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16/100)

by 비비안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미술을 팽개쳤던 내가 다시 미술을 시작한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가 자살하시고,

응급차와 경찰을 부르고,

시신을 수습하고,

경찰조사를 받고,

장례식을 준비하며 물 흐르듯 나는 미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 유학생활 외로웠던 나와 놀아주던 것이 미술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술은 죽고 싶었던 나를 살려주는 동아줄이었다.


딱히 엄청난 계획이 있진 않았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다.

'죽지 않기 위해서 나는 그림을 그려야겠어.'

'이 행위를 통해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길 바라.'

'스스로를 위한 행위가 언젠간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미술 공부도 많이 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천천히 정리가 되어갔다.




그는 괴로웠고, 나르시시스트였고, 자살을 선택했다.


나는 그와 다른 존재이며, 이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힘들었던 감정이 정리된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

근데 감정이 정리되고 나니 '미술'이라는 친구가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나 이제 필요 없어? 또 버릴 거야?"


아니. 버리지 않을 거야. 계속 이어갈 거야.

네가 없으면 난 또다시 죽고 싶어 질지 몰라.

그냥 무슨 분야를 하던, 어떤 일을 하던, 예술가 할게. 같이 가자 죽는 그 순간까지.



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어떤 내용으로?




어느 순간부터 홀로 망망대해를 떠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그림은 할아버지에게 받은 안좋은 영향이 끝난 나를 표현하는 그림이다.




왼쪽에 있는 회색 손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

오른쪽에 있는 회색 손은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손.


중간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은 나.

노래에 맞춰 몸치인 내가 열심히 몸을 흔들고 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예쁜 색으로 가득 차 있는 내가 재롱을 부린다.


이젠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죄책감도, 두려움도 없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는 1년 동안 나에게 악마 같은 존재였고, 죽음의 사신 같은 존재였으며, 슬픔(sorrow) 그 자체였다.

이제 그는 그냥 내 '할아버지'이다.




인류는 항상 미술을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주술의 목적, 종교적 목적, 권력의 목적, 기록의 목적, 교육의 목적, 사회풍자의 목적, 자기표현의 목적, 상업적 목적 등등.


이제 나는 미술을 어떤 목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사실 이런 고민은 모두 무의미하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닌 언제나 그랬듯이 미술이 나를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망망대해 바다 위 튜브에 올라타 느긋하게 즐기는 수밖에.



여하튼, 1년 동안 죽음보다 더 괴로웠던 곳에서 살아낸 나 자신을 칭찬하며..!


이제 할아버지는 정말 끝!!!!




160개의 종이학, 16개의 그림, 84개의 빈 판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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