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상처가 비난이 되는 과정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들은 밤늦은 시간에 거닐거나 노트북을 자리에 두고 화장실을 갈 수 있음에 놀라워한다. 이렇게 안전한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문화 속에 들어와서 삶을 살아보면 정말 위험한 것이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니, 바로 몸과 마음의 건강이다. 건강해지기 위한 과학적 연구는 쏟아지지만,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사냐'는 의견도 많다. 아이들의 공부와 수면부족, 어른들의 야근과 야식, 노년기 돌봄 부재와 외로움, 잠깐만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삶은 건강과 거리가 참 멀다.
나는 얼마 전 자살예방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다. 일본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을 비교한 연구 결과를 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높은 지역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 그 지역 사람들은 서로 가깝게 도우며 지내곤 했는데, 협력하고 모여사는 과정에서 '다양성'이 희생되었다. 반대로 자살률이 가장 낮은 지역은, 외부 사람들의 유입이 많아 다양성이 발달했는데, '동조압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후원 모금이 잘 모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공동체의 '뭉쳐야 산다'는 생존법. 다름은 틀림이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양육으로 대물림되어 다름을 향한 비난이 되었다. "그건 틀렸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러다 큰일 나.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진짜 문제야. 전체에 피해를 준다고." 우리는 다름을 틀림이라고 받아들여서 친구의 연애에 충고를 하고, 부모의 눈치 없는 행동을 지적하며, 자녀에게 성적이 나쁘면 큰일난다고 압박하고, 회사 후배의 실수에 '업무적'이면서도 어쩌면 '인격적'인 조언을 건네게 된다.
틀림을 향한 경고는 비난이 되었다. 비난에 숨겨진 의도는 상대방을 상처 입히려는 것보다 보호하려는 목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 사실은 듣는 사람도 은연중에 비난이 보호의 목적이란 걸 알기에 마냥 흘려듣기엔 좀 불안하다. 하지만 우린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모두에게 삶의 환경은 다르고, 생존법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 세상엔 이제 수만 가지의 생존법이 존재하며, 독특한 생존법도 그만의 능력이 되어 잘 살아낸다. 타인의 비난을 흡수한다는 건, 타인의 생존법을 배우려는 것인데, 그게 나에게 꼭 맞으란 법은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자꾸 틀림이 된다면, 생존법 대신에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누군가 비난을 했다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돌아보기 이전에 그 사람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해 볼 수 있다. 그가 한 비난은 나에게 한 말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혼잣말이고, 그 혼잣말을 통해 사회적으로 생존하고 있다. 그는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경고를 날리고 있는 걸까?
우리는 특히 나약함을 들키는 것에 대한 경고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우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작은 실수를 자주 하는 것들. 나는 최근에 "여자가 직장에서 우는 거 정말 별로야."라는 말이 담긴 콘텐츠가 많은 공감을 받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 비난으로 들릴 수 있지만, 아마도 이 말을 한 사람은 비난보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 이런 경고를 날렸을까? 그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가 하는 모든 말속에는 우리가 살아온 삶이 축적되어 있다. 그동안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며 사회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여성성'이라 불리던 특성들은 약점이 되어왔을 것이다. 나약함이란 건 누군가 약해서가 아니라 약함을 드러냄으로써 생존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상대방과 싸워서 힘으로 이길 수도 있지만, 나약함을 드러내서 상대방의 공격성을 낮추고, 어려움을 공감함으로써 화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남성 중심이던 직장에서 이 방식이 통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약함을 숨기고 생존법을 바꾸면서 생긴 메시지가 바로, '직장에서 울면 안 돼.'인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모진 비난을 한다면, 그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서 발견된 것이다. 그걸 그냥 흡수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고민해 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속상해서 울면 정말로 큰 문제일까? 실컷 울어서 속상함을 털어내고 다시 씩씩하게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울지 않으려고 꾹꾹 눌러 담다가 우울증에 걸려 퇴사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울보라는 별명을 얻어서 캐릭터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나에겐 재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눈물을 참는 법보다 눈물을 흘리고 다시 일어서는 법이 나에게 필요한 생존법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을 말이다.
타인의 비난을 듣고 속상해서 심리상담소에 온다면, 타인의 이야기와 나의 속상함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심리상담은 사람마다 세심하게 맞추어 작업해야 하지만, 아래의 순서에 따라 마음 작업을 해보자. 살면서 들었던 비난 중 기억에 남는 것을 꺼내어 새롭게 뜯어볼 수 있다.
1. 어떤 말과 표정이었는가? <타인의 것>
'비난'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 이전에 그것의 실체를 보자. 비난이란 건 당신이 붙인 이름표이고, 그 사람은 어떤 말과 행동, 표정을 보였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비난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일까?
2. 나의 감정과 반응은 어땠을까? <나의 마음>
그 말을 듣고 나서 든 감정을 최대한 풍부하게 떠올려보자. 화가 났다면 분노가 이글거렸는지, 원망스러웠는지, 그러면서 동시에 슬펐을 수도 있고, 무력해지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졌을 수도 있다. 내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면 소설이나 노래 가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을수록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인다.
3. 그 비난은 어떤 위험을 경고하고 있을까? <타인의 것>
앞서 소개했듯이 비난은 위험을 경고해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엄마가 자녀에게 공부에 관한 잔소리를 하고, 다른 집 자녀와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건, 사실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 엄마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위험으로 여겼을 수도 있고, 사회에 나와서 번듯한 직장을 갖지 못하는 것을 위험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당신이 들은 비난은 무엇을 위험하다고 말하는 걸까?
4. 나에게 전달된 감정 속엔 타인의 감정이 들어있다. <타인의 것>
이건 원래 어린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엄마에게 전달하기 위한 감정표현법이다. 내가 화가 나면 엄마도 화가 나게 만들고, 짜증이 나면 엄마를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이 방식을 쓴다. 너무 서운할 때 상대방에게 차갑게 대해서 똑같이 느끼게 만들어준다.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제일 불쾌한 말을 골라 투척해서 똑같이 화가 나게 만든다. 그러니까 비난을 듣고서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건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투척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감정일 수도 있다. 다만 감정 표현에 서툴러서 그렇게 투척한 것이다. 나의 이 불쾌한 감정을 누가 좀 공감해 줘, 나를 좀 도와줘, 외치는 신호일 수 있다.
5. 내가 흡수하는 비난 <나의 마음>
당신에게 타격감이 큰 비난은 어떤 주제인가? 사람마다 유난히 잘 흡수하는 비난이 있다. 실수에 대한 비난, 인간관계에서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류의 비난,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난 등. 내가 들은 비난들과 감정의 강렬한 정도를 데이터 삼아 모아보면, 나의 마음이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비난을 흡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생존법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연재글에서 소개되겠지만 나의 생존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심리적 성장이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비난이 괴롭힘으로 해석된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타인의 혼잣말이라고 해석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아진다. 그저 자신의 생존 안에서 열심히 허우적거리다가 나를 툭 쳤구나. 나도 물에 빠진 줄 알고 거칠게 잡아챘구나. 그렇게 바라보면 비난하는 사람의 애씀이 보이고 꼭 안아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