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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r 22. 2021

R - Recht (권리)

독일에서 지낼 권리

EP. 18

R - Recht (권리)




  평짜리 작은 부엌의   사이로 따듯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부엌 창가에 위태롭게 달려있는 오렌지색 커튼은 비록 인터넷에서  가격에 혹해서 주문한 것이지만 이렇게 햇살이 들어오는 날에는 덕분에 좁은 부엌이 따듯한 색으로 물들게 되었다. 나는 어제 집으로 날아온 Wiesbadener Kurier(비스바덴 쿠리어: 비스바덴 시청에서 발행하는 지역 신문) 나무 식탁 위에 놓고 들여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고 식탁  햇살이 창문처럼 네모나게 쏟아지는 바닥에는 깨끗하게 닦인 네 개의 쓰레기통이 놓여있다. 오전에 시작된 집안 대청소를  마친 참이었다. 커피를 들고 내다본 창밖에는  건물에 사는 대형견이 자기 몸만  발콘에 겨우 걸터앉아 햇빛을 쐬고 있다. 자꾸 고개를 돌려 집안을 확인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밖에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혹은 그저 나른한 오후의 햇살에 취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세상을 본다는데, 내가 지금  그런 모양이었다.


2학기의 끝은 한여름의 시작이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지 않는 날이면 시내와 공원은 물론 도로 위까지 사람들과 차들로 가득 찼다. 독일인들은 지독할 정도로 휴가 계획을 아주 일찍 짜는 사람들이다. 휴가를 떠나기  좋은  여름에 그래도 시내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학기  방학을 보낸 파타야의 해변과 석양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나는 어디로도 떠날  없었고 예매해놓은 티켓도 없었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비자 연장 때문이었다. 작년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비자를 받기 위해 외국인청(Ausländerbehörde: 외국인의 독일 거주  체류 허가, 비자 발급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 다녀왔다. 도착해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4학기로 진행되는 대학원 커리큘럼 덕분에 처음으로 2년짜리 비자를 받을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발급받은 거주증에 적혀있는 것은 달랑 1년짜리 비자. 그리하여 일 년 만에 또다시 모든 서류와 새로 찍은 증명사진(독일 규정에는 6개월 이내에 찍은 증명사진만을 인정한다) 가지고 쓰디쓴 수수료를 내러 가야 한다. 외국인청에서는 매번 비자를 갱신해야  무렵이 오면 어김없이 우편을 보내 예약일을 통보했다. 방문 시간은 보통  시간 이내로 적었지만 서류를 준비하는 것은 꽤나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공증할 문서가 있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영사관에도 다녀와야 했다. 결국 외국인청 예약일까지는 서류 준비를 하고 개강  잠시 한국에 다녀오는 것으로 여름휴가 씁쓸하게 단념해야 했다.      


 비스바덴의 외국인청은 주민 교육 센터(Volkshochschule) 바로 옆에 있다. 그곳에서 열리는 독일어 강의 때문에 외국인청으로 향하는 버스에는  많은 외국인이 타고 있었다. 물론 독일에서 겉모습으로만으로는 누가 외국인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독 두리번거리거나 긴장한 모습의 사람들은 어디서든 눈에 띄기 마련이다.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나와 같은 곳에서 내린다. 정류장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면 외국인청이,  반대편에는 주민교육센터가 있다. 나는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외국인청으로 향해야 했다. 심지어 외국인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거리의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학창 시절 교무실로 불려 갔을  느꼈던 땅이 꺼지는 듯한 기분은 성인이 되고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2014  독일에 난민이 몰려오기 시작했을   또한 독일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당시 비자를 신청하러 외국인청에 오면 대기실은 물론 복도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있었다. 건물 밖에는 주로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1층에 위치한 대기실은 보통 병원 대기실보다는 조금 지만 북쪽을 향해  있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대기실 조금 음습하게 느껴졌다.  바로 옆에는 스크린이 달린 자동 예약 기계가 있었  주변에는  몇몇 사람 불만족한 표정을 하고 기계를 위협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독일어가 익숙지 않은 사람이 자동 예약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기실 중앙에 있는 티브이 화면에 '호출 번호'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새로운 호출 번호가 메마른 효과음과 함께 나타나면 대기실의 모든 사람은 티브이를 보고 한숨을 쉬거나 서둘러 서류를 챙겨서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대기실 안쪽으로 들어오면 철제 다리를 가진 의자들이 벽을 따라  있고, 구석에는 어린이용 낡은 플라스틱 책상과 의자  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사실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한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인파를 헤치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 예약 시간에 늦지 않게 내가 왔다는 것을 려도 스크린 위에 나의 번호가 뜨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외국인청에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도 그 안에서 직원과 방문객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주로 얼굴에 생동감이 있었다. 비록 그것이 답답함, 초조함, 불안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도 그들의 얼굴에는 감정이 주는 삶의 활력이 있었다. 반면 직원들은 마녀에게 모든 감정을 다 빼앗기는 저주를 받은 동화 속 등장인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짜증스러운 일에도 그들의 얼굴에선 짜증 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짜증 나게 하는 사람들을 바로 내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 지나치게 들릴 수는 있지만, 과장(誇張)은 아니다. 그날 나는 호출되어 방에 들어간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외국인청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담당 직원은 내가 의자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그를 빤히 볼 때까지 인사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다. 책상 위의 나의 서류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나의 새로운 담당자인 듯했다. 그는 삼십 대 후반처럼 보였고 손에 반지를 낀 것을 보니 결혼한 듯했다. 내가 이렇게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안경 너머 보이는 그의 눈빛은 공허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나에게 독일어로 빠르고 긴 질문을 하였다.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말을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입을 반도 채 열지 않았으며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말의 맥락조차 파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조심스레 그에게 다시 한번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그제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마치 주어진 대본을 외는 배우처럼 대답했다. 아마 그의 배역은 아무래도 감정 없는 로봇이었을 것이다.


"제인 씨?"

"네. 맞습니다."

"나가세요. 그리고 다음에 독일어 할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오세요."

"네..? 아니에요. 천천히 이야기해주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나가세요. 그리고 다시 예약을 잡고 독일어 할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오세요."


그가  번째로  번째로 했던 말을 반복했을  나는  대화가 매우 일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당황함에 얼빠진  앉아있는 동안 그는 특유의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빠르게 우편으로 다음 예약일을 잡아 보내겠다는 말을 했다.  테이블에서는 그의 동료가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노인과 씨름 중이었다. 굽은 어깨에 사이  손을  마주 잡은  앉아있던 노인은 전쟁 난민인  보였는데, 그의 동료가 하소연하는 얘기를 듣자 하니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면서 노인과 나의 새로운 담당자를 번갈아 쳐다보고 나서 방을 나섰다.   번의 저항도 하지 못한  쫓겨난 직후에는 황당함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외국인청을 나가서야 정신이  나에게   번째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이어서 독일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것이 창피하기도 하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방문객들로 가득  북새통이었던 외국인청에서, 나는 지원이 필요하지도 신분이 불명확하지도 않고 모든 서류를  가져온 유일한 방문객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것은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체류할  있는 <권리>를 주는 사람은 외국인청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하는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남자 친구에게 조금  일어난 일을 전화를 걸어 알렸다. 넘쳐 오르는 감정에 독일어 단어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위의 돌부리처럼 채이는 독일어가 원망스러웠다.




 그로부터 삼 년이 흐른 지금 나의 담당자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텔레비전에서 난민과 관련한 뉴스가 뜸해진 지 오래였지만 외국인청은 여전히 체류허가를 얻기 위한 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실이나 복도가 방문객으로 넘쳐나던 예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한산해졌다. 삼 년 전 그날 독일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 친구는 다음 예약에 기꺼이 동행해주었다. 당시 담당 직원은 남자 친구를 데려오자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이 왔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그는 한결같이 불친절한 태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남자 친구를 응대했다. 사실 외국인청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남자 친구는 나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불친절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남자 친구는 나의 말이 모두 사실이 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 외국인청을 방문했을 때 나에게는 새로운 담당자가 배정되어있었다. 그는 나이가 매우 어려 보였는데 아마도 직업교육을  마친 모양이었다.  옆에는 나이가 지긋한 담당 직원이 함께였다. 그는  은퇴를 앞둔  자신의 옆에 앉은 어린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예전 담당자에 비해 눈에 띄게 친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는 내가 들어오면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긴장한 신입 직원과 정년퇴직을 앞둔 푸근한 독일 할아버지 앞에서  또한 긴장으로 힘을 주고 있던 어깨를 슬며시 내려놓을  있었다. 담당자가 바뀐 이후에 나의 외국인청 방문은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받은 입학증명서가 비자 신청에 미치는 위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가방에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를 챙겼다. 마지막으로 방금 인쇄한 재학 증명서를 집어 들자 얇은 A4 한 장 짜리 종이가 힘없이 펄럭였다. 이 작은 한 장의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곧 그 효력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독일이라는 나라는 곧바로 나를 한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한국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년 비자를 신청할 이유가 없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러면 언제까지 이렇게 이유를 만들고 권리를 증명할 종이를 얻을 수 있을까? 대학원의 절반을 지나며, 스며든 가슴 한구석 풀리지 않는 의문이 그렇게 그해 여름과 함께 깊어갔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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