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우리 동네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도서관 인프라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국민학교 시절,
나에게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거대한 실내 놀이터였다.
좁은 집 거실과는 차원이 다른 해방감.
딱히 책을 펼치지 않아도
넓은 어린이자료실 바닥을
뒹굴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다 배꼽시계가 울리면
지하 식당으로 달려가 허기를 달래던,
그곳은 나의 완벽한 낙원이었다.
중학교 시절의 도서관은
은밀한 공범의 장소였다.
하교 후 열람실 구석에 틀어박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구몬 학습 답안지를 베꼈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꼼수의 공간이었지만,
그마저도 도서관이라는 이름 아래서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은 비로소
합법적인 탈출구가 되었다.
"도서관 다녀올게요"라는 말 한마디면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어울려도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열람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척
어깨를 들썩이며 쪽지를 돌리고,
몰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주변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도서관에 오는 예쁜 여학생들을
볼 수 있는 건 덤이었다.
수험생이 되었을 땐 별다른 꿈이 없었다.
어정쩡한 수능 점수를 손에 쥐고
배치표 사이를 헤매다 한 단어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문헌정보학과'
머릿속엔 익숙한 풍경 하나가 스쳤다.
'도서관?'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곳을 지원했다.
대학 시절 내내
'비싼 등록금이 아까워서라도
전공은 살려야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다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 낙원이었고,
사춘기 시절 탈출구였던 바로
동네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