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제인 Mar 01. 2021

O - Oase (오아시스)

험난한 독일 생활 중 얻게 된 작은 성취

EP. 15

O - Oase (오아시스)


 

 시내 중심가에는 오래된 도서관이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도서관은  번의  전쟁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시내의 현대적인 건물 사이에 있어 유난히 눈에 . 둔탁한 오래된 나무로 된 정문을 열고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서면 모든 책상 열람실 문 보게끔 놓여있는데 그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왼쪽으로 크고 오래된 창문들이 줄지어 나있다. 열람실 내부 안의 모든 것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백 년은 족히 된듯한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래된 책들이 자리 잡고 있는 서고는 물론 책상과 의자 그리고 바닥까지 예외는 아니다. 삐걱거리는 나뭇 바닥을 걸어 열람실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자리에 앉아있는 노인들이다. 그들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마치 도서관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옷을 입는데만 족히 반시간은 걸렸을법한 신사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거리의 부랑자라고 해도 믿을법한 차림을  노인도 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는 노인들의 눈빛을  안을 들여다볼 때만은 비슷하다. 세월의 무게로 짓눌린 눈꺼풀 아래에는 젊었을 적의 호기심 많은 눈빛들이 조그맣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낡은 아궁이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작은 불꽃처럼 말이다. 도서관 안에서 조용히 타고 있는 그 작은 불꽃들은 그들의 낡은 옷이나 축축한 안개가 한껏  눈꺼풀이 가리지 못하는 어떤 강렬한 힘이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노인들은 다시 책장을 덮고 도서관 문턱을 넘어 바깥으로 서면, 다시  어느 누구의 흥미도 유발하지 않을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어 느릿한 걸음걸이로 집을 향해 걸어간다.


 도서관을 매일같이 드나들기 시작할 무렵  눈을 사로잡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부랑자보다도 낡고 허름한 옷을 입고 삽살개 같은  곱슬머리를  중년의 사나이였는데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차림은 너무나 초라해서, 만약 그가 도서관이 아닌 식당이나 쇼핑센터에 들어섰다면 모두들  번씩은 의문의 눈초리를 보낼 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일찍 도서관에 와서는 꽤나  시간을 책을 읽는데 몰두했다. 그리고 그가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옷차림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실제로 도서관은   없는 사람들이나 추위를 피해 들어온 부랑자들의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혹여 그들을 제지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그가 책을 꺼내  순간 그는  이상   없는 부랑자가 아닌 독서를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유심히 관찰하던 도서관 사서조차 책을 꺼내  사람 앞에서는 다시 경계를 낮추고 자신의 일거리로 눈길을 돌린다.


이렇게  앞에서 모두는 평등해진다. 그리고  또한 도서관이 주는 자유의 혜택을 가장 맘껏 누리는 사람  하나였다. 컴퓨터 과학, 디자인 그리고 미디어 학과가 모여있는 학교 캠퍼스 전체에서 나는 유일한 외국인은 아니었으나 아시아계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극소수의 학생  하나였다. 어딜 가나 시선은 나를 따라다녔다. 수업을 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온 교수들도 매점의 아저씨 그리고 강의실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도 나를 처음 마주치면  크고 작은 물음표로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치 모든 것이  정돈되어 진열된 장식장에서 뜻하지 않은 물건을 보게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에도 사람은 쉽게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스스로 피부와 눈동자의 , 얼굴의 생김새 혹은 입고 있는 옷차림이나 들고 있는 가방 심지어 걸음걸이에서  시선의 이유를 찾아보았다. 이들의 시선의 책임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를 찾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네가 아무리 나를 쳐다보아도 나는 너에게 어떠한 관심을 보이지 않겠다 수동적인 공격성을 띄고서 나는  밖에서는   동공에 메마른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도시에서 아시아계의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보통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외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언뜻 보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외부의 관심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있다. 거울에 비쳐보듯 같은 얼굴을  사람에게 굳이 물어봐야 무엇하겠나. 독일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Scheuklappenblick>이라는 단어로 묘사한다. 마치 말이   옆에 눈가리개(Scheuklappen)  시선(Blick)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도서관 독일에서 나의 눈가리개를 벗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는 유일한 장소였다. 



 

  학기는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가 말한 그대로 치열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은 커리큘럼에 적응해갔다. 독일 대학교의 강의는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에 비교해보자면, 일단 강의실 분위기부터가 상당히 달랐다. 수업 시작 전에 출석체크를 해서 성적에 반영하는 대부분의 한국의 강의들과 다르게, 우리 학교는 대체로 출석체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교수가 수업의  시간에 공지를 해주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필수로 과제를 발표해야 하거나 수업 참여를 중요시하는 특정 교수님의 강의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원할 때만 강의에 참석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자유롭게 음식을 먹기도 했다. 물론 대놓고 식사를 하는 학생들은 없었으나,  또는 초콜릿 따위의 군것질은 교수들이 제재하지 않는 한에서  놓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시험  때도 간단한 음식 섭취가 가능했다. 하지만 수업이 대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어도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긴장감 . 시험은 거의 대부분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진행되기에 학생들 사이 성적 경쟁은 없었지만 독일 대학교들은 대부분 삼진아웃과 비슷한 시험제도를 가지고 었다. 이는 시험에 떨어질 경우    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번째 시험에도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는 학교에서 제적당하며, 졸업은 커녕 학업을 이어갈 수도 없게 된다. 이는 학생들이 재량껏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있지만 또한 결과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여전히 버거웠던 나는 착실하게  수업에 참가하였으나, 몇몇 학생들은 같은 학과의 학생인 것을 까먹을 정도로 드문드문 수업에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에 성실히 출석한다고 별다른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들은 대부분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질문에 대답하는 학생들을 선호했다. 그리고 대답은커녕 교수가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던 나는 교수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거나 괜스레 교수의 관심을 끌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공책만 노려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간이 지나자 교수들은 나에게 관심을 잃어갔고,  또한 굳이 해야   빼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 또한 교수의 강의를 무조건 받아 적는 것보다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하는 편이었다. 이해가  가는 부분에서는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쉬운  어려운  가리지 않고 질문을 했다. 그러면 그때부터 강의실은 순간적으로 학생들의 질문과 교수의 설명으로 열기를 띄게 되었다. 그리고  열띤 토론장에서 조용한 관객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과목의 교수가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토론하기를 특히 좋아했는데, 강단보다는 학생들이 앉아있는 강의실 중간 책상에 걸터앉아 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의 주변에 마치 피크닉  것처럼 둥그렇게 둘러앉게 되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그에게 호기심 많은 학생이 중국에 관한  가지 질문을 했고, 대화의 주제는  상류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휘청이며 급류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나게 교수와  학생의 두서없는 대화들이 오고 가는 도중, 그동안 나에게 질문은 둘째치고 눈길도  주지 않던 교수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며, "중국 주석 시진핑의 현재 부인 이름이 뭐지?" 하며 물었다. 너무나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만 던진 질문이라 순간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나를 주목했다.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어디서 들어봤는데 뭐였더라'부터 '아니  나한테 그걸 묻지? 내가 중국인인  아나?' 그리고 '교수라는 사람이 학생의 외모만 보고 평가해도 되나'까지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러나 질문에 불쾌할 새도 없이 나의 기억에서 그녀의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펑리위안이요. 중국어로는 다르게 발음하지만, 한국어로는 펑리위안이라고 합니다." 교수는 내가 굳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암시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고맙 짧은 인사를 남기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순간 내가 교수의 선입견을  굳혀준 것이라는 생각에 아차 싶었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다시 달라져있었고 게다가 딱히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까지 교수가 나에게 관심을 주는 일은 다신 없었다. 아마도 그동안 아시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관객처럼 강의실 한구석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듣기만 하는 것은 열성적으로 떠드는 대다수의 독일인 학생들에 비교했을 때 편한 일은 아니었다. 학기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쯤 같은 반 대다수의 학생들은 내가 수업을 열심히는 하지만, 독일어 수업을 따라가는 것을 벅차 해 한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시험이 다가오자 몇몇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수업에서의 발언들로 똘똘한 이미지를 차지하게 된 학생들에게 달려가 필기를 공유해줄 것을 물어보았는데 누구도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수업 내용을 묻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다. 학기말이 되면서 쏟아지는 과제들과 앞둔 다섯 개의 시험 준비로 내 발등에는 커다란 불이 떨어졌다. 그렇게 되자 나는 체면도 차리지 않고 여기저기 같은 반 학생들의 필기를 물어보기 바빴고, 학기초에 결성한 스터디 모임에도 꾸준히 갔다. 비록 수업시간에는 입 한번 벙끗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귀는 늘 어디서든 쫑긋 세우고 발등에 떨어진 시험이라는 불을 끄기 위해 노력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고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학기에 치르게  시험은  다섯 개였다. 같은  보게   개의 시험을 제외한 나머지 시험은 대략 일주일에 나뉘어 치러졌다. 각각의 시험은  시간 내지  시간 안에 치러졌는데, 모두 주관식이었다.  과목당 육십 개가 넘는 문제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문제로만 이루어진 시험도 있었다. 물론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에서처럼 독일에서도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족보가 대대로 내려왔는데, 같은  모두가 공유하는 서버에 적힌 문서에는 특정 연도에 어떤 교수가 이러한 문제를 냈다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하지만 교수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족보에 적힌 똑같은 문제는 나오지 않았고 만약 그렇다 해도 자신이 이해한 대로 대답을 적지 않으면 오히려 감점요소가 되었다. 더군다나 교수가 강의   표현을 똑같이 반복하며 답안을 작성한 경우에도 좋은 점수를 얻을  없었다. 강의에서 교수의 말을 이해하고, 수업자료를 보며 기억해도 나만의 단어로  내용을 작성할  없으면 말장 꽝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시험날의 학교 풍경은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몇몇 학생들은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필기 내용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몇몇은 카드로 중요 개념을 정리한 것을 반복해서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 머릿속에 내용을 집어넣으려 했다. 극소수의 학생들만 펜과 학생증만을 달랑 들고 와서는 수다를 떨었는데, 그마저도 서로 질문을 하며 배운 내용을 복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두를 한 번에 했다. 필기와 카드를 번갈아가며 뚫어지게 응시를 하다가도, 순간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바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를 반복했다. 대게는 나의 이런 질문에 기꺼이 답해주었지만, 몇몇 깍쟁이 같은 학생들은 "그거 족보에 들어있었어."라고 하며 원하던 대답은 주지 않고 그저 퉁명스럽게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공책으로 눈을 돌렸지만 필기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무안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험이 끝나고 이주가 지나자 시험을  때보다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후에 재시험을 봐야 하기에  학기 방학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초조하게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심시간 지날 무렵 같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왓츠앱의 그룹채팅방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시험 결과가 떴다는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포털 사이트  온통 독일어로 적힌 메뉴들을 헤집고 성적확인 페이지를 클릭했다. 그리고 한눈에 다섯  시험 모두의 성적이 눈에 들어왔다. 시험에 떨어진 경우에는 성적 대신 <nicht bestanden(불통과)>이라고 적혀있는데, 나의 성적표에는 그 무서운 단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험을 모두 통과한 것이다. 세부사항을 열어보니 학생들의 성적이 높은 점수부터 낮은 점수  명씩 분배되었는지 그리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수는 얼마까지 나와있었다. 나의 성적들은 기대보다 높은 것에서부터 중간 정도의 성적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낙제를 면한 것까지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낮은 성적을 받은 독일 학생들이 꽤나 많은 과목도 있었다. 게다가 아슬하게 통과한  과목은 6명이나 낙제를  분야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지난  개월의 시간들 속의 장면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충격의 오리엔테이션, 떨렸다는 말로 모두 표현할  없는  발표, 용기를 내서 들어간 스터디클럽부터 교수의 눈빛, 같은 반 학생들의 시선 그리고 낮부터 밤까지 망부석처럼 지키고 앉아있던 도서관의 나무의자와 늦은 저녁 도서관 창밖에 비치던 나의 모습들.  모든 것이 찰나에 서로 얽히고설킨 채 순서 없이 떠올랐다. 사막의 뜨거운 뙤약볕처럼 독일의 모든 것들은 대학원이라는 사막을 지나는 나에게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중간중간 물을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불분명해도 길을 알려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닌 것은 독일어라는 지팡이 하나였는데 그마저도 부실해,  걸음 떼지 않았는데도 부러지고 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드디어 눈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햇빛이 강렬했던 만큼, 오아시스에서 만난 시험 통과라는 물의 맛은 너무나 달콤했다.  번을 페이지를 새로 로딩하기를 반복해보아도 새로  페이지 안에 나의 성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이전 14화 N - Nonchalance (평온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