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X)

by 호운

서점에 가면 책 한 권에

20,000원 가까이하는 시대다.


밥 한 끼 값보다 비싼 책들이

적게는 수천 권,

많게는 수십만 권이 모인 도서관은

사실 지식의 금고이자,

문자 그대로 '찐' 금고다.


한 권에 2만 원씩 5만 권으로만

계산해도 10억이다.

시민들의 혈세로 일군

거대한 자산 소장처인 셈이다.


​옛날 사람들은 참 너그러웠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며

지적 허영이나 배움에 대한 갈증을

이해해 주곤 했으니까.


무료로 책을 빌린다는 개념이 없었던

그 당시는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무료로 누구나 원하는 책을

충분히 빌려 읽을 수 있는 시대인 지금

책 도둑은 명백한 '도둑'이다.


공공재를 사유화하기 위해 부리는

지독하고 고의적인 수법들을 마주하다 보면,

인류애가 상실되는 기분이다.


​지금부터 공개하는 수법들은

100% 실화 기반이며,

절대 따라 하지 마시라.


'Don't try this at Library.'


첫 번째 유형은 잠수형이다.

도둑이라기보다는

정말 무책임한 유형이다.


이들은 책을 훔치지는 않는다.

다만 '돌려주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도

장기연체를 통한 미반납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바빠서 깜빡 했겠지' 싶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건다.


하지만 연체일이 100일, 365일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건 단순한 망각의 영역을 넘어선다.

​전화기 너머로

"반납한다고요!!"라고

오히려 짜증 섞이게 소리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내가 잘못한 건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들은

여지없이 높은 확률로

연락이 두절되며

결국 장기미반납도서로 제적처리되어

도서관에서 사라진다.


양심 없는 사람의 책장 어딘가에서

생명을 잃어가는 책이 안타까울 뿐


두 번째는 외부 투척형이다.

여기부터는 본격적인 도둑의 영역이라고 본다.


평화로운 점심시간, 식사 후

도서관 주변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자료실 쪽 1층 창문 틈으로

갑자기 사람 손 하나가 쑥 나오더니

종이가방 하나를 툭, 내려놓았다.


'누가 쓰레기를 버리나' 싶어 다가갔지만,

왠지 모를 싸한 기분에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탄식이 터졌다.


​종이가방 안에는 도서관 인장이 선명한

책 다섯 권이 담겨 있었다.

권당 2만 원이라 쳐도

순식간에 10만 원 상당의 공공 자산이

창밖으로 '투척'된 셈이다.


하지만 절도행위를 막은 것 말고는

통쾌한 복수극은 없었다.


고작 책 몇 권 실수로? 밖에 놓은 것이

뭐 가대수냐라는 궤변만 남겨놓은 채...


세 번째는 무자비한 파괴형이다.

도서관의 모든 책에는 관리를 위한

RFID 태그가 표지 안쪽에 숨어 있다.

무단 반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데 어느 날,

서가 구석진 곳에서 찢겨 나간

책 표지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보안 태그가 붙은 표지만 무참히 찢어 버리고

알맹이만 쏙 빼가는 수법.


카메라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악한

그 지능적인 범죄 앞에서 나는 참담함을 느꼈다.

결국 우리는 서가 사이사이까지

촘촘하게 CCTV를 설치해야만 했다.


지식의 성소에 감시의 눈길을 달아야 하는

이 서글픈 현실은 도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래도 책도둑이 도둑이 아닐까?

적어도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탄생한 이후부터 저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이다.


타인의 기회를 훔치고 공동체의 자산을 훼손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서가를 돌며 빈자리를 확인한다.

그곳에 있어야 할 책이

손 닿지 않는 누군가의 책장이 아닌,

창밖 바닥이 아닌,

온전한 모습으로

다음 이용자의 손 위에 정직하게 놓이길 바라며


"도서관의 책 한 권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