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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r 15. 2021

Q - Quittung (영수증)

독일 대학원에서 영어로 진행된 2학기 수업

EP. 17

Q - Quittung (영수증)



 파타야에서 그을러  살갗이  식기도 전에 대학원의 2학기 수업 시작되었다.  학기의 고된 수업과 다섯 과목의 시험이라는  산을 넘으니  학기는 비교적 험난해 보이지 않았다.  학기를 보내면서 나의 독일어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는데, 전공   페이지를 읽는   시간이 걸렸던 학기초와 달리 학기 말에는 같은 시간에 서너 페이지를 거뜬히 넘길  있게 되었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던 내가 이제는 농담도  마디씩 건넬  알게 되었으니 지난   동안 자잘한 독일어  근육이 차곡히 였구나 싶었다. 물론 문제는 그만큼 잔꾀도 늘었다는 것이다. 수업 중에는 집중한 표정으로 딴생각을 하는 법을 배웠고, 이해할  없는 독일어 대화에서는 적절한 추임새로 장단을 맞추면서도 결코 대화에 직접 끼어들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제한된 집중력과 습득력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독일 생활을 견뎌내기 위한 나름의 잔머리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2학기에는 이런 나의 독일어 실력과 꼼수를 뽐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과목이 영어로 진행되 때문이다. 모든 학생의 시간표가 동일했던 저번 학기와 달리, 이번에는  학생당 다섯 개의 분야   개의 분야를 골라야 했다. 물론 수업은 한과목도 빠짐없이 영어로 이루어지고 시험과 과제물 또한 영어로 제출해야 한다. 한국 대학에서도 영어강의를 의무적으로 수강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세계화 시대에 국제공용어로 널리 쓰이는 영어를 익히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대학교에 다닐  졸업을 위해서 '대학 영어'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대학 영어 강의는 흔히 '원어민'으로 불리는 외국인 강사가 영어로만 강의했다. 여러 학과의 다양한 학생들은  '원어민 교수' 앞에만 서면,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수줍어했는데, 강의가 끝나면 활기차게 가방을 메고 친구와 수다 떠는 모습에서는 찾을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어를 위한 영어수업과 전공과목을 영어로 공부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한국에서 토익 점수를 만들어  것도 사실상  학교의  번째 학기 수업을 위해서였다. 19세기 독일이 과학과 철학 그리고 문학에서 선봉 자리를 지키고 있을 무렵에는 독일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가 과학, 정치, 문화  예술 분야의 최신 소식을 얻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중요성을 얻게 되면서 '영어' 위상은 유럽에서도 인정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할  영어를   있다는 것은 중요한 장점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따라 독일 대학교에서도 이처럼 영어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생겼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Universität 아닌 Hochschule이기에, 전문성과 실무를  중요시했고, 현재 배우는 과목을 영어로도 소화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나도 나름 영어 공부를 길게  편이었으나, 한국에서 배우는 영어는 '말하는 영어' 아니었다. 토익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한번 벙긋하지 않고도 영어 공부를   있었고, 그것은 시험을 보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지난   동안 독일어만 배우고 독일어만 쓰고 살아왔기에, 영어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지냈던 교환학생 시절도 벌써 삼사   일이었다. 뒤늦게 내가 영어를   한다는 사실이 들통나 수업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는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영어 짬밥 N연차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겠냐는 배짱이  컸다.




 그렇게 이학기가 시작되었다. 초가을에 시작된  학기와 달리  번째 학기는 나무와 들판이 푸릇푸릇하게 피어나는 초여름이었다. 겨울 동안 짙은 갈색 가지만 앙상했던 캠퍼스의 식물들이 하나둘 초록색 외투로 두터워질수록 캠퍼스를 지나는 학생들의 옷차림은 그와 반대로 가벼워졌다.  또한 지난 학기보다 얇은 옷차림을 하고 들어선 곳은 1학기 대부분의 수업이 이루어졌던 강의실이었다. 하지만  안을 채우고 있는 여섯  정도의 학생들의 규모는 널찍한 강의실 크기에 비해 어딘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는 모든 학생을 만날  없게 되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서로가 점잔을 빼던 초반의 탐색기가 지나자 학생들은 각자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학교에 오는   생각나지 않는 듯한 학생도 있었고 모두에게 친절한 학생이 있는 반면 코를 높이 쳐들고 공주님처럼 행세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는 인간의 습성에 따라,  서른  정도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여러 무리가 생겼다.  명이 중심이 돼서 여럿을 이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이른바 '마이웨이(ma way)' 학생들이었다. 또한, 성격뿐 아니라 관심사에 의해서도 무리가 나뉘었다. 나는 사실 이도 저도 아닌 축에 속했는데,  학기  과제를 함께하며 친해졌던 그나마 있던 친구조차 출산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하는 바람에   없게 되었다. 그러한 사정으로 오히려 소수로 진행되는 수업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했다. 2학기  수강해야 하는 선택 과목  가지  하나로 나는 '통신 기술과 운영'이라는 과목을 들었다. 잠시 한국에서 관련된 회사에서 대외활동을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접해본 적이 없는 분야였다.  학기  가장 많은 시험 탈락자를  과목의 교수  명이 함께 진행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4 산업과 깊숙이 연관된 매력 있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이유는 학생들로 하여금 과목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시험에서 탈락한 여섯 명은 모두  수업 듣는 것을 포기했고, 나머지 학생 중에서도 굉장히 소수만이  수업을 선택했다. 나의 성적표에 적힌 점수도 어디 내놓을  없는 처지의 것이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고 그렇게  작은 무리에 끼게 되었다. 여러모로 당시  배짱은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학기가 시작된   수업에서 나를   명의 교수는 어딘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교수는 자신이 내게  점수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멋쩍게 웃는가 하면 다른 교수는 밀린 빨랫감을 보는듯한 시선을 .  또한 겸연쩍게 웃으며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제야 교수들은 시선을 돌려 다른 학생들도 서둘러 확인하였다.  명의 교수는 각자 다른 날에 따로따로 수업에 들어왔으나, 마치 연출이라도  것처럼 모두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독일어로 인사를 하고  마디를 이어간 후에야 규칙을 기억한  영어로 바꾸었다. 마치 컴퓨터나 핸드폰에서 언어 설정을 바꾸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어 특유의 끊어지는 악센트와 강한 <에스체하>(Sch - 독일어에서 특정 발음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자음의 모음) 발음은 여전했지만, 교수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물론 교수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대게는 영어로 수업하는  전혀 무리가 없었고, 특히 각종 행사와 학회를 자주 다니는 교수에게 영어는 그저 자신이   있는 수많은 언어  하나이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교수들에게도 영어가 외국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독일어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비교적 어렵지 않은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과거의 섣부른 선택을  스스로를 원망하게 되었다. 진도에 맞춰 스크립트가  장씩 넘어갈수록 페이지 위의 글씨는 적어졌고 교수들은 워밍업을 충분히  운동선수처럼 다시 자신의 영어 페이스를 찾은  보였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스크립트뿐만 아니라 저번 학기보다 한층 심화된 수업내용 또한 나의 낯빛을 더욱 창백하게 만드는  일조했다. 나와 같은 얼굴의 학생이 하나라도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곳에서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혼자였다. 수업 시작  영어 수업이 긴장된다던  친구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한 얼굴로 필기를 하고 있었다. 수업 틈틈이 질문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흠잡을  없이 뛰어났다. 영어를 한다고 해서 수줍어하는 사람도 없었고 발음이나 문법을 신경 쓰느라고 대화에 말보다 공백이 많은 사람도 없었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즉석에서 발표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대학 영어 강의실에 앉아있던 수줍은 한국 학생들의 영어가 그리워지곤 했다.  




 이렇게 영어 수업으로 정신없던 나의 탈출구는 다름 아닌 독일어였다. 처음 언어를 배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짧은 단어를 가장 먼저 기억한다. 그중 추임새는 짧고 간단해서 배우기 쉬울 뿐만 아니라 대화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나아가 대화 상대방에게 내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유용하다. 예를 들어 독일어의 대표적인 추임새인 <Achso> 주로 무언가를 이해했음을 나타낼  쓰인다. 이는 독일 전역에서 두루 쓰이는 데다 '! ~'하며 나는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감칠맛이 있어 나 또한 독일어 중 가장 먼저 익힌 감탄사  하나이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어와는 너무나 다른  추임새를 쓰는 것이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도저히 입에서 떼려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정도가 돼버렸다. 그러니 수업 중에 영어로 이야기를  때도 가끔 튀어나와 당황하게  것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추임새뿐만 아니라 간단한 단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만요, 실례합니다,  생각에는... 등의 짧은 문장은 영어보다는 독일어로  빠르게 떠올랐고, 결국에는 마치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 쓰니 나의 말은  우습게만 들렸다.  번은 수업  이런 적도 있었다. 앞에 나가 혼자 발표를 하는데 갑자기 <공항>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문맥상 중요한 단어라 빼먹을  없었기에 몹시 난처한 상황이었다. 만약   있다면 한국어로라도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지만, 결국   없이 민망한 눈빛으로 교수를 슬쩍 쳐다보고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독일어로 물었다.


"맙소사, 갑자기 단어가 생각이  나네. 비행기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공항이 영어로 뭐더라? (Oh mein Gott, mir fällt gerade das Wort nicht ein. Kennt ihr wohin man gehen muss, wenn man den Flugzeug nehmen will? Also was ist Flughafen auf Englisch?)"

"공항!(Airport!)"


앞줄에 앉아있던 학생들은 마치 스피드 퀴즈라도 하는  신이나 대답했다. 구석에  있던 교수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외국인 학생이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 독일어로 학생들에게 묻다니 하는 얼굴이었다. 겨우 독일어가 편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나에게 영어를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어쩔  없이 나는 다시 수업에서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이번에는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쓰인 스크립트와 씨름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영어 공부를 따로  시간을 내지는 못했다.  이유  하나는 독일어로 < 게임> 보느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데, 하도 주변에서 미디어나 친구를 가리지 않고 보라고 난리 통을 쳐대는 터라 도저히 미룰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는 <Eure Majestät(폐하)> 현대 독일어와 다른 용어들이 자주 나왔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사극을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째 시즌을 마칠 때가 돼서야 독일어 자막을 끄고 소리로만   있었을 만큼 어려운 독일어 문장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한국어 자막이 아닌 독일어를 고집했던 것은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언어 공부의 장점은 똑같은 드라마도 자막과 함께 보면 농땡이지만 자막이 없으면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름 꼼수를 부려가며 하루하루  번째 학기를 견디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의도치 않게 교실 전체를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통신 기술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던 평범한 오전 수업 시간, 나는 쑤셔오는 온몸과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부여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전날 오랜만에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아이리시 펍에서 맥주를 한잔하려던 것이 새벽을 넘기고 말았다. 교실 구석에 앉아 남모르게 숙취와 싸우고 있는 사이 교실 앞에는 형형색색의 차트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교수의 낮은 목소리는 넓은 교실에 메아리처럼 퍼지고 있었다. 온 힘으로 내려오는 눈꺼풀을 위로 치켜뜨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이 조용하게 느껴졌다. 분위기 파악을 하려 교수를 올려다본 순간, 교수는 내가 드디어 자신에게 눈을 마주쳐준 것에 대해 반가워하는 듯 보였다.


"그래. 제인이 대답해 보겠나?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지?"


순간 잠이 확 깼다. 아니, 교수가 지금 나랑 수수께끼를 하자는 건가? 잠에서 막 깨어난 나는 우스꽝스러운 이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주변 학생들의 입술이 근질근질하는걸 보아하니 어려운 질문은 아닌 듯 보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이어지는 침묵이 불편한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뱉어냈다.


"메이크업이요"


순간 교수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없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참을  없는 웃음이 전염병처럼 도진 후였다. 주변 학생들이  그대로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한 터에 혼란에 빠진 나도 어쩐지  상황이 너무나 우스워 그들을 따라 재채기처럼 웃음을 뿜어버렸다. 그렇게  같이 한참을 웃고  후에야 교수가 묻는 것이 <낮과 밤에 따른 데이터 사용량 차이를 나타낸 도표> 임을 알게 되었다. 민망함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교수를 쳐다봤다. 교수는  수업 시간에 나에게 보였던 표정을 짓고는 다른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시간이 지나 두 번째 학기의 성적이 다시 포털에 올라왔다. 과제물을 제출했던 다른 수업들에서는 나름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발표와 시험을 치렀던 수업에서는 간신히 낙제를 면할 수 있었다. 나서서 발표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복습도 하면서 시험을 준비했지만, 한편으로는 예상한 결과를 받은 것이기에 길게 슬퍼하지 않았다. 과거의 내가 쓴 자유를 현재의 내가 책임으로 치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적표는 그 영수증이었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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