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참 인생이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 반에 앉아 학우들을 보며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저 친구는 호감을 사기 위해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구나. 저런 것은 어디서 배운 걸까?
이 친구는 속은 여리지만 괜히 욕을 쓰면서 자신을 과시하려고 드는구나. 어떤 가정에서 자랐을까?
저 선생님은 괜히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네? 초등학생 대상으로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는 것을 보니 현실에서는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걸까?
초등학생 치고는 흔치 않은 사고를 가진 사람.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고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었다.
눈을 뜨면 아이들, 어른들의 행동에서 의미가 탐색되고 궁금해져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귀를 열면 이들의 목소리, 억양, 단어 선택을 통해 여러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피곤했다.
외로웠다.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게 불가능했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가수 신화그룹 이야기를 하고, 일본 만화책 D.Gray-man을 따라 하고,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지 험담을 하고 편 가르기를 했다.
나는 이 속에 어울리는 척해보았지만 속으로는 더 깊은 음미를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난 항상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어울릴 수 없는 돛단배 한 척이 다른 수많은 배들이 있는 바다를 배회하듯,
수많은 오리들 사이 나 혼자 색이 다른 미운오리새끼 마냥.
인정받고 싶어하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양보하고 배려하며 점점 더 괴롭고 힘들었다.
그렇다고 ‘왕따’나 ‘은따’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
매번 반장선거도 나가고(항상 떨어졌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방과 후 동아리도 많이 참여하며 겉으로는 잘 지냈지만 속사정은 달랐을 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버이날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연필을 꾹꾹 눌러 글자 하나하나에 내 마음을 담았다.
편지 내용은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나의 첫 용기였다.
학교생활이 나에게는 너무 괴롭고 힘드니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썼다.
홈스쿨링이나 집에서 독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이 편지를 대수롭지 않은 사춘기 소녀의 앙탈로 생각하여 큰 변화 없이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때보다는 조금 더 얌전하게 지냈다.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렸고 조금은 마음이 통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오빠를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졌다.
웬걸. 외국에 가니 말이 안 통하는 노란 머리들만 있었다.
그 중학교에서 첫 번째 아시안 학생이 나였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 깊은 마음을 영어로 100프로 구사하기가 어려워 더 괴롭기도 했다.
학교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으니 매일 입에서는 단내가 나는듯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한국인 유학생이 참 많았다.
그곳에서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차피 세상에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후였다.
'나는 유별나.' 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했다.
얕은 마음으로도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학교생활이 정말로 즐거웠다.
가디언(보호자)이 있는 집에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친구들과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재밌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묘하게 외로움을 느꼈다.
밤만 되면 기분이 거지 같았다.
노을이 질 쯤부터 마음이 참 허했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것을 많이 했지만 깊게 채워지진 못했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탐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곧 30대가 되는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더더욱 깊은 나의 내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근본 자아는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슬픔이(Sadness)가 핵심 감정이라는 것.
그게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때 '섬집아이'를 부르며 혼자 울었었고,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이라는 노래를 듣기만 해도 엉엉 울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나는 항상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딱하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많이 당하며 살아왔다.
내 근본 자아가 슬픔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슬퍼지고 싶지 않았고 우울하고 싶지 않았기에 밀어내려고 노력했다.
'인사이드 아웃 1'의 기쁨이(Joy)의 행동과 정말 똑 닮았다.
왜 해가 지는 밤마다 서글프게 마음이 아팠는지,
왜 사람들을 보며 혼자 눈물을 지었는지,
왜 노래를 부르며 엉엉 울었는지.
이제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림 속에는 메마른 땅에 눈(eye)처럼 생긴 언덕이 있다.
하늘에서 한 사람이 다이빙을 하여 소용돌이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각도 상 완벽하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나의 슬픔을 마주 보기로 용기를 내었고 그 결과 나의 핵심 자아가 '슬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남들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일 수 있고,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취급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부정하고 살면 내가 언젠간 스스로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모습 속으로 스스로 다이빙하는 장면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더 깊게 보고,
귀로 들리는 것을 더 자세히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과 글에 녹여낼것이다.
두 번째 그림엔 나의 결의이자 앞으로의 방향성을 나타내보았다.
혹시라도 아직 Inside out(인사이드 아웃)을 보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꼭! 보시길 바란다!!!
나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매번 엉엉 우는데, 5번 6번 보아도 같다.
언젠가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 Pete Docter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