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존재, 악마 (13/100)

by 비비안
악마, 惡魔

악·불의·암흑을 의인화(擬人化) 한 것. 사람을 악으로 유혹하고 멸망시키는 것.
유대교·크리스트교에서는 신의 적대자임. 타천사(墮天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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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림 느낌이 어때?




조금 으스스하고 불쾌하다면 네 감각이 정확해.


오늘은 악마를 그려보았어.


난 지금까지 악마는 위에 있는 그림 속 모습 같다고 생각했어.

시뻘건 색으로 불타오르거나 검은색 같은 칙칙한 색이라고 생각했어.


왜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 그런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잖아.

눈도 퀭하고, 입도 찢어지고, 몸도 이상하고.


누가 봐도 "어! 당신 악마 맞죠?"라고 할 법한 그런 모습.


악마가 나에게 접근하면 0.1초 만에 알아챌 거라고 생각했어.

너무 악마스럽게 생긴 것이 올 거라고 착각했거든.


근데 현실은 달랐어.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가장 나쁜 유혹에 시달렸어.

바로 나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유혹이야.


내가 생각한 악마 모습 그대로 직접 나타나진 않았어.

그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어.


'죽고 싶어.'

'죽어버리자.'

'나 자신을 토막 내고 싶어.'

'너도 괴롭잖아. 그만 두자 이제.'

'쉬면 편할 거야. 지금 바로 떨어지는 게 어때. 넌 할 수 있어.'

'할아버지도 못 지킨 게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꼴갑잖네.'

'네가 누굴 치유해? ㅋㅋ 웃기네. 지 자신도 치유 못하는 게. 거만하긴.'

'사람들은 다 널 싫어해. 너도 알고 있잖아.'

'누가 널 반기겠어. 돼지 같고, 못된 게.'

'뛰어내리면 자유로워질 거야. 새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도와줄게.'

'지금 바로. 하자. 지금 바로. 하자. 도와줄게.'


요약하자면 이런 생각들이야.

누가 옆에서 조용히 귓속말하듯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어.

한번 맴돌기 시작하면 최소 30분은 이 생각뿐이었지.


울지도 슬프지도 않았어.

그냥 이 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괴로웠어.

마음이 무거웠고, 속이 타들어가고, 오금이 저렸어.


난 이게 악마라고 생각해.

물론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시각적인 장면이 필요하니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습의 악마를 만들어냈을 거야.

그럼 미디어에 많이 노출이 되어있다 보니 '악마 = 빨갛고 뿔 달리고 이상하게 생긴 것'이라는 공식이 나도 모르게 생겼겠지.


악마는 내 마음속에 있어.

아마 너의 마음속에도 있을 거야.


잘 찾아봐.

네가 정말 힘들 때,

너의 감정이 바닥을 찍었을 때,

숨쉬기도 힘들 때.


그때 네 안에 숨어있던 악마는 쓱 나타나 너에게 속삭일 거야.

네가 더 망가지기를,

네가 스스로 너 자신을 파괴하기를.




나는 머릿속에 악마의 생각들이 맴돌 때 그냥 기도했어.

일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성당을 찾아가기도 했어.

사막 속에서 물을 찾는 사람처럼 헐레벌떡 성당에 찾아가 엉엉 울면서 기도했지.

이겨내게 도와달라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은 평온해지고 머리는 맑아졌어.


인생사 다 그렇듯 한 번에 해결되진 않았어.

떠난 줄 알았던 악마 놈은 또 쓱 찾아와 내 머릿속을 맴돌았지.


그럴 때마다 기도하고, 울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어.


지금은 아주 가끔만 힘들어.


몇 주 전엔 드라마를 보는데 나와 비슷한 상황의 등장인물이 있었어.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일 거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였지.


손을 이마에 대고 울음이 터졌는데 그새 내 머릿속을 또 뒤흔들더라.

'떨어지자. 지금 바로.'

'네 바로 뒤를 봐. 발코니잖아. 떨어지면 모든 게 끝날 거야. 편해지는 거야.'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어.

옆집에서 들렸다면 깜짝 놀랐을 거야.

한 번의 비명에 목이 다 헐었을 정도였으니까.


내 머릿속을 제어할 수 없어서 소리를 지른 거야.

소리를 지르고 나니 눈물이 더 많이 흘렀지.

그리고 이내 괜찮아졌어. 머릿속의 목소리는 사라졌어.



이렇게 지금은 나름 악마의 소리를 대응할 수 있는 상태야.

또 언제 나를 괴롭힐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또다시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사람마다 찾아오는 악마는 다른 유형일 거라 생각해.

나처럼 자살사고를 가지게 만드는 악마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남들을 해하게 만드는 악마도 있겠지.


그 어떤 쪽이던 네가 알아챘으면 좋겠어.

악마가 네 머릿속을 지배하는 순간 말이야.


그리고 나처럼 기도를 하던, 글과 그림을 쓰던, 소리를 지르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빠져나오면 좋겠어.



너를 위해 난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또 다른 내가 이 세상에 분명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언젠간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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