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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Oct 24. 2021

인스타그램의 반대말이 있다면, 집단상담

새로운 선택에서 만난 것들


“이번 방학 때 어디 집단 갈 거야?”


 상담을 공부하는 이들의 흔한 대화이다. 우리는 집단상담이라는 곳에 간다. 그곳은 인스타그램의 반대말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밖으로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이야기, 가장 어둡고 슬프고 화나는 상처들을 꺼내 놓는 곳이기 때문이다. 익명과 비밀보장이라는 장치, 그리고 세상 가장 ‘비난과 평가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심리상담 대가 선생님의 감독 하에 말이다.


 유명한 대가 선생님의 집단상담은 이틀에 40-50만 원 정도로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선착순으로 빨리 신청해야 한다. 어떻게 신청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동기가 말한다. “누나, 입금부터 때려.”


 동기 중 누군가 집단을 다녀오면 그 신비로운 경험을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듣고 있다 보면 당장에 달려가고 싶어 진다. 그 마음이 잊힐 때쯤 어느 날, 집단을 다녀온 동기가 변화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어딘가 더 편안해진 것이다. ‘와 내 이슈도 가서 털어야겠어.’ 우리는 그렇게 방학마다 집단상담을 결제할 수밖에 없다.






 집단상담은 바깥세상과는 정말 다르다. 잘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인 것과는 정 반대로, 자신의 가장 어둡고 마주하기 힘든 면을 앞다투어 꺼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강력한 치유제를 얻어간다. 바로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저렇게 강해 보이는 사람이 속에 여린 마음이 있다고? 저렇게 차가워 보이는 사람이 속이 따뜻하다고? 저렇게 예쁘고 완벽해 보이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을 1분 1초마다 한다고? 사람의 하루가 저렇게 비참한 날도 있다고? 나와 전혀 다른 것 같은 사람이, 나와 같은 것을 두려워하고, 같은 아픔을 느낀다는 보편성을 경험한다.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세상에 저런 아름다운 것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다고?라고 놀라워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말이다. 그렇다고 집단상담에 오는 사람이 특별히 힘든 존재들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다들 사회적으로 너무도 잘 살아가는 이들이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반짝이는 것들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심리상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들어오는 질문이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매일 들여다보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론 힘들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행복을 매일 보는 게 더 힘들고 괴로운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행복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 투성이고, 내 아픔은 고스란히 나만의 것이고, 내 행복은 저 사람보다 작은 것 같다며 초라해지기도 하니까.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면, 화가 덜 나고, 두려움이 적어진다. 입체적으로 보려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밑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는 게 쉽지 않다. 누구나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타인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깊은 속마음을 꺼내어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몇 가지 팁을 주자면, 어떤 사람이 가진 강한 특성이 있다면 그 반대되는 모습을 두려워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늘 강한 사람은 강해 보이기 위해, 혹은 강해지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 에너지는 약해지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흠이 있는 순간에 대해 엄청난 수치스러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가끔 심리상담을 공부한 나보다도 더 나은 통찰력을 보이는 남자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어떤 슈퍼바이저 선생님이 나의 ‘디테일을 간과하는 점’을 지적하며, ‘간과’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몇 번을 얘기하는데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사실이라서 반박도 못하고, 진짜 듣기 싫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의 ‘간과’라는 특성을 억지로 직면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남자 친구를 만나 한탄을 하며 나의 한심함을 토로하자,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 그 선생님이 본인이 그 부분에서 부족하신 분인가 보네. 원래 자기가 가진 게 더 잘 보이잖아. 너 그런 사람 아니야.” 자기 중심성에서 나를 훅 꺼내 주는 순간이었다.


 자기 중심성에 갇혀 있다 보면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이제는 내담자들이 자기 비난을 할 때면 내가 종종 꺼내 주곤 한다. 몇 번 꺼내지다 보면 ‘내 것’과 ‘타인의 것’을 구분하는 눈이 생긴다. 어떤 사람이 화를 낼 때, 그 사람이 화가 많은 것이지 꼭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어딜 가든 화를 낼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연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자기 비난을 멈추지 않으면, 계속해서 남 탓하는 사람에게 걸려서 비난의 화살을 잔뜩 맞게 될 수 있다. 그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내 안의 화살을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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