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겐 특별한 날인 것 같다. 오늘 난편안했다. 아니 편안이라는 말도 아닌 것 같고그저 그렇다. 담담하다. 그저 그럼엔 깊은 안정감이 있다. 아침엔 연인과 집 옥상에서 웨딩사진을 찍을 땐 기뻤고 기쁨이 너무 벅차 잠깐 집에서마음을가라앉히고 쉬었다. 그가 일터로 가고 집 앞 카페에 앉아 내게 놓인 것들, 할 것들을 마주하는데 그냥 편안했다. 이건 내게 매우 낯선 상태이다. 언제나 찾아오는 빈틈들 사이엔 난 길을 잃어버리곤 했는데. 어떤 감정에서 세계를 창조하고 있거나 무얼 해야 하지에 제자리걸음을 해야 하거나.
그러니까 오늘은 어느 한 줄에서 쭉 같은 무드로 있는 느낌인데. 여기엔 빈틈이 없는 것 같다. 무얼 해야 하지를 잃어버렸다. 지난번 나는 빈틈이 올 때마다 난 내게 무언갈 넘겨주거나허용하거나 자리 잡기에 바빴는데. 오늘은 그럴 틈이 없었다. 그냥 있었다. 내가 차분했다.이게 고요라는 것인가.괜찮은 것이다. 내게 이런 날이 오네? 이건 참 신기한 무드이다.
이젠 내겐 삶의 이유와 목표가 사라졌고 찾아야 할 것들이 쌍그리 무너졌다. 난 분명 모든 걸 잃어버렸는데 모든 걸 잃어버림이 내게 고요를 주네. 삶은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달려와 마주한 것엔, 결국 돌아와 이곳이라는 것도. 그리고 이미 내가 그토록 찾고 있었던 것은 찾기로 출발하기로 한 그 직전과 똑같다는 것도. 어떻게 삶이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것 밖엔.
감히 삶을 이해하려는 것은 도전이다. 이 자체가 인간의 원죄인 것 같다. 알 수 없는 삶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인간으로서-인위적이기에,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것그 틈 사이로 고통이 생기는 것 같다. 이해하려고 하는 끝엔 두려움이 있으니. 삶은 그저 주어진 것인데 통제하려고 하니. 물론 그것이 이곳을 살아가는데 동력이고 힘이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인간에겐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간에게 인간으로서 인위적인 자연스러움이 결국은 우주의자연스러움에 부딪혀 고통을 낳는 구조인 건가. 그럼 뭐가 자연스러운 거지?
참으로 역설과 역설에 걸리는 것이다. 지도 교수님께서 줄곧 말씀해 주시던 모순. 잘 모르겠다. 난 그저 두려움이 사라지니 이해하려는 마음을 포기해 버렸다. 그러려니 이런 삶을 감히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했다. 모든 걸 포기해 버린 나는 분명히 좌절스러운데 이 포기가 한없는 고요함을 주기도 한다. 이 아이러니를.
모든 것에 포기를 해버리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잃어버리니 역설적으로 그냥 그것들이 이 빈 공간을 찾아 다가오는 것만 같다. 참. 무엇을 쫓아 달려왔던가. 달려옴의 끝엔 쫓음이란 없다를 알려주는 삶의 신비를.
난 이제,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따라가고 수용하는 것 밖에. 삶의 신비를 감사히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 밖엔 할 게 없다. 이게 끝없는 고요를 선물하는 자리를 만났으니. 그리고 이 고요함의 자리에는 어떠한 것도 들이밀지 못한다. 나도, 내 옆의 누군가도, 이 세상도 어떠한 관념과 이치도. 이것은 온전히 나만의 것인 것이다.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나의 깊은 평화, 그토록 내가 바라오던 것. 모든 걸 무너트린 다음에야 결국 찾아온 평화의 자리 하나. 하하.하지만? 방금 연인이 전화를 주었는데 이것도 잠시 뿐이란다. 킹 받는 거 보니 맞는가 봐! 그래도 좋아, 내게 새로운 한 길이 생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