분으로 말없이 집에서 가져온 커피를 홀짝이며 앉아있는 내게 우연히 옆에 앉게 된 S가 인사를 건넸다. 눈에 웃음기 하나 없는 마른 웃음이었다. 갈색 곱슬머리를 갖은 S는 늘 수업 태도가 좋았다. 모든 수업에서 늘 최고 점수를 받아온 그녀는 자신의 성적을 굳이 다른 이에게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2학기에 같은 수업을 들었다는 것 외에는 접점이 없었고, 일 년이 지나도록 서로 인사 외에는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었다. 그녀와 나는 길에서 서로 모른 채 지나가더라도 크게 상심치 않을 정도의 사이였다. 평소 그녀는 늘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자신과 친한 친구 외에는 말을 건네지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백조들을 따라 하느라 늘 바빴던 입학 초 나에게 그녀는 말 그대로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였다. 인사 뒤에 이어진 어색한 침묵에서 나와 그녀를 구해준 것은 교수의 등장이었다. 헐레벌떡 들어온 M 교수는 온몸으로 자신이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늦게 왔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같이 말이다. 평소 전임 교수는 주로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들고는, 다시 쉽게 풀어 설명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날은 평소와 달리 요점만을 말하며 서둘러 종이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각자 원하는 과목들은 집에서 생각해 왔나요? 휴가를 보내느라 잊어버린 건 아니죠? 고민할 충분할 시간이 있었다고 믿어요. 각자 원하는 과목에 체크해서 신청서를 제출하세요. 그리고 과목당 한 장에 해당 과목을 신청한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제출하세요. 한 과목당 인원이 최소한 세 명이 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어요. 그리고 여섯 명 이상도 너무 많아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면 나중에 교수와 다시 조정해야 할 수도 있어요. 피곤해진다는 이야기죠. 자, 그러니 지금부터 마지막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과목을 선택하세요. 아, 그리고 결정을 번복하느라 본인과 나를 피곤하게 하는 일은 되도록 피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종이를 손에 받아 들음과 동시에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의 말대로 고민의 주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터라 고민의 난이도는 더 심해졌다. 선택지는 총 다섯 개였으나 문제는 이 선택에 정답이 없다는 것과 모든 것이 다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다섯 개 중 네 개는 직. 간접적으로 대학교나 인턴십 혹은 대외활동으로 경험해 본 분야였다. 하지만 단 하나 '통신 기술'과목은 실무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첫 학기 시험을 아슬아슬하게 치르고 두 번째 학기도 그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점수로 낙제를 면하지 못한 바였지만, 어쩐지 자꾸 호기심이 가는 분야이기도 했다. 인터넷이 물보다 흔한 한국에서 독일로 오게 된 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 후 호기심은 더 커져갔다. 그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종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미 옹기종기 교실에 그룹을 지어 앉아서는 신청서에 이름을 적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그때 교실 앞쪽에서 다른 학생과 이야기를 하던 S가 큰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제인! 혹시 무슨 과목 선택할지 결정했어?"

"글세... 사실 통신 기술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 왜? 너는 무슨 과목 선택하려고?"

"오! 잘됐다. 지금 나랑 M이랑 통신기술 선택하려고 하는데 인원이 한 명 부족할 것 같아서. 관심 있으면 같이 하지 않을래?"


그때 나는 S가 나를 보며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녀가 굳이 나에게 제안을 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들은 마지막 한 명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평소 나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S와 M이 빤히 쳐다보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를 보며 웃지 않던 사람이 처음 미소를 건넬 때는 마치 마음의 문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민의 이유들이 조금 작게 보였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이내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좋아!"



 그로부터 1주일 후 프로젝트 수업의 첫 모임을 가기 위해 B교수의 방으로 향하던 길에 M을 만났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 된 M은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여학생이었는데, 오묘하게도 그녀의 밝은 표정 뒤 안경 너머에는 항상 알 수 없는 비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와도 1년 내내 말을 섞은 적이 없었기에 교수실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형식적인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고는 이내 둘 다 입을 다물었다. 교수 사무실은 건물의 가장 높은 층인 4층에 있었다. 사무실에는 S와 M 그리고 나 이렇게 학생 세 명과 교수와 그의 연구원인 L까지 합쳐 다섯 명이 모이게 되었다. L은 키가 큰 30대 초반의 남자로 눈빛에서는 교수와 견줄 정도로 예리함이 보였지만 말을 조리 있게 하기보다는 설명이 많아 장황한 편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짧게 자기소개를 했고 이어서는 교수가 프로젝트에 관해서 설명을 했다. 교수는 실무 경험이 많았는데 이번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그가 직접 독일의 유명한 통신회사 중 하나와 협의를 마쳐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어서 프로젝트 세부 사항에 대해 토론했다. B교수는 사실 교수진들 사이에서 가장 빨리 말을 하는 교수로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3학기 연속으로 B교수의 수업을 들은 나는 이미 그의 말 빠르기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프로젝트 수업은 기존의 강의와는 확실히 달랐다. 제출하면 교수가 평가하고 끝이 나는 과제와 달리,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거쳐 연구를 진행한 후 우리의 의뢰인 격인 독일의 통신회사의 사람들을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회의가 마무리되자 교수는 꼼꼼하게 우리에게 모르는 개념이 있는지 다시 한번 물었고 질문을 듣자, 직접 칠판에 설명을 해가며 알려줄 만큼 열정적으로 지도를 해주었다.  


프로젝트 자체는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만나 우리의 작업물을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교수는 매번 쉼표, 따옴표, 괄호 그리고 글자 사이의 빈칸까지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지적을 했다. 만일 맞춤법 오류라도 있는 날에는 그는 매우 엄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은 실무에서 절대 허용이 안 되는 실수입니다. 이런 식으로 문서를 작성하면 그들은 우리가 공들여 만든 작업물을 보지도 않으려 할 것이에요."


물론 교수에게 칭찬을 듣는 날도 있었다. 교수는 비판할 때처럼 칭찬에도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비판을 받는 날은 칭찬을 받는 날보다 현저히 많았다. 게다가 칭찬 뒤에 늘 교수의 입에서는 'Aber...(하지만...)'라는 단어가 따라 나왔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운 좋게 교수의 크리틱이 없는 날에는 연구원인 L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크리틱이 시작되면 S는 빠르게 모든 것을 받아 적었다. 그녀의 필체는 자신감 있고 선명했다. 반면에 M은 S만큼 열정적인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암기력이 좋았다. 교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대답하는 것은 항상 그녀였다. 반면 나는 그야말로 '깍두기' 같은 존재였다. 지난 일 년간의 짬밥으로 교수의 설명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함께 토론을 시작하면 정말 괴로웠다. 경기장을 잘 못 찾은 아마추어처럼 나는 프로들의 탁구 경기를 한시도 눈을 떼지 못 한 채 지켜봐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가끔 빠르게 쳐낸 탁구공 같은 교수의 질문이 나에게 넘어오기라도 하면 나는 다시 그것을 받아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통신회사와 미팅이 있는 날 또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매주 있는 교수와의 미팅과 다르게 회사와는 프로젝트 시작, 중반 그리고 마지막 이렇게 세 번의 만남이 전부였다. 회사는 대학교에서 차로 삼십 분 떨어진 한적한 도시에 있었다. 그 주변에는 큰 식료품 마트 하나와 쇼핑 아웃렛이 전부였고 거주지는 별로 없는 듯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통신회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 계절은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따듯한 햇살을 무력하게 만드는 찬바람에 우리는 모두 옷깃을 여미며 주차장에서 회사로 이어지는 황량한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통신회사 건물은 외관에 장식이 없고 건축에 쓰인 모든 형태가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바우하우스' 형식의 독일 어디서든 쉽게 보이는 특징 없는 것이 특징인 삭막한 모습을 하고 아웃렛 바로 건너에 서 있었다. 회사 내부 또한 외부와 크게 다르지 않게 깔끔했고 어딘가 온기가 없이 느껴지는 것 또한 비슷했다. 회사 로비에 도착을 알리고 우리 일행 다섯은 대기실 곳곳으로 흩어져 담당 직원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교수는 로비 직원에게 예전 방문 때와 달라진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S는 그것이 몹시나 재미있는 주제라는 듯 그 지루한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 곁을 지켰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셋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방문객을 위해 놓인 잡지를 들여다보았다. 첫 페이지에 실린 잡지 편집장의 글을 눈으로 다 훑기도 전에, 담당 직원이 유리문을 열고 서두른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첫 미팅은 예상처럼 순조롭지 않게 흘러갔다. 이전에도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다른 학교와 해본 적이 있는 회사 측은 프로젝트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교수와 친분이 있는 듯한 담당 직원은 우리가 준비해온 계획서 초안 발표를 경청했다. 발표는 S가 맡아서 했다. 독일의 발표 형식은 엄격한 편인데, 주제 소개부터 목차 설명 주요 내용 설명과 끝인사까지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하지만 S의 발표는 회사 측 사람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상기된 두 볼만이 그녀가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가 학생임에도 갖은 뛰어난 역량을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발표가 끝나자 담당 직원의 표정은 전보다는 훨씬 밝아 보였다. 회의로 가득 찼던 직원의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도는 거로 봐서 발표가 꽤 맘에 든 것 같았다. 미팅이 끝난 후 우리는 몇 가지 숙제를 받아 다시 비스바덴을 향해 차를 돌렸다. 차 안은 아직 냉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회사 건물 안보다는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번 학기 대부분의 시간을 프로젝트를 위해 할애해야 했지만 세 개의 강의 또한 무시할 것이 못 됐다. 모두 학기 말에 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몇몇 학생은 지난 학기에서 통과하지 못한 시험의 과목도 함께 공부해야 했기에 학기가 깊어갈수록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진지해져 갔다. 나 또한 도서관 개관 시간에 맞춰 등교하고 폐관 시간에 맞춰 하교하는 생활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있는 시간이 예전만큼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강의가 있는 마지막 학기가 되어서야 나는 점차 독일어와 독일 대학교의 시스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사전을 딱히 찾을 필요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니 강의가 재밌어졌다. 혼자 있는 강의실에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건넬까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독일어가 점차 입에 붙기 시작했다. 빨리 말하지 않으면 노려보는 학교 매점 아저씨 앞에서 쩔쩔매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이렇게 독일어가 빠르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젝트 과제의 도움이 컸다. 통신 회사와의 첫 번째 미팅을 마친 후 첫 모임에서 B교수는 우리에게 세 권의 책을 건넸다. 주제의 방향이 잡힌 만큼 이제 우리의 가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이론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말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메일을 보낼 것과 물은 마셔도 되나 문은 꼭 잠그고 가라는 말을 남기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 그렇게 과제가 주어지면 우리 셋은 바로 분업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보통은 S가 뼈대를 짜고 M가 자료 수집을 하면 내가 모아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발표 자료를 S와 M이 검토한 후 나에게 메일을 보내면 수정 후 모두와 공유한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이 과정을 매주 반복했다. 발표 자료를 둘에게 보내고 나면 그들의 반응은 그녀들의 서로 다른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선 S는 답장이 빠르고 피드백이 내용이 아주 자세했다. 그녀는 첫 페이지 제목부터 마지막 페이지의 쪽수까지 허투루 보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틀린 맞춤법을 찾아내는 것에도 귀신이었다. S만큼 독일어 맞춤법과 문법에 뛰어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반면 M은 가끔은 답장하는 것을 잊어 다시 상기시켜줘야 할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트린 내용을 찾는데 도사였다. 나와 S가 까맣게 잊은 버린 것들을 기억해내는 것은 늘 M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똑똑한 두 여자와 발맞추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덕에 독일어 실력은 프로젝트 진행과 발맞춰 하루가 다르게 늘게 되었다.


우리 셋은 매주 해내야 하는 과제의 양과 비례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매번 사무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과제를 하다 "에이, 우리 이 앞에서 소주나 한잔 하고 다시 올까?" 같은 일이 벌어지는 문화도 아닌 데다, 캠퍼스 주변에는 묘지와 버스정류장이 전부였다. 우리는 매번 정해진 강의실에서 늦지 않게 만나 해야 할 일을 하고 다시 늦지 않게 헤어졌다. 우리 셋은 모두 성실한 축에 속했기에 프로젝트 준비는 대체로 순조로웠다. 하지만 매번 모든 사람이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S는 학교와 일을 병행하고 있었고 M은 학생회에 속해있었다. 매번 성실하게 참석하는 것은 물론 나였다. 백조들을 따라가려면 오리가 가장 성실해야 하는 법이니 당연한 일이다. 처음에는 S의 지각이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M의 핑계가 잦아졌다. 학기가 무르익으면서 M의 학생회 일이 늘어나자 나와 S 둘만 나와 회의를 하는 날들이 몇 번 이어졌다. S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나는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세 명의 언니가 있다는 것과 바이에른 출신이라는 것 정도로 누구에게든 이야기할만한 기본적인 것부터 디자인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해 이 학교를 선택했다는 것까지 그녀는 꾸밈없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학업을 위해 학생 대출인 바펙(Bafög - '독일 연방 교육 지원법(Bundesausbildungsförderungsgesetz)'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학생 교육 지원금의 줄임말, 이하 '바펙')을 받고 있다고 했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말을 남기며 그녀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본 S는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녀는 알맞은 키워드로 원하는 것을 찾아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받아들인 정보를 자신의 언어로 생각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작성하는 문서들은 주인과 똑 닮아있어 항상 요점이 분명했다. 종종 그녀가 자신이 메모한 것을 내가 컴퓨터에 받아 옮기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마치 독일어로 문서 작성하는 법에 관한 족집게 과외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프로젝트의 중간보고를 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우리 셋은 며칠 전부터 메일을 수없이 주고받으며 준비를 철저히 해왔기에 별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뱃속에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화장실 밖을 나와서는 온몸에 몸살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최종 발표 자료를 메일로 넘기고 교수와 다른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만일 혼자였으면 발표 내내 식은땀을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를 지켜야 했을 것이다. 메일을 보낸 지 얼마 안 있어 교수에게 괜찮다는 답장이 왔다. 이어서 S와 M이 몸조리 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S와 M이 잘해줄 거라 믿으며 노트북을 닫고 침대로 다시 들어갔다.




  다시 만난 모임에서 S와 M은 물론 B교수까지 저번 주 중간발표 불참에 대한 언급은 딱히 없었다. 그저 몸은 좀 괜찮아졌냐는 짧은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날 저녁 S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안에는 미팅에서 언급된 이야기와 우리의 발표에 대한 평가가 일목요연하게 적혀있었다. 그녀는 이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알려왔다. 어쩐지 일감이 전에 비해 늘어난 것 같도 같았지만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에 불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심지어는 자진해서 자료의 디자인을 처음부터 공들여 바꾸기도 했다. 중간발표 때 쓰인 자료를 그대로 쓰면 시간은 아끼겠지만 원하는 바대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팀에서 디자인 전공자는 나뿐이었다. B교수도 디자인에는 문외한이었다. 따라서 발표 자료의 디자인은 온전히 내 재량으로 바꿀 수 있었고 만약 거절당해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마지막 프로젝트 발표는 S와 M이 나누어하기로 했다. 바꾼 디자인은 다행히도 모두의 마음에 들었다. B교수는 처음으로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발표일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발표에는 담당 직원 외에도 세 명의 직원이 함께였다. 발표는 약 20분간 진행되었다. 그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팀장급의 직원도 있었는데 그는 가장 활발히 질문하며 듣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질문으로 몇 번 중단된 것 외에 발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직원들은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이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팀장은 우리에게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할 예정이냐며 인재들을 놓치면 안 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모두와 한 번씩 악수를 나누고는 다시 비스바덴으로 돌아왔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프로젝트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S와 M은 방학과 함께 부모님이 있는 고향을 찾아 비스바덴을 떠났다. 둘은 모두 다음 학기에 바로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다. S는 프로젝트를 통해 통신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S는 프로젝트 내내 교수가 가장 총애하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는 곧 안식년을 갖게 되는 B교수 대신 같은 분야의 다른 교수 지도하에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M은 방학 동안 인턴십을 하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프로젝트 중에도 이미 여러 곳에 지원하고 있었다.


3개월간 진행된 프로젝트 동안 우리 중 Schmarortzer는 누구였을까? 지각이 잦았던 날의 S? 학생회 일을 하느라 모임에 연이은 불참을 했던 M? 중간발표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자료만 보내고 나타나지 않은 나? 혹은... 직접 도움을 주기보다는 훈수두기를 즐겨하던 연구원 L? 어쩌면, 마지막 발표에 나타나지 않은 B교수?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했던 그날 옆사람에게 기대어 '무임승차'를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잠시 배를 젓던 노를 놓은 동안 다른 이들은 조금 더 열심히 노를 계속 저어 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뱃삯을 내고 난파하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몇 주 후 받아본 성적표에는 그 징표가 적혀있었다. 통신 기술 프로젝트의 점수는 <1.0>이었다(독일 대학교 성적 시스템은 1.0이 최고점이고 최하점은 6.0이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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