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이던 마음에게
너를 품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마음이 통째로 커다란 폭탄이 아니라 작은 지뢰로 가득 찬 지뢰밭이었지. 무심코 건드리는 순간 터져버려. 그렇게 ‘터질 것만 같은’ 상태가 나를 더 불안하게 했어. 차라리 펑 터져버리면 나았을까.
마음속 지뢰들을 청소하고 싶었는데, 빼기 명상 덕분에 안고 있던 폭탄이 사라진 기분이야. 한결 편안해. 일상에서 거슬리던 부분들이 확실히 줄어들더라.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어. 걸핏하면 터질 것처럼 화가 치밀던 시절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부터 쏟았는데 말이야.
지뢰는 빈틈없이 공간을 메우듯 빼곡히 깔려 있었어. ‘트리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된 나의 마음을 이야기해 볼게.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명상을 하는 과정도 다 달라.
일단, 세상 모든 남자가 나에겐 불편한 존재였어. 가족 구성원부터 편하게 느끼지 못해서였을 거야. 이에 관해 명상 2주 차에 분노가 몰아쳤던 적이 있어. 일주일 합숙 연수 후에, 2단계 인연에 대한 마음을 버리고 싶어서 일주일 더 연장했었지. 강의실이 바뀌었는데 명상을 안내하는 분이 남자인 거야. 이상하게 그 공간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득해졌어. 누구보다 명상을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집중이 안 되는 걸 어떡해. 애를 쓰면 머리만 아파서 방으로 돌아와 그냥 누워 있었어. 그때 룸메이트 한 분이 들어오셨어. 나처럼 땡땡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해외 센터에서 명상 안내를 하는 분이었어. 개인 명상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어. 그분이 똑같은 명상을 안내하는데, 어찌나 집중이 잘 되던지.
어린 시절, 가족 구성원에게 분노를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어. 무시받거나 자존심이 상한 일들. 가정환경이 어려워 저마다 애쓰고 있음을 알기에, 이해하려 노력했었는데. 그러느라 상처받은 내 마음은 갈 곳이 없었나 봐. 그저 마음에 꾹꾹 눌러놓으니 터질 때를 기다리는 지뢰가 되어버린 거였어.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가족이 겹쳐 보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라. 명상을 안내하는 사람의 성별도 트리거가 될 줄이야. 그렇게 따로 도움을 받아 분노의 원인을 마주하고 비워내고 나니, 다시 강의실에 가서도 어려움 없이 집중했어.
몸에 대해서도 화가 많았어. 항상 피곤해서 가벼운 운동조차도 힘든 몸이거든. 원망만 했었어. 많이 먹어도 소화, 흡수가 안 되어 그런 건데, “많이 먹어라”, “운동해라” 잔소리를 피할 수도 없었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반대래. 최근 읽은 책들이 모두 ‘건강한 마음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라고 알려주네. 정말 마음이 먼저야. 힘든 마음이 많았으니, 몸이 아플 수밖에. 몸에게도 참회를 하게 되더라. 지난 일을 떠올려 비우기만 하는데도 몸이 또 아팠어.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던데 내가 너무 민감해서 그랬을 거야. 명상 1주 차에는 강의실 뒤에 방석을 깔고 누워서 명상했고, 2주 차에는 몸살 증상으로 기운이 없어서 도중에 응급실에 가서 수액까지 맞고 왔어. 더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어. 명상 3단계가 몸에 대한 마음 비우기거든. 그러나 집으로 돌아왔어. 메인 센터에서 빠르게 하면 좋긴 한데. 명상을 열심히 할수록 몸이 힘드니까, 천천히 이어서 할 생각이었어.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말씨 하나에도 화가 나. 지역 센터에 갔더니 또 남자분이 안내하시는 거야. 명상에는 집중을 잘했지만, 자꾸만 머릿속에서 시비 분별을 하는 나를 발견했어. ‘설명을 너무 못하시는군.’,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하다니.’와 같은. 물론 마음에 있던 것이 나올 뿐이기에, 모든 생각을 알아차리고 비우는 데만 집중했어. 한두 달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 ‘말씀을 이렇게 잘하셨었나?’ 싶더라. 때 묻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더 확실히 느꼈어. 안경에 때가 낀 건지 아닌지 안경을 닦아 보면 알게 되듯이. ‘아, 내 마음이 ‘틀린’ 게 맞았구나.’ 깨달았어. 맞춤법에 걸려서 상대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어.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