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카인드 카페 이야기 19
흐드러진 꽃들. 제가 이런 표현을 쓸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눈만 돌리면 보이는 벚꽃들과 인스타그램에 무한히 뜨는 사진들,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라오는 활짝 웃는 친구들의 모습이, 꽃에 눈길이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저도 동참하여 멋진 사진을 남겨보려고 애썼거든요. 사람들을 피해서 하늘과 가까운 꽃들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비카인드 친구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함께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래서, 저는 갑자기 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것도 여의도에서 만나자는.... 결과는 어땠을까요?
저는 굉장하게 심한 시뮬레이션 병에 걸린 인간입니다. 그것도 매우 복잡하게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약속을 하게 된다면 우선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봅니다. 버스나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인지, 차를 이용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좋은지, 어떤 시간에 갈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은 날씨를 체크하는 일입니다. 이건 약속일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날의 날씨가 이동하거나 만나기 어렵게 변화한다면 약속 취소도 고려합니다. 그리고 약속 장소를 찾아봅니다. 블로그의 리뷰글을 보면서 사진을 살펴봅니다. 좌석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뷰는 좋은지, 커피나 빵의 맛에 대한 평가도 자세하게 봅니다. 그곳이 음식을 먹게 되는 곳이면 이 증상은 더욱 심해집니다. 조금 과장을 더하면 화장실과 주차장의 사진까지 찾아서 봅니다. 물론 이런저런 평가보다도 한 장의 사진에 확 끌려서 그곳에 가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찾고 생각을 하지만, 더 쓰게 되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게 될 것 같아 이 정도로 그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번개를 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하루 전에 이런 글을 카페에 올렸습니다.
"우리 내일 여기 갈까요? 여의도 강변서재" 그리고, 몇 장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 글을 오픈하기 전에 저의 예상 답변들이 있습니다. 그건 비카인드 카페에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계획형 인간 MBTI로 표현하면 J형이 많아요. 하루? 일주일? 한 달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에 평화를 주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에 대한 답변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됩니다.
바로 DM이 날아왔어요. "저 봤습니다. 하루 전에 올린 번개모임에 대한 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저는 이런 답변을 했습니다. "한번 해봤어. 어떤 답이 올지 예상은 되지만, 한 번도 안 해본 거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구나!"
카페의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거의 답변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확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 그것도 긍정적인 답을 올릴 수 없는 경우, 참석 가능하다는 답변을 쓰지 못하는 경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무응답을 택하게 됩니다. 굳이 나서지 않는 거죠.
카카오톡 채팅방은 조금 다른 반응이 왔습니다. "내일 여의도요? 사람이 많을 텐데요." "내일 같은 날 여의도에 가는 건 아니죠." 그렇습니다. 지금은 벚꽃이 한창이고 여의도는 벚꽃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그런 곳입니다. 저도 그런 것을 생각 안 한 건, 물론 아닙니다. "내일 여의도에 차를 가지고 가는 게 가능할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화들짝 놀라는 답변이 올라옵니다. "내일요? 여의도에? 운전을 한다고요? 아닙니다. 그러심 안 돼요." 호호호 다들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쩜 내가 미리 생각한 것을 이렇게 글로 보여주는 걸까요?
제가 가고자 하는 그 카페는 한가로이 한강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가고 싶어 한 곳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한적한 분위기, 사람이 적당히 있는 것이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이는 그런 시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저도 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모임이 취소되었어요. '다음에 좋은 기회를 노려보자.'는 마무리 맨트와 함께요.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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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카톡방에 올라온 울 젤 큰언니의 글에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족모임을 하고 와보니, 글이 많네요. 내일 모임은? 나는 갈 수 있는데." 이 분은 저의 카페의 젤 큰언니이고, 소녀 같은 목소리와 눈빛을 가지고 계신 그림 그리는 할머니이십니다. "해봐. 많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보면 돼." 이런 이야기를 평소에 많이 하세요. 굳이 후회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없다면서, 어떤 모임을 하던지 참석을 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너무 좋아. 이런 모임을 많들어줘서 고마워." 그분의 집은 꽤 먼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이든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 됩니다. 저는 이분께 이런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긍정적이고 예쁜 미소. "나 갈 수 있어. 너무 좋을 것 같아. 고마워." 항상 이런 말을 저에게 해주십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람은 저의 모임에 이런 분이 많았으면 합니다. 저도 쉽지 않지만, 조금씩 변하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본성을 거스르는 것 같아서 나의 내면과 머리가 충돌을 일으키는 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그냥 스쳐간 시간들과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서 가보지 못한 장소, 그저 해보면 될 것을 미리 걱정하느라 안 해본 일에 대한 것들의 후회를 이제는 안 하려고 합니다. 물론 시간의 낭비가 될 수도 있고, 체력의 소비가 일어나고, 비생산적인 일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기회비용'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다른 기회의 최대가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욕심, 후회를 줄이려는 노력. 모두 좋은 말입니다.
저는 이제 조금 변화하고 싶습니다. 지금껏 생각만 하다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를 이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일을 하기 싫어서, 그리고 충분한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마주할 무능한 나 자신을 볼 용기가 없어서 도망갈 이유를 열심히 찾지 않았나 합니다.
아무튼, 봄날의 작은 해프닝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좋은 곳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다 같은데, 방법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창밖에 봄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있어요. 이 바람에 이쁜 꽃들이 모두 떨어지지 않기를,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곧 멋진 곳에서 만나서 쑥스럽지만,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하하호호 웃을 시간을 만들어보아요. 보고 싶습니다.
(제목의 사진은 요즈음 제가 그리고 있는 봄입니다. 한번 그린 그림을 망칠 각오로 색을 더 입히고 작은 양들과 빨간차를 넣었어요. 망치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