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 형체들이 보인다.
땅에 앉아있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 홀로 서 있는 사람.
다양한 실루엣들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죽은 이들이다.
죽음 이후 망연자실 한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이며,
함께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며,
홀로 죽음 이후에도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 간단한 사실을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망각하며 살게 된다.
그러다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사랑하는 이가 죽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깊게 인지하게 되고 '죽음'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지가 아주 중요하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내 마음대로 살겠다."
"어차피 죽을 건데 지금 죽어버리지 뭐."
이렇게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죽음을 알게 된 이상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즐기며 살아보겠다."
"오늘이던 내일이던 10년 후던 언젠가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후회 한 점 남기지 않게 온 마음을 다해 살아보겠다."
이렇게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깊게 탐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현재 후자에 속한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도 본인이 선택한 죽음.
그것은 나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줬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을 수 있구나. 내 부모님도, 남자친구도, 친구도.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구나."
맨 처음엔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저렇게 쉽게 죽을 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
'나도 지금 죽어버리면 인생 편하지 않을까.'
'아 죽고 싶다. 아 죽고 싶어.'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죽을 때 찝찝하게 죽고 싶진 않아.'
어떻게 죽으면 찝찝할까? 생각했다.
'정면돌파해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피하고 피하고 피하는 삶. 그렇게 살면 난 분명 죽는 순간 쾌감을 느끼지 못할 거야.'
그래서 그날부터 열심히 즐기며 살기로 결정했다.
쉬고 싶을 땐 열심히 쉰다.
영화를 보고 싶을 땐 열심히 본다.
작업에 집중하고 싶을 때는 미친 듯이 작업을 한다.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움직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쓱 들어오면 그 마음을 깊게 들여다본다.
100이면 100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괴로웠던 것이고, 외로웠던 것이고, 슬펐던 것이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시 인생을 'pause(정지)'하고 싶은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자살을 실행한 사람이나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스스로의 감정을 거울 들여다보듯 깊게 봐주길 바란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죽고 싶다'의 생각 밑에 어떤 진심이 들어있는 것인지.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은 '나'이며,
세상을 살며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어야 삶이 더욱 재밌어질 것이고 풍부해질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즐기자."
어릴 때부터 내 책상 앞에 쓰여있던 문구들이다.
즐기자.
우리 한번 즐겨보자.
죽음, 언젠간 찾아올 거, 살아있는 동안 '나'를 열심히 연구해서 죽는 순간 '나'에게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