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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라 Feb 20. 2024

꼭 옆에 앉을 필요는 없었다.

비카인드 카페 이야기 15

지난주 예술의 전당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매월 두 번째 목요일 아침, 해설과 함께 하는 예술의 전당 <11시 콘서트>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혼자 참석하곤 했다. 평일 오전에 느긋하게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다른 전시회도 보고 올 수 있는 여유 있는 하루를 나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비카인드 카페에 함께 가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오전 11시. 그런데 좌석표가 매진이다. 왜지? 새해부터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올라간 것인가? 이런 경우는 지난 몇 년 동안 없었다. 프로그램을 보니, 이해가 갔다. 조금 유명한 곡들이다. 그리고 연주자도 유명한 분이네. 합창석까지 오픈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아무튼 나는 취소표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2층 자리는 30,000원 3층은 15,000원이다. 이 금액도 코로나 이후 인상된 금액이다. 박스 좌석 (발코니)에서 본 적도 있다. 조용하고 좋은데 특정 자리는 무대가 일부 가려져서 안 보이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왠지 프라이빗한 느낌 때문에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카페 회원들과 함께 박스좌석 6-8석을 모두 예매해서 우리끼리의 시간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이 생각을 하고 너무 좋아서 인터미션 때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신난다. 





1부에는 유명한 테너 김성호 님이 3곡을 불렀다. 그 어떤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는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특히 라이브를 들었을 때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사람의 목소리다. 우리나라 가곡 '동심초'도 좋았는데,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직접 들었다. 이 곡은 테너들의 대표곡이다. 유명하기 때문에 부르는 테너에게는 부담도 많다고 들었다. 아마 모두 들으면 알 것이다. '네슨도르마 Nessun Dorma'로 시작하는 이 곡을 라이브로 듣는 것은 2024년을 시작하고 있는 이 시기에 가장 좋은 선곡인 듯했다.


이번 모임은 좀 특이한 점이 있다. 매진 후에 취소표를 기다려서 각자 예매를 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옆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서로의 자리가 보이는 3층에 앉아서 음악을 즐기고 1부와 2부 중간 쉬는 시간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머 너무 이것도 좋은데.' 짧은 쉬는 시간 동안 콘서트홀 밖의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방금 듣고 나온 음악이야기를 하고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들고 온 책이야기도 했다. 인터미션이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우리는 다시 헤어져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2부에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플랫단조 Op.23 1악장'이 연주되었다. 나는 솔직히 이 곡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왔다. 피아노는 '유엔지에' 중국 피아니스트가 맡았다. 숨도 쉬지 않고 이 곡을 들었다.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이렇게 식상한 감상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속상하다. 객석에서 보내는 박수에 피아니스트는 앙코르도 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다음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35번 D장조 K.385 <하프너>'의 전 악장을 연주했다. 객석이 꽉 찬 공연을 참석할 때면 기분이 좋다. 연주자도 에너지를 받고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분 좋음을 나눠주는 것 같다.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주는 같은 경험의 기쁨이다. 계속되는 앙코르 박수에 지휘자는 시계를 가리키며 식사시간이라고 위트 있는 몸짓을 보였다. 여유와 재미가 함께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큰 박수와 함께 공연은 끝이 났고, 각자 자리에 앉아있던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움직이는 클래식 공연이 오래간만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나. 이런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런데 밖에는 눈이 오고 있다. 정말? 아침에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었고 바람도 불어서 스산한 광경이 눈앞에 보였다. '이런 날씨에 만약에 혼자 오려고 계획했다면 취소했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혼자의 생각을 해본다. 


식사를 하고 전시를 하나 보기로 한다. 날씨와 콘서트 후를 생각해서 너무 강렬한 색의 전시보다 서예박물관에서 하는 방의결 화백님의 전시를 보기로 한다. '물결' 시리즈는 해의 일렁임과 파도의 역동성이 담담한 수묵화로 다가왔다. 많은 색의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먹을 사용해서 다양한 질감과 감정의 흐름을 너무나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있었다. '비'와 '침묵'시리즈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오랜 시간 아무 생각도 못하고 서있었다. 


우리는 전시장에서도 함께 다니지 않는다. 각자 보고 싶은 것을 자연스럽게 본다. 그저 그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 의식한 채. 나는 작품을 다 보고 작가님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이분이 1938년 생이었구나. 대단하고 부럽고 신기하고 감사하다. 나이와 역사, 시간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대가는 이런 것이구나! 전시장 앞의 의자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자니 창밖의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눈보라가 치던 하늘이 전시를 보는 동안 이렇게 변했다고? 마술인가? 조용히 브로셔 한 장을 소중하게 가방에 넣어본다. 평소 브로셔를 가져가지 않는 나의 이런 행동이 이상했나 보다. 작은 프린팅 된 작품이라도 집에 가져가고 싶었나 보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좋을 수가 있을까? 날씨 때문인가? 음악 때문인가? 모든 시퀀스가 도와준 전시회였다. 


작품 설명에 이런 것이 있다. 서양의 재료가 다양한 색상과 형태를 묘사하는 데는 우수하지만, 시간과 감성을 표현하는 데는 동양의 먹이 뛰어나다고 한다. (예술의 전당 작품 설명)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기분이 들었구나. 전시를 보고 나서 작가님에 대한 자료를 찾고 방법을 알아보고 하느라 며칠을 보내고 있다.











항상 붙어있는 것 말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사이는 어떨까? 첫사랑 오빠와의 연애 때, 극장 앞에서 구한 암표가 떨어진 자리여서 너무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연애 중이어서 붙어있어야 했나. 이런 생각이 드는 과거의 기억이지만, 이제는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야 온전히 즐길 수가 있다. 그래도 혼자보다 함께 가는 것이 좋은 이유는 느낀 점을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면 같은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것을 알게 된다. 옆자리에 앉지 않고 즐긴 콘서트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 오늘.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비오는 한적한 예술의 전당이 좋아서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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