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상처가 비난이 되는 과정 - 진솔함의 치유력
오늘은 앞선 세 편의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며 '진솔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야기는 마음의 상처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나의 욕구'가 있다. 내가 타인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없다면 마음의 상처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된 건 마음의 상처를 당사자 탓으로 돌리려는 목적 때문이 아니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잘못된 문제도 아니며 누구나 가진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건 내 잘못이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만 너무 많이 생각한다. 내 고유한 욕구를 잘 살피지 못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르다 보면 갈등이 있을 때마다 옳고 그름, 인간관계의 정답,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 등 외부의 기준에 더 의지하게 된다.
상처에 담긴 내 소망을 깊이 들여다보는 대신에 할 수 있는 선택은 그 원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상처를 반복하지 않도록 원인을 비난해서 멀어지려고 한다. 예를 들어 옷차림이 촌스럽다고 창피를 당했다면, 다시는 그런 촌스러운 옷을 입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옷차림이 조금만 촌스러워도 그것을 당장 고쳐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패션모델이 아니고서야 약간의 촌스러움은 문제의 본질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를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여럿이 몰려들어서 창피를 준 그들이 잘못을 한 것이지 옷차림이 잘못을 한 건 아니다.
놀림받을 짓을 하는 것과 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구분 지어 이해해야 한다.
비난받을 짓을 하는 것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역시 구분지어야 한다.
비난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서 비난받을만한 행동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처럼 누군가 '비난'하는 주제들을 살펴보면, 그가 살아온 인생에서 어떤 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왔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비난이란 건, 비난받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비난을 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해 준다.
사회적으로 욕먹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중요한 주제가 되어서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비난을 받지 않더라도 고치면 좋을 행동들은 너무도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그저 모른 척 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난에 집중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진솔해지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조금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진솔해진다는 것은, 나의 욕구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거짓말에 관한 누군가의 이야기로 한 번 살펴보자.
거짓말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배우자가 조그만 거짓말을 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거짓말은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고, 가장 중요한 신뢰를 깨뜨리기 때문이라는 이성적이고도 납득할 법한 근거를 주장했다. 그런데 배우자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심했지만, 회사에서 상황이 갑자기 바뀌면서 미처 다 전달하지 못해서 생긴 에피소드였다. 악의를 가지고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거짓말이라는 주장. 누가 맞는 말일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문제를 비난하는 대신 내 욕구를 살펴볼 수 있다.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는 문제다.'라는 명백한 문장 대신에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욕구는 무엇일까?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부모님도 서로 비밀이 없으셨고, 언제나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 중요했다고. 그러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린 시절의 두려움들을 꺼냈다. 한 번은 숙제를 너무 하기 싫어서 숙제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엄마에게 들켰는데, 부모님이 난리가 난 거다. 부모님이 서로 당신이 아이를 잘못 키웠다며 싸우고, 크게 혼도 났다. 부모님의 고성이 오가는 집안에서 어린아이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는 수밖에.
그리고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연애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상대방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모를 거라고 했다. 나의 치부에 대해 다 알게 되면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의 속마음에 그런 요소가 있는지 살피고 싶었고, 말하지 않는 비밀이 생기면 그 속에 나를 떠날 생각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동시에 머리로는 아닌 걸 알기에 스스로도 폭발하는 감정과 이성 사이 혼란스러움이 가득한데, 그 불만까지 배우자에게 쏟아내었던 것 같았다고.
거짓말을 극도로 비난한 사람의 속마음은, 상대방이 혹여나 나를 떠나갈까 봐 걱정된 마음에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불안이었다. 거기에 어린 시절의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죄책감은 사실 무력했던 순간에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였던 자책이다.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마땅히 훈육되어야겠지만, 고성방가가 오가는 부부싸움의 책임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 거짓말로 심하게 자책하던 어린아이를 스스로 용서해 주고 전부 네 잘못은 아니었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심리상담은 이처럼 비난과 잘잘못이 오가는 인간관계의 혼란 속에서 모두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간다. 진솔하게 스스로의 이야기를 꺼내야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 부부는 거짓말을 했는지에 집착하는 대신, 서로 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상처를 치유해 내면의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줄 수 있다.
철학 교수이자 작가인 피터 비에리는 그의 저서 <자기 결정>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삶을 위해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욕구를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진솔해지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서로 아프게 하는 일을 멈추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로 내가 원하는 삶을 매 순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계속해서 표면 밑에서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상처에 이끌려 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실제 사례가 아닌 가상의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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