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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r 08. 2021

P - Pattaya (파타야)

EP. 16

P - Pattaya (파타야)




 며칠 후 나와 남자 친구는 첫 학기 모든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을 자축할 겸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싸고 좋은 휴양지 중 따듯한 날씨가 있는 곳이었다. 독일의 겨울은 몇 주간 떠오를 듯하면서도 온전한 모습은 통 보여주지 않는 태양 때문에 한국의 겨울보다는 더 쌀쌀하게 느껴진다. 며칠이고 연인을 기다리듯 햇빛을 갈망하다 보면 어느새 우울한 마음이 추위와 함께 마음에 스며든다. 대게 10월 초부터 4월 초까지는 이런 음울한 날씨가 길게 이어져서 행인들도 겨울에는 꽁꽁 싸맨 겨울 외투 안에 냉랭한 얼굴을 꽁꽁 감싼 채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지난 두 번의 겨울을 꼼짝없이 독일에서 보내야만 했던 우리는 따사로운 태양이 칵테일 위로 쏟아지는 곳으로 그리고 서리가 내리는 아침에 전날 미리 빵을 사놓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으로 떠나기를 꿈꿨다. 할인 상품(Angebot)을 찾아 몇 날 며칠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던 남자 친구는 어느 날 저녁 우리의 목적지를 찾았다며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마침 영화를 보려던 나는 느린 걸음으로 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나 또한 지난 며칠간 목 빠지게 검색을 했던 터라 별다른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것은 태국의 유명한 휴양지 파타야였다. 화면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며 남자 친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이 찾은 호텔의 장점을 읊어댔다. 자랑스러운 목소리와 마치 지금 해변에 와있는 듯 벅찬 눈빛으로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것 봐, 호텔 앞에 바로 해변이 있어! 온종일 해변에서 놀다가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돼! 게다가 아침 식사도 포함되어 있어. 너는 아침에 꼭 밥부터 먹어야 하잖아?"

"오... 괜찮은데? 근데 파타야가 어디야? 공항은 방콕에 있는 거 알지?"

"걱정하지 마! 차로 가면 길어도 두 시간이야. 그리고 도시가 외곽에 있으면 수도인 방콕보다는 붐비지 않을 거야."


가만히 들어보니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사진 속 호텔은 괜찮아 보였다. 사실 항상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에어비앤비나 저가 호텔을 이용하다가, 남자 친구가 취직한 덕에 처음으로 휴양지 호텔에 가게 된 것이었다. 호텔은 예전의 선택지들과 비교해보면, 호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태국이었다. 따듯한 기후와 각종 산해진미가 인터넷에서 본듯한 이미지들과 겹쳐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자, 우리는 홀린 듯 신용카드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결제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서야 뒤늦게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태국과 우리가 머물게 될 파타야라는 도시에 대해서 찾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파타야는 방콕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는 휴양도시인데, 항구도시라 주변에 유흥지도 많고 바닷가에는 고급 호텔이 들어서 있어 유럽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였다. 시내 곳곳에는 마사지샵들도 있었고, 식당도 골목마다 들어서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을 손가락으로 휘적거리다 보니, 끼니를 못 때워 고생하는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내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다시 영화를 재생했다. 시험이 끝난 후 한동안은 머리를 좀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따듯한 햇살이 비치는 태국의 해변에 가있었다.




 4월 초 독일 날씨는 겨울의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여전치 차가운 바람 때문에 공항을 찾은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터웠다. 하지만 우리가 든 여행용 가방 안에는 얇은 여름옷과 수영복, 들뜬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탑승 게이트 앞에서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항공사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둘러보니, 그 속에는 젊거나 나이 든 커플, 가족 단위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과 혼자인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독일 어디를 가도 볼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였다. 한 무리는 다른 무리와는 구별되었지만, 각각의 집합 안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리고 조화로운 개별 무리의 집합 속, 우리는 어딘가 달랐다. 어딘가 짝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 두 개를 우겨 맞추어 놓은 마냥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탑승 시각에 늦은 사람들도 가끔은 우리를 돌아보느라 발걸음을 늦추곤 했다. 더군다나 그 두 퍼즐 조각은 잘못 맞춰졌음에도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굳이 그 앞에 가서 한 마디씩 하게끔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비스바덴 시내를 남자 친구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을 때였다. 남자 친구는 수시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특히 이미 했던 이야기도 늘 새로운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날도 그렇게 둘이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시내 한복판의 번화가를 걷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남자 친구와 나를 노골적인 시선으로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매우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독일에 온 후 이렇듯 곤란한 상황을 자주 마주치게 된 터라 내심 그러려니 하고 눈을 도로에 고정하고 계속 걸었다. 잠시 후 남자 친구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저 할아버지 좀 이상한데?"

"왜? 뭐라고 했어?"

"아니 왜... 너를 보고 '내가 저러려고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게 아닌데'라는 말을 하는 거지?"

"뭐라고? 우리한테 한 얘기 확실해?"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게다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모르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상해. 보통의 독일 사람들은 이렇게 무례하지 않아."


물론 이런 일은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있었다. 삼 년 전 남자 친구가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와 남자 친구는 어디서든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지라 손을 놓으면 서로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그런데 항상 지하철이나 사람이 많은 거리를 지날 때면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종로 사거리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우리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혀를 차는 노인을 만난 적도 있었다.


전광판의 안내 문구가 바뀜과 함께 공항 스피커에선 우리가 탈 비행기 편명과 탑승 안내가 친절하면서도 사무적인 목소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악몽에서 깨우듯 나의 정신을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다. 잠시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비행기 탑승을 위해 짐을 챙기고 서두르는 터라 그 기분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가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 비행을 견디고 드디어 도착한 방콕은 한여름이었다. 대게 여행하는 나라의 날씨는 공항에서 파는 음료수에서부터 알 수 있다. 바로 공항에서 아이스커피를 파는지이다. 특정 커피 체인점을 제외하고 아이스 음료를 찾아보기 힘든 독일과 달리 태국 공항 출국장 바로 앞에서는 시원한 얼음이 든 커피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항에서 파타야로 가는 버스 안에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가득했다. 파타야에서 도착한 후에는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우리를 태우려 기다리고 있는 에어컨 대신 버스는 사방이 뚫려있는 작은 봉고차였다. 마치 수레 위에 자동차 바뀌가 달린 것 같은 모습에 '차'라기보다는 모터가 달린 '탈것'에 가까웠다. 봉고차가 회색빛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갈색의 자갈밭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있는 작은 마을에 접어들었다. 차 안에는 나와 남자 친구 둘 외에도 젊은 부부가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차가 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갈 때마다 불안한 눈빛으로 조용히 차 안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그들마저 내리고 난 후에는 우리 둘과 기사 아저씨 셋이서 침묵을 이어가야만 했다. 능숙하게 그 탈것을 좌우로 몰던 아저씨는 환승지에서 짐을 실어줄 때부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목적지에서 미리 환전한 태국 화폐인 바트로 팁을 주자 그는 말없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는 다시 탈 것을 몰고는 사라졌다.


도착한 호텔은 나무로 된 인테리어에 고급스러운 조명으로 꾸며진 로비가 인상적이었다. 로비 입구 큰 창을 통해서 멀리 보이는 해변과 직원들의 깔끔한 유니폼은 휴양지에 도착한 기분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현지 직원들은 친절했고 유창한 영어를 썼다. 하지만 우리가 체크인하는 동안 옆에 서 있던 손님들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 다른 직원과 실랑이 중이었다. 담당 직원이 신분증을 복사하는 동안에는 로비의 직원들보다 훨씬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의 직원들이 우리의 짐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받은 방에 짐을 옮겨다 준 직원들은 잠시 서성거리다가 팁을 받고서야 웃는 얼굴로 사라졌다. 드디어 방안에 둘만 남게 되자 우리는 그제야 조용히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호텔 방은 인터넷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달랐다. 깨끗하게 정리된 화장실 구석에도 여전히 녹조가 남아있었고, 침대에 누우면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에어컨에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했다. 그러나 며칠 쉬다 가기에 크게 불평할 정도는 아니었다. 방 한가운데 놓여있는 소파에 누워 잠시 다리를 뻗어보았다. 다행히도 현관 정면에 있는 베란다 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멀리서도 파란 물결이 찬란하게 빛났다. 바다도 역시 사진에서 본 것보다는 더 먼 곳에 있었지만, 시야가 닿는 곳의 있는 한 조각 바다가 주는 위로는 컸다. 얼추 짐 정리를 한 후에 방에서 나가보니 1층 중앙에 큰 호텔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을 지나 바다로 난 쪽문을 통해 나오니 정면에 파타야의 해변이 보였다. 남자 친구가 기대했던 호텔 손님들에게만 개방된 Privat beach의 정체는 호텔을 따라 좌우로 울타리를 쳐놓은 것이 다였다. 좌우 모두 바다가 방파제로 막혀있어 탁 트인 경치는 아니었지만 방을 열고 나오면 바로 모래사장과 햇빛, 그리고 푸른 바닷물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파타야의 뜨거운 낮이 지나고 밤이 다가오면 수평선 너머로 커다란 태양이 매일같이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면 우리가 누워있던 해변은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낮에는 태국의 맥주들을 하나씩 연구하며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해변에서, 저녁엔 에어컨이 달린 호텔 방에서 포장해 온 음식과 영화를 보며 휴양지가 주는 달콤함에 취해갔다.




그렇게 바쁘고도 게으른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출국일을 사흘 앞두고서야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호텔을 벗어나 주변을 탐험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호텔과 공항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독일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그때까지 파타야에 도착한 후 마트나 근처 식당 말고는 반경 1Km를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비 직원은 마치 매뉴얼을 읽듯 호텔 정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오분 정도 걸으면 큰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 늘 툭툭(태국에서 소형 택시 격인 이동 수단)이 지난다고 했다. 그는 상냥한 목소리로 하지만 원한다면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주변 구경도 할 겸 걸어가겠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우리에게 미소로 대답한 후 무뚝뚝한 얼굴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높고 화려한 호텔 정문을 나서자마자 맞은편 들판에서 뜨거운 흙바람이 불어왔다. 들판 위에는 몇몇 야자수를 제외하고는 듬성듬성 나 있는 잡초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야자수 옆에는 대부분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고, 쓰레기에게 나무 아래 그늘을 뺏긴 들개들은 부식토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늘 한점 없는 땡볕을 걸으니 땀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땡볕 아래 흙길 위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던 호텔 바닷가와는 공기부터 달랐다. 황무지 끝자락이 나오기도 전에 사방에서는 공사장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대부분은 신축 주택 또는 별장처럼 보였다. 공사장 이후로는 식당과 점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목 끝에 편의점을 발견하고 길을 건너려 주위를 둘러보려는 순간 오른편에서 거대한 화물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삼 미터는 족히 넘는 듯한 화물 트럭 위에 나란히 앉아있던 네 명의 인부들은 큰 목소리로 저마다 다른 차에게 운전에 관한 훈수를 두고 있었다.


요란스러운 외양 때문인지 아니면 소란스러운 운전사의 호객행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툭툭을 찾는 일은 쉬웠다. 툭툭을 타기 전에 운전사에게 '워킹스트리트'라고 말을 하니 그는 투박한 손짓과 함께 차 안을 가리켰다. 우리가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툭툭은 다시 시끄러운 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유흥지가 모여있는 '워킹스트리트'로 가는 길에는 싸구려 음식점과 기념품샵 그리고 마사지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다. 노을이 질 무렵 길을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아직 낮의 열기를 머금고 있었는데, 딱히 창문이라 할 것도 없이 사방이 뚫린 툭툭의 승객들은 텁텁한 공기를 그대로 마셔야만 했다. 게다가 심하게 흔들리는 툭툭에 거리에서 불어오는 텁텁한 매연까지 더는 견디기 힘들어지자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내려 걷기로 했다. 운전사는 지폐 두장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툭툭을 몰고 미련 없이 떠났다. 두발로 직접 걷게 된 파타야의 거리는 빠르게 지나갈 때보다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골목마다 서 있는 상인들은 끊임없이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넸고, 길이 조금 넓어지면 주전부리들을 파는 이동점포가 곳곳에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위치한 파사드 아래의 상점들은 홍콩의 야시장을 연상케 했고, 미로같이 이어진 작은 점포들은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도 닮아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며 발걸음을 옮기니 날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우리의 길은 '워킹 스트리트' 방향에 가까워질수록 더 환하게 빛이 났다. 밤이 다가올수록 거리는 가게와 주점의 화려한 불빛과 빠른 비트의 음악 소리로 깨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에는 걸그룹을 연상케 하는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의 무리가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향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멀끔하게 입은 호객꾼들은 관광객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르게 쏘다녔는데, 그들이 이끄는 곳은 대부분 어두운 천이나 문으로 가려져 있는 극장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건네주는 전단지 안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었기에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어떤 가게들보다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소위 '스포츠 바'로 불리는 주점이었다. 주로 거리를 향해 출입구가 크게 나 있는 주점 안 한편에는 큰 텔레비전이, 다른 한편에는 중앙에 바텐더가 있는 바(bar)가 있었다. 그리고 스포츠 바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당구대였고, 그것보다 더 자주 보이는 것은 폴댄서와 폴대였다. 주점의 주요 고객들은 중년층의 서양 남자인 듯했는데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그들은 주로 다수의 태국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혼자 있을 때면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구애의 눈길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혼자 있던, 무리에 둘러싸여 있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딘가 꿈을 꾸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휴양지에서는 당연한 풍경이었고 그들을 위로해줄 충분한 오락거리도 주변에 넘쳐났다. 워킹스트리트 끝자락에 가니 주변 섬으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왔다. 우리는 막다른 길이 나오자 다시 온 길을 지나 숙소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길의 뒷모습을 보며 걷다 보니, 처음 봤을 때는 마냥 별천지 같던 유흥가의 모습이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길거리를 걷는 동안 한 뼘 더 무르익은 밤 때문인 듯도 했고 돌아다니는 사이에 길이 눈에 익숙해진 듯도 했다. 그새 거리는 더 많은 호객꾼과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도로와 인도 모두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더위와 주변 인파에 지쳐 처음과는 다른 기세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시끄러운 대로변 너머 스포츠 바 안쪽에 앉아있는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당구대 옆 큰 테이블에는 중년의 독일인들이 앉아있었는데 그 옆에는 화장이 진한 태국 여자들이 둘러쌓듯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웃는 낯 사이에는 고단한 피로감이 느껴졌고, 얼큰하게 취해있는 남자의 어깨 위에는 경직된 슬픔이 고여있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백인 남자와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함께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듯 풋풋한 연인들도 있었고 부부인 듯 편안해 보이는 연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연인들이 대부분 60대의 백인 남자와 40대의 태국인 여자인 점이 눈에 띄었는데, 그들의 실루엣은 너무나 비슷해서 종종 같은 커플을 다시 마주치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호텔에서는 왜 비슷한 커플을 보지 못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게 휴양지를 다른 각도로 보게 되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차례차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골목마다 독일어로 안내문을 써 붙인 식당들이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일어 안내문이 붙은 식당에는 실제로 독일인들이 주로 모여있었는데, 그들의 차림이나 태도를 보아하니 단기 여행자가 아니라 오래 이곳에 머문 듯 이곳 생활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곳에는 또한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주로 남녀끼리 짝을 지어 앉거나 미팅을 하듯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휴양지의 삶이 일상이 돼버린 그들은 따분한 표정으로 거리를 응시하다가도 우리가 그 앞을 지나기만 하면,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빛나는 눈을 했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그들 모습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에 땀을 말리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검색창에 '파타야와 독일'을 쳐보았다. 인터넷에서 태국은 독일인 싱글 남성이 정년퇴직 후 많이 찾는 휴양지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태국은 독일보다 저렴한 생활비로 비교적 더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나라인 것이다. 태국에는 심지어 이런 독일 남성들을 위해 법, 행정 또는 부동산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태국 여성과의 중매 업무까지 독일인으로 이루어진 상담사들이 조직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머니가 두둑한 인생 황혼기의 싱글 남자는 경제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태국 중년 여성들에게 아주 좋은 동반자이다. 독일 남자들에게도 태국 여자는 인생의 동반자로 매력적이다. 독일의 한 방송사가 방영한 'Deutsch in Pattaya'라는 도큐멘테이션에서 한 독일 남성은 아시아계 여자가 독일 여자보다 순종적이어서 좋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남녀평등과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독일 여자보다는 맹목적으로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파타야는 1960년 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국 군인들의 휴양지로 번성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독일 남성들의 섹스 관광지로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하다고 한다. 도큐멘테이션이 방영된 2012년만 해도 매년 30만 명의 독일인들이 그런 비슷한 이유로 파타야를 찾았고, 우리가 그곳을 방문한 2018년에도 그러한 흐름은 바뀌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단순히 관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국 현지에서 알게 되거나 중매를 통해서 교제를 시작한 후 서로 마음이 맞으면 그들은 그대로 태국에서 같이 살거나 독일로 함께 돌아간다. 이때 비용은 남자 측에서 모두 부담하고 종종 여자 쪽 가족들에게까지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말 서로를 사랑해서 국경을 초월하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각자의 목적을 위해 계약 결혼처럼 성사되는 경우도 많다. 휴양지 파타야의 어두운 이면을 알게 되니 나와 남자 친구를 빤히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 또한 이해가 되었다. 백인 남자와 동양인 여자 커플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들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60대 남성과 40대 여성의 짝으로 이루어진 그들과 달리 우리는 20대 후반 커플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들처럼 누군가는 비위를 맞추고 다른 이는 그 대가를 지불하는 관계와는 상당히 멀어 보였다. 그리고 아마 그 점이 그들에게는 어딘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잘못 연결한 퍼즐 조각처럼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나의 눈에 그들이 그렇게 비친 것처럼 말이다.




 파타야를 떠나기 하루 전 우리는 늘 저녁을 포장해 오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의 주인은 자식 셋을 둔 부모였는데, 며칠을 연달아 비슷한 메뉴를 포장해가자 우리의 얼굴을 이내 익힌 듯했다. 식당은 허름한 건물에 가벽으로 구역을 나눈 작은 점포였고, 바깥과 식당 안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허름했다. 식당 입구 바로 옆에는 각종 튀긴 음식을 바로 포장해 갈 수 있게끔 음식이 진열되어 있었다. 부부의 장남으로 보이는 청년이 한 손으로는 파리를 쫓고 다른 손으로는 꼬치를 튀겼다.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주로 식당 밖에서 음식들을 포장해갔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식당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둘째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보며 앉아있었다. 아이가 앉은 테이블 위에는 낡은 선풍기가 돌아가고는 있었지만 바람 대신 소음만 나올 뿐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남자 친구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가게의 막내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테이블 뒤에 숨어 우리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동그란 눈으로 우리를 관찰하던 아이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꺄르륵하며 웃었다. 아직 말을 떼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눈동자에는 어떤 편견도 선입견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방콕에 도착한 날은 독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때는 마침 태국의 새해맞이 명절인 '송크란' 전날이었고 사람이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밖에 나가지 않고 호텔 안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차가운 침대 시트에 지난 일주일간의 해수욕으로 지친 피부도 식히며 한가롭게 오후를 보냈다. 하지만 이내 아쉬운 마음에 해가 지기 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호텔 야외 수영장으로 나갔다. 호텔 이층에 위치한 수영장은 큰 직사각형 모양의 야외 수영장이었다. 중앙에 위치한 수영장 바(bar)에서는 멀끔히 차려입은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고, 하얀색 폴로셔츠를 입은 직원들은 곳곳에서 손님들에게 비치타월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수영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물놀이를 하거나 여유롭게 수면에 떠다니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수영장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부모들과 젊은 커플들부터 나이 든 커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갖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우리가 파타야에서 수없이 봤던 커플들과 비슷한 모습의 연인도 있었다. 여자가 남자가 앉을자리에 비치타월을 깔아주면 남자는 여자가 마실 칵테일을 들고 왔다. 서로를 마주 보며 나란히 누워있는 그들은 행복한 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이 세상에 잘못 맞추어진 퍼즐 조각 같은 인연은 없다. 만남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비슷해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듯이 달라서 잘 맞는 사람들도 있다. 겉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겉모습이 다른만큼, 우리의 이음새가 서로 닮은 다른 연인들만큼 매끄럽지 않은 만큼 그의 손을 더욱 꽉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속사정도 모른 채 쉽게 다른 사람의 삶을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도 미련한 일이다. 남자 친구는 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갈색 속눈썹 아래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대학원의 두 번째 학기 시작 바로 직전 우리의 파타야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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