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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Apr 05. 2021

T - Traum (꿈)

함께 꾸는 꿈

EP. 20

T - Traum (꿈)




"꿈이 뭐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


"꿈이 뭔데요?"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거. 뭐, 장래희망 같은 거지."


<장래희망>같이 부자연스러운 단어도 없을 것이다. 질문의 당사자가 어린이임을 감안하면, 장래(將來), 즉 미래에 하고 싶은 <희망>이라는 어려운 말 대신 다른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막상 이 단어를 이해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주변에서 장래희망을 묻는 어른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장래희망에 대한 환상이 없는 조금은 회의적인 아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장래희망 조사 같은 것을 써내야 할 때면, 나는 그저 평범하고 할 수 있을 법한 직업을 적어 냈다. 대통령, 과학자, 법조인같이 위인전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들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어른들은 진로에 대해 물었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 서울', '지잡대', '모의고사'가 도사리고 있는 곳에 <장래희망>따위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성인이 되자 꿈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저 자는 동안 나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드는 장면들이었다. 잠에 들어 정신이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면, 과거의 기억들은 미래의 걱정들과 섞여 무시무시한 형상들로 변해 매일 밤 나의 침대맡을 찾았다. 내게 꿈은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밤 야수 같은 형상에 쫓기고 쫓기던 바로 그 뒤에, 꿈이 있었다.


독일어 단어 꿈(Traum)의 어원은 <trügen>이다. '속이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꿈은 우리를 속이는 허상(Trugbild)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독일어 '트라움(Traum)'과 아주 닮은 단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트라우마(Trauma)'이다. 트라우마는 상처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정신적으로 깊게 입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의미하는 트라우마는 꿈과 매우 닮아있다. 트라우마와 꿈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주변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휘몰아치는 감정들은 모두 꿈과 트라우마의 주식(主食)이다.




"Die Traumata verstecken sich in den Träumen."

트라우마는 꿈속에 숨어있다.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은 16살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악몽을 꾼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말 그대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쫓기거나, 비난받았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장소들은 무너져 내렸고, 나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은 배신을 했다. 악몽의 정도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해져 갔고 지속적으로 가위에도 눌리기 시작했다. 정도가 심한 날에는 하루 밤새 일곱 번 가위에 눌렸고, 여덟 번째로 가까스로 가위에서 헤어 나왔을 때 날은 이미 밝아있었다. 어느샌가부터는 나에게 숙면은 사치, 잠은 악몽의 동의어로 변해갔다.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꿈에서 도망치기 위해 술을 는 날이 잦아졌다. 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나마 남아있던 꿈에 대한 기억들도 술에 취한 전날 밤의 기억처럼 숙취와 함께 희미해졌다. 술은 악몽이라는 괴물의 눈을 피해 숨는 어느 정도 도움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의 편이 아님은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을 마셔도 잠에 들지 못하거나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한 악몽에 시달리게 되는 밤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악몽 속 고함을 치는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면, 젖은 베개의 축축한 감촉이 소름 끼치는 안도감을 주었다.


독일 교환학생 파견이 확실시되었을 무렵에도 나는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울고 나서야 시작되는 매일은 점차 나의 일상을 갉아먹었다. 결국 출국을 한 달 앞두고 동네의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상담은 나의 울음으로 시작되었으나 끝은 의사의 헛기침 소리로 끝났다. 의사는 “어떤 일로 오셨나요?”말고는 다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울음 속에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던 의사는 이내 키보드를 두드리며 몇 가지 증상과 약을 적어 넣었다. 이어 의사는 딱딱한 어투와 메마른 표정으로 ‘왜 이렇게 늦게 병원을 찾아왔냐’며 일 년 정도는 꾸준히 병원을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의 태도는 어쩐지 의사보다는 공무원에 가까웠다. 처방전을 들고 도망치듯 병원을 나갔다. 과연 이 약들이 나의 꿈에 찾아오는 야수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뿐이었다. 나는 처방전을 꾸겨버리고 대신 비행기 티켓을 손에 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후 독일에서 만난 나의 남자 친구 A는 나에게 찾아온 꿈의 구원자였다. 그는 잠 잠에 찾아오는 꿈이라는 손님을 사랑한다. 그런 그와 꿈을 꾸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의 꿈은 점차 그 기세를 잃어갔다. 마치 성난 짐승의 삐쭉 선 갈기를 어루만져주듯 그가 나의 트라우마 즉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 꿈에 시달리던 나의 마음이 편해진 것은 마법 같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마법을 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 곁에 있어주었을 뿐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날에도 그는 늘 묵묵히 내 옆을 지켰다.


그렇게 잠의 시간이 고요해지자, 어릴 적 나 혼자 간직하고 있었던 잊힌 '꿈' 하나가 떠올랐다. 장래희망도 대충 적어내던 어릴 적부터, 점차 세상을 알기 시작하던 청소년 시절을 지나 안개 같은 세상에서 휘청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않았던 작은 소망이었다. 보름달이 휘청이는 밤이면 나는, '달님, 꾸미지 않은 온전한 나의 모습을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만 보내주세요.'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내가 신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믿기 시작한 것은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듯 독일어를 하나씩 익혀가는 그 순간에도, 먼 곳으로 대학교 면접을 보러 가야 했을 때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A는 나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내가 불안에 떨고, 결과에 좌절하고, 다가올 미래에 몸서리치는 악몽을 꾸는 날이면 A는 늘 따듯한 손으로 나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저 꿈일 뿐이라고, 너는 지금 내 곁에 있다고 그가 속삭이면 꿈속의 야수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세 번째 학기의 프로젝트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무렵,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이 왔다는 것은 A의 생일도 곧 다가옴을 의미한다. 벌써 A와 함께 보내는 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A에게 생일에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니, 그는 그저 단 둘이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평소에도 A는 생일에 단 둘이 있는 것을 좋아했다. 함께 보낸 지난 다섯 번의 생일도 나는 늘 A의 유일한 생일 파티 손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중세도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찾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특히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 Weg)>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강 건너 언덕을 따라 이어진 작은 골목길이다. A와 나는 지난 오 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이 길을 함께 올랐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철학자의 길로 향했다. 밤늦은 시간, 길은 말 그대로 암흑 속을 걷는 듯했다. 높은 돌담에 둘러싸인 길에 들어서면, 주변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직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우리는 한 손으로는 계단 옆 위태롭게 마주 서있는 난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잡고 길을 올랐다. 그러나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살피며 걷는 나와 달리, A는 앞장서서 묵묵히 길을 올랐다. 말없이 길을 걷던 A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 옆 전망대로 내손을 이끌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화려한 조명에 빛나는 하이델베르크의 야경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시야에 들어왔다. 시내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포근히 감싸여있었고, 외곽에는 자동차들이 강물을 따라 퍼레이드를 하듯 끊임없는 빛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점차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황홀한 도시의 빛들이 더욱더 격정적으로 빛나 보였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홀로 난간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프로젝트의 끝을 앞두고 나에게는 슬슬 졸업 논문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대학원 공부가 끝날 무렵이면, 어린 시절 쉽게 적어내지 못한 '장래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장래에 무엇이 되지 못하는 어른도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나는 이미 알아챘던 것은 아닐까.


"탁! 탁!"

나를 끝이 없는 감상에서 깨운 것은 촛불을 켜느라 바람과 싸우는 라이터 소리였다. 그제야 주위를 살펴보니 돌난간 위에는 다섯 개의 작은 초가 켜져 있었다. A를 찾아 어둠에 반쯤 가려진 벤치를 향해 걸어가니 그곳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A가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의 지난 오 년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들은 어두운 나의 시야에 시간(Zeit), 행복(Glück), 감정(Gefühl), 감사(Dankbarkeit)그리고 사랑(Liebe)의 이미지를 수놓았다. 이어서 그는 약속(Versprechen)과 미래(Zukunft)를 이야기했고, 이어진 짧은 침묵 후에 반쯤은 격앙된 그리고 반쯤은 잠긴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인, 나와 결혼해 줄래? (Jain, willst du meine Frau werden?)"


남자가 무릎을 꿇고 반지를 건네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프러포즈'를 의미한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주위는 너무 어두워 그의 손이 들린 것이 반지임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조심스레 손을 더듬어 만져보니, 그것은 반지였다. 순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불확실한 미래, 어찌 쉽게 이리 큰 약속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인생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갈 용기를 준 것은 A였다. 우리가 함께 꿈을 꾼다면 악몽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 (Ja!)"


나의 대답과 동시에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달이 나에게 보내준 선물이었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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