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카인드 카페 이야기 17
"서울역사의 문제로 지하철이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빠르게 정상운행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찍 출발해서 여유 있게 스마트폰을 보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와 친구들은 오늘 9시 KTX를 타야 한다. 카카오톡을 열어서, "어디야? 지하철이 안 움직이고 있어. 나는 노량진역". "영등포역", "신도림역"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큰일 났다. 어쩌지.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다시 지하철은 움직였고, 서울역에 도착을 했다. 바쁘게 움직여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와 만났다. 친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정면의 전광판의 시계로 시선이 옮겨진다. 20분 정도 남았다. 카톡을 열었다. 전화를 해볼까? 하지만 참는다. 지금 가장 초초한 사람은 여기로 오고 있는 친구들인데. 최악의 경우 기차를 놓치면 된다. 문제없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먹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저기 한 명이 헐레벌떡 뛰고 있다.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이다. 안심과 안도의 표정뒤로 2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뛰어오는 다른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와 다행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이 아침에 일어났지만 모두 제시간에 도착해서 기차에 탔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우리의 겨울바다보기 당일여행이 시작되었다.
겨울바다 보러 갈까요?
이 한 줄로 시작된 오늘의 여행이다. 바다는 항상 좋지만, 왠지 겨울바다는 그립다. 기차여행과 바다보기가 결합한 꽤나 낭만적인 기억이 될 오늘이 시작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아침이었지만 아무튼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옷과 가방을 정리했다. 겨울바다라고 옷을 껴입었더니 조금 몸이 둔하다. 뒷자리에서 먹을 것이 전해진다. 기차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라면서.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아직도 긴장된 상태가 진정이 되지 않나 보다.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감을 찾아본다. 우리는 오늘 바다로 가고 있다. 그것도 겨울바다를 보러.
강릉행 KTX는 꽤나 넓고 쾌적하다. 빠른 속도로 다른 역들을 지난다. 창밖의 풍경이 바뀌었다. 큰 호수도 보이고, 하얀 눈이 쌓인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원도로 들어온 것이다. 여행을 가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역 몇 군데를 지나고선 강릉역에 도착을 한다는 안내가 전해진다. 정말 빨리 오는구나. 2시간 정도만에 서울에서 강릉이라니. 좋네.
강릉역에 내려서 우리는 상의를 했다. 무얼 먹고 어디로 갈 것인가? 가장 가까운 해변은 안목해변인데, 그곳으로 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사실 어느 곳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약 7시간의 시간이 있다. 돌아가는 기차표만 예매가 되어있었다. 누군가 한 명이 계획을 빈틈없이 만들어서 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다녀보자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이런 여행이 어색하지만 친구들만 믿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우선 밥을 먹자. 뭐가 있지? 강릉이 순두부가 유명해? 동네가 있네. 그럼 거기로 가자. 이렇게 쉽게 정해진 점심 메뉴에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초당동이라는 곳은 모두 순두부 가게다. 두부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메뉴였다. 나를 배려한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진짜 두부를 맛보았다. 가게에서 나와서 쉬엄쉬엄 걷기로 했다. 어어 저기다. 기억 속의 강릉을 생각해 낸 친구는 오래전 가본 할머니 순두부 가게를 기억해 내었다. 그때는 그 집 밖에 없었다고. 지금은 주위에 너무 많은 가게와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순두부젤라또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순두부와 젤라또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작은 가게에 줄을 섰는데, 그 맛이 너무 담백하고 좋았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가장 핫하다는 짬뽕순두부를 먹고, 순두부젤라또를 먹는 코스는 완벽하게 느껴졌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걷는 일은 즐겁다. 저긴 머지? 멋진데. 여행자로 거리를 걷는 일. 언제 해도 좋다. 아마도 저쪽으로 가면 바다가 나올 것 같다. 유명한 호텔의 옆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이런 가게가 이런 곳에 있네. 데이트를 하는 젊은 남녀도 보인다. 이곳이 데이트 장소인가? 관광객들로 이 가게들은 모두 살고 있는 건가? 비가 안 와서 다행이고, 이 정도면 날도 괜찮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겨. 울. 바. 다.
드디어 우리는 바다를 보았다. 바다에 왔다. 파도가 크다. 바람도 분다. 눈앞에 바다가 있다.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손이 아프다. 스마트폰 동작 가능한 장갑을 껴야 하는 거였다. 눈앞에 있는 유명한 호텔에 묵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다음엔 좀 더 여유 있게 와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앞으로 몇 시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신난다.
바다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파란색이 전혀 없는 겨울바다를 근사하게 담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저 눈에 넣기로 한다. 겨울바닷소리를 녹음했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모래 위를 걸었다. 다리에 힘이 팍팍 들어가네. 시선이 머문 저 멀리 스타벅스가 보이네. 건물이 근사해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스벅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걸어보자. 물론 검색을 해서 저장해 둔 카페가 있기는 하지만, 걷다가 괜찮은 곳에 들어가 보자.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이 분위기와 커피와 맛있는 빵까지. 그리고 할 말이 많은 친구도 옆에 있다. 어쩌지. 시간이 없다. 정말 길게 여행을 해야 하나. 아쉬운 시간을 아끼며 하는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건가. 다음엔 어디를, 언제 갈까?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가자. 또 오자. 같은 마음으로.
언제든 떠나면 볼 수 있는 곳에 바다는 있었다. 자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