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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Apr 12. 2021

U - Unterschied (차이)

사랑하는 마음에도 차이가 있을까?

EP. 21

U - Unterschied (차이)



 남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함께 이사하게 되었다. 새로 이사 한 B 지역은 전에 살던 시내보다 차도 사람도 많지 않은 조용한 지역에 있었다. 마트, 병원 그리고 우체국 등 필요한 시설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마치 시내의 모습을 축소해 만든 미니어처같이 규모는 모두 작았다. 하지만 B 지역 안에도 나름 도심이라고 할만한 중심가가 있었다. 그곳에는 정류장과 빵집 그리고 키오스크(Kiosk - 독일의 소규모 상점) 등이 마주 보고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관청과 경찰서 등 관공서들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B 지역의 시민 사무소(Ortsverwaltung - 한국의 동사무소 혹은 주민센터와 비슷한 개념)가 있다. 독일에서 관공서를 방문할 때면, 나는 매번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전날 나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상태였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꽤 기분 좋은 꿈도 다녀간 것 같았다. 머릿속이 개운했기 때문이다.


"Bitte kommen Sie rein(들어오세요)."


자신을 우리 혼인의 담당자라고 소개한 공무원 N의 사무실은 알록달록한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다. 사진들은 대부분 행복한 커플들의 결혼식 사진이었고 사이사이에는 아이들과 함께인 가족사진들도 보였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나무 액자에 끼워진 본인의 가족사진도 함께 놓여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우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지방 법원에서 제인 씨의 서류들을 넘겨받은 상태이고 검토 중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마 며칠은 지나 봐야 확실하게 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로 봐서는 꽤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담당 공무원 N과는 방문 전 몇 번 전화로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여태껏 내가 독일에서 봐왔던 공무원들과는 확연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유는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는 공무원이라니! 순간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이내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한 번도 공무원 앞에서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적이 없었던 나를 무장해제시킨 것이다.    


"자, 이제 한 분씩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요. 어떤 분부터 할까요?"


말없이 손가락으로 남자 친구의 팔을 쿡 찌르며 나는 그가 먼저 할 것을 권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결혼 인터뷰'였다. 독일의 결혼식은 관청 공무원이 주재해서 주례를 맡는데, 우리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주례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를 안에 남겨놓고 나는 잠시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약 십오 분 후 문을 열고 나온 남자 친구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숙련된 신사처럼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펴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예비 배우자분이 참 친절하네요. 자, 그러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하면 돼요. 음... 둘의 처음부터 시작할까요?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죠?"


그녀는 이어서 나에게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그와 함께 있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에 대해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한다는 것이 어딘가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마치 재미있는 영화의 줄거리를 듣는 듯한 얼굴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중간중간 어떤 대목에서는 감동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였다. 나 또한 처음에는 어색하게 말머리를 떼었지만, 이야기하며 그에 대해 그리고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자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단어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나의 얼굴은 들어올 때 보았던 남자 친구의 얼굴과 비슷한 색깔로 변해있었다.




 결혼식 준비가 어려운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만약 다시 한번 더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과 함께. 게다가 고향에서 8,000Km 떨어진 곳에서 결혼식 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과 달리 이곳에는 웨딩플래너도, 웨딩숍도 보편화되어있지 않았다. 많은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해결해야 했다.


우선 정해진 날짜에 결혼을 무사히 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가 늦지 않게 나야만 했다. 독일인 남자 친구의 서류 준비는 외국인인 나에 비해 매우 간단했다. 반면 나에게는 비자 신청의 악몽이 되살아날 정도로 엄격한 서류 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식 장소를 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맘에 드는 장소는 준비성이 철저한 독일 사람이 모두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고, 그나마 예약이 가능한 장소는 우리의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결혼식 장소를 채울 손님들을 정하기도 까다로운 일이었다. 혼인 서약이 열리게 될 관청에서 배정받은 장소는 최대 50명이 정원인 시청 내 작은 강당이었다. 이마저도 원래 해당 날짜에 결혼식을 하기로 한 커플이 갑작스럽게 취소를 하는 바람에 얻게 된 것이었기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소규모 결혼식을 원했던 우리의 바람과는 꼭 맞았지만, 가족과 친지가 모두 독일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는 꽤나 난감한 일이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쥐 뜯으며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우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 외 모자란 것들은 주변의 도움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나에 이어 독일에 와서 정착하게 된 두 명의 단짝 친구들이 있다.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인 J가 우리의 이야기가 잘 담긴 청첩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청첩장 인쇄할 때도 함께 와주었다. 또 다른 친구 R은 사진 촬영을 맡아 주었다. 게다가 결혼식 몇 주 전 한국을 다녀온 R가 가져온 미니 웨딩드레스가 없었으면, 몸에 맞는 옷을 찾으러 한참을 고생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이 둘은 부케는 물론 결혼식 날 머리단장까지 도맡아 해 주었다. 이외에도 남자 친구의 친구 중 하나인 D도 사진 촬영을 도와주기로 했고, 결혼식 준비 중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한 달 전 먼저 결혼 한 L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독일에서 알게 된 나의 탄뎀 친구 S는 기꺼이 축가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 있는 내 가족들은 바쁜 와중에도 결혼식 참여를 위해 독일로 날아왔다. 비록 그들은 4일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내심 외로운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에게, 이만한 선물은 없었다.

  



 정신없이 결혼식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2부로 되어있었는데, 1부는 시청에서 혼인 서약을 하는 것이었고 2부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피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전날까지 이것저것 마지막 준비를 하느라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결혼식이 엉망진창이 되는 꿈을 연달아 꾸고 일어났을 때, 아직 세상은 잠에서 깨지 않은 듯했다. 방 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여명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자 친구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제 몇 시간 후에는 남편이 될 나의 남자 친구의 잠든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나는 잠시 그 편안한 얼굴을 말없이 들여다보고는 이내 그의 평온한 꿈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깨금발을 들고 조용히 욕실로 들어갔다.


"Guten morgen, meine Braut(좋은 아침, 나의 신부)."


잠에서 막 깬 듯 아직 눈을 껌뻑이고 있던 그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온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단장을 도와주기로 한 J와 R 그리고 그녀들의 남자 친구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둘은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남자 친구와 나는 늘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함께 기도하는데, 기도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우리에게도 차별 없이 평온함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함께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남자 친구는 나를 품에 안고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그의 주문의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시청에 도착해서부터였다. 집 근처 호텔에 묵고 있는 가족들을 태우고 도착한 시청은 B지역에서 차를 타고 십 분 거리에 있었다. 드문드문 가로수가 8월에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지만, 새들은 모두 더위를 피해 날아가 버린 듯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시청에서 간간이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만이 다른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곧이어 우리 결혼식의 손님들이 하나씩 도착하자 바람 소리는 잦아들고 대신 그들의 말소리가 시청 앞 작은 광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명씩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인사와 따듯한 포옹이 오가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막 도착한 손님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중에는 늦게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 앞의 결혼식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첫 번째 계획부터 틀어져 버리자,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나에게 주목되는 날에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입장하기 전 잠시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전했던 담당 공무원 또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 분, 이분 결혼식이 점차 늦어지자, 나의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결혼식이 늦어지면 식당은 어떻게 하지, 공무원이 사정이 생겨 못오게 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이 결혼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하늘의 계시인 걸까? 시청 앞의 시계탑 분침의 기울기가 늘어날수록 초조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갔다.


그때였다. 굳게 닫혀있던 시청의 중앙 문이 열리고 이전 결혼식의 하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결혼식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고, 먼저 나온 하객들은 꽃가루를 두 손에 들고 방금 결혼식을 마친 커플을 기다리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마침내 나의 결혼식을 지연시킨 문제의 커플이 나왔다. 우선 깔끔한 연미복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랑인 듯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사람 또한 연미복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중에 나온 남자의 연미복이 눈에 띄게 화려했다는 것뿐이었다. 독일에서는 우리의 결혼식이 열리기 일 년 전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가 되었다. 뉴스에서만 보았던 것이 지금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던 것이었다. 하객들이 하늘을 향해 던진 꽃가루가 연미복을 입은 두 남자의 머리 위로 흩날렸다. 그 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화려한 연미복을 입은 남자는 방금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행복의 눈물이었다.


행복한 그 두 사람은 보통의 신랑 신부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 둘은 방금 앞으로 서로의 길을 지켜주겠다는 사랑의 서약을 했고, 담당 공무원은 국가를 대표해 그 둘의 결합을 축복하고 인정해 주었다. 그 둘의 길에 종종 반갑지 않을 차별이 있을지언정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는 우리 커플과 어떤 차이도 없을 것이다. 기쁨의 소란이 조금 잦아들자, 그 두 남자는 우리를 발견한 듯했다. 그 둘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갯짓을 했고,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이어 담당 공무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하객들은 모두 입장해 주기를 부탁했고, 나와 남자 친구만을 살짝 불러 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주었다. 입장할 시간이 되자, 그녀는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같이 화창한 결혼식에 꼭 맞는 정말 아름다운 드레스네요."





 입장 바로 전, 나와 A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결혼식이 열리는 강당 앞에 서있었다. 마주 잡은 손이 자꾸 축축해지는 것으로 보아하니,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꽤 긴장한 듯했다. 이내 우리가 준비한 음악이 재생되자, 다른 공무원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강당의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 번씩 서로를 쳐다보고는 열린 문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강당 안에는 큰 창문을 통해 환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왼편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입장하는 우리 둘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오른편에는 담당 공무원과 우리의 증인 두 명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었다. 그와 손을 걷고 앞으로 한 발짝씩 내딛을수록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충만한 행복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Ich frage Sie vor Gottes Angesicht: Nehmen Sie Ihren Bräutigum an als Ihren Mann und versprechen Sie, ihm die Treue zu halten in guten und bösen Tagen, in Gesundheit und Krankheit, und ihn zu lieben, zu achten und zu ehren, bis der Tod Sie scheidet?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신랑을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기쁜날에나 슬픈날에나 그리고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맹세합니까?)"


"Ja, ich will! (네, 맹세합니다!)"


 




'비바 도이칠란트'매거진은 작가가 독일에서 어학을 배우고 대학원을 졸업하게 된 이야기로 채워지며, 매주 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작가 또는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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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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