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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Oct 24. 2021

치유의 시간, 옷가게 알바생

새로운 선택에서 만난 것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일거리가 필요했다. 학비도 학비지만, 상담 공부엔 돈이 든다. 가세가 한방에 망하려면 예체능을 시키고, 서서히 망하려면 상담 공부를 시킨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회사를 다니며 병행할 자신이 없어서, 내 능력치에서 힘 덜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그러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옷가게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쇼핑하러 가본 적 있는 그곳은 공간이 예쁘게 생겨 매력적이고, 동네라서 왠지 한적할 것 같았다.


 목적에는 참 부합하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내가 알바한다고 누가 흉보진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당시 심리상담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상담 선생님과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고, 오롯이 나를 생각한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타인의 시선을 떨쳐내도록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심리상담에 뒤이을 엄청난 치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옷가게 사장님은 자매인 두 언니들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가게를 보기가 어려워져 직원을 구했다고 한다. 만삭이었던 둘째 언니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나에게 업무를 알려주었다. 빗자루질을 할 때는 한 방향으로 하면 편하고, 먼지가 잘 털리지 않는 곳은 이렇게 하면 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일은 많지 않지만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또 손님이 없어서 혼자 오래 있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많이 팔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이 오시면 그저 편안하게 보고 가실 수 있도록만 해주면 된다고. 무리해서 판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편안하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니에게는 별 일 아니었겠지만, 차갑고 냉정한 회사를 다니다가 온 나에게는 그저 힐링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니. 판매를 못해도 괜찮다니. 매일 성과와 평가 속에 살던 사람에게는 너무도 색다른 세계였다.


 정말로 한 장도 팔지 못한 날들도 있었는데, 능력 없음에 대한 수치심이 강력한 나는 퇴근 전부터 죄송하고 초조했다. 그럴 때마다 눈물 이모티콘을 가득 보내는 나에게 언니들은, 너무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고생했다고 하트를 뿅뿅 날려 주었다. 혼자 긴 시간 가게에 있어야 하는데, 공부할 게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자체로 존중받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성실하게 출근하고, 손님이 없으면 사진이라도 찍고, 청소 한 번 더 하는 나의 성실함도 있었지만, ‘결과물’이 없는데도 존중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월급까지 주다니. 나의 무가치한 순간에 대해 늘 혐오해왔는데, 언니들의 너그러움에 내 차가운 혐오도 녹아내렸다.




 


 회사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취업시장에서 값어치를 높이느라 너무 지쳤던 시절이라 더 감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능력으로 평가받지 않는 공간에서의 나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아마도 5세 이후로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경험은 끊기지 않았을까?


 손님들은 내가 인상이 좋고, 편안하게 해 주고, 그냥 우연히 만난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좋아했다. 커피를 사다 주는 손님도 많았고, 빵을 사다가 내 것까지 사 왔다는 손님도 있었고, 오늘 과일이 너무 신선하다고 먹어 보라며 주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가게에 와서 나를 보는 게 그냥 기분이 좋다는 손님도 있었다. 나는 앉아서 그저 공부하다가, 손님들 오시면 인사하고,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 판매하고, 그뿐이었는데 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가 하트를 던지고 가는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사랑받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늘 특별해야 했고, 더 나은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무능력한 나를 용서할 수 없었고, 실패할 때마다 한심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가 대학을 나왔는지, 토익 점수가 몇 점인지, 어떤 타이틀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만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주었다. 스스로 하기 어려웠던 ‘부족한 나’를 용서하는 일을 동네 어귀를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해 주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나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온 동네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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