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by 호운

"형님,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뭔데."

"뺏읍시다."

"... 뭘?"

"정자를요."

"어떻게?"

진국이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 다 같은 상상을 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형님."

"일단 따라와 봐."


걸으면서 진국이 물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형님?"

"PC방."

"PC방이요?"

대답 대신 걸음을 재촉했다.


골목을 돌아 PC방 앞에 섰다.

'이맘때 나 맨날 여기 다녔지.'

주야장천 몇 시간이고 눌러앉던 곳.

어디 가는지 물어보면 답이 뻔했다.


"여기서 기다려."

"왜요?"

"곧 올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어귀에서

젊은 관희가 나타났다.

역시나였다.


젊은 관희가 PC방 앞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더니 진국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미래에서 왔다더니 벌써 친구를 사귄 건가요?"

"얘도 미래에서 왔어."

"미래에는 위아래도 없나 봐요?"

말투가 상당히 버르장머리 없었다.


"잠깐 걸으면서 얘기 좀 하자."

20대 40대 60대가 무리 지어 걷는 모습이

세대 대통합적인 느낌이었다.


젊은 관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미래에서 오신 거 맞아요?"

"맞다니까. 잘 봐봐, 너랑 솔직히 닮았잖아."

"밤새 생각해 봤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진짜 같기도 하고..."

"손해 볼 거 없다. 한번 믿어봐."


"근데 미래의 나라고 해서

꼭 줘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 뭐... 그렇긴 한데..."

"그냥 거절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너 그러니까 미래의 네가

자식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저한테는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은데요."

젊은 관희가 말을 잘랐다.


'나도 이때는 나밖에 몰랐구나.'

"너 MZ세대냐?"

"MZ가 뭐예요?"

"아 그런 게 있어... 제발 부탁이다."

진국이 난데없이 끼어들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형님."

"할아버지... 제가 왜 형님인가요?"

"미래에서 왔다고 했잖아요.

관희 형님은 제가 좋아하는 형님이었습니다."

"아.... 네......."


젊은 관희가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미래에서 왔다고 했죠?

그럼 제가 지금 누구 좋아하는지 알겠네요?"

"당연하지."


젊은 관희의 눈이 커졌다.

"진짜요? 누구요?"

"이수현."

젊은 관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 어떻게 알아요?"

"내가 너잖아."


"... 그럼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를 그 수현이랑 사귀게 해 줘요.

그럼 뭐... 그 정자? 기꺼이 드리죠."

"... 그게 조건이야?"

"네."


나는 진국을 슬쩍 바라봤다.

진국이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그래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알겠어. 해줄게."

"진짜요?"

"응."

젊은 관희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흔쾌히 허락하는 걸 보니

제가 수현이랑 사귀기는 했나 보죠? 캬캬캬"

이 녀석이 너무 환하게 웃으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수현. 얼마 만에 떠올려보는 이름인지.

반갑기도 했다.

동시에 그 이름 석 자가

내 20살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도 함께 떠올랐다.


'수현이는 결국 준영이 형이랑 사귀었었지...'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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