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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산다

지난 일을 후회하는 마음에게

by ViDA

연휴 동안 전에 없던 미열과 피로가 반복되니 신경이 곤두선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생각도 더 많아져. 뜬금없이 20년 가까이 지난 과거 일들이 떠올라서 이불을 차게 되는 거야.


아무도 비난한 적 없지만 혼자 괴로웠던 피자집 사건.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날에도 치킨을 시켜 먹는 것이 전부여서 잘 몰랐다고 변명해 본다. 고등학교 때 같은 활동을 하게 된 선배들이 피자를 사준다고 해서, 메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어. 잘 모르면 보편적인 메뉴를 고르면 될 것을, 그날따라 ‘갈릭’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 마늘 맛이 들어가서 특별히 더 맛있을까 싶어 골랐지. 그런데 주문한 피자가 나오자마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 정말 토핑으로 마늘만 가득 올라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 부끄러움에 선배들과 더 친해지긴 어려웠어.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뒤척이다 보니 새벽 글쓰기 시간이 왔어. 잠 못 들어 괴로워하느니,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견디기 힘든 마음이야 말로, 안아줘야 하는 마음이더라. 편지를 쓰려고 앉으니 놀랍게도 그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사그라들어.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어 고맙다.


편지를 쓰겠다고 하고도 고작 한 문단을 쓰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바람에 글을 이어 쓰기가 힘들었어. 이런 순간은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후회할하려고 해도 후회할 수가 없지. 그래도 글쓰기 모임을 신청한 과거의 내가 고마울 따름이야.


후회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누군가를 의심했던 일, 사과하지 못했던 것, 멍청했던 선택, 상처 준 일, 속상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속상하다고 표현해 버린 것, 속상함을 느꼈던 것마저도.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이 있지도 않은데. ‘왜 그랬니’ 하며 과거의 나를 탓하고 있는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뒤따라와.


아니,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이 뭐가 어때서?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나 봐.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누구나 서툴고 이상한 순간들이 있어. 아무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고 하지만, 전체는 백일 수도, 백만일 수도 있는걸. 하나는 하나일 뿐이야.


사람들이 후회하는 지점은 다 달라. 너무 열심히 산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어. 작은 일은 잘 넘기지만 큰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큰일은 잘 받아들이지만 작은 일에 반추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이러나저러나 후회하는 사람도 있고, 후회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 공통점은 하나야. 시간은 모두에게 한 번만 주어진다는 것. 그 누구도 지나간 일을 바꿀 수 없다는 거야.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할걸.’ ‘그건 하지 말걸.’ 속삭이는 너를 ‘껄껄이’라고 이름 붙인 적이 있어. 그나마 ‘다음’이 있는 일들에는 후회를 발판 삼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지.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의미 없는 반추만 반복할 뿐이었어. 과거도 미래도 바꿀 수 없지만, 다행히 오늘이 있어. 어쩔 수 없는 것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대신, 오늘 이 순간만큼은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해 보려고.


후회는 괴로워. 그런 실수,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한 거니까. ‘하지 않을 수 있었다.’라는 게 착각이겠지만 말이야. 다시 돌아간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실수’라고 부르고 싶지만, 사실 그 당시 나름대로는 ‘최선의 선택’이었잖아.


생각해 보면 후회라는 것도,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에서 오는지도 모르겠어. 순간적인 그 실수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우주의 계획이었나 싶거든. 순간이라는 계단을 딛고 지금에 왔기에, 무엇 하나 바뀐다면 지금 있는 곳도 달라질 거야.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과거를 바꾼다면, 소중한 것들도 함께 사라지겠지.


오늘만 산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야. 삶은 어제에 있지도, 내일에 있지도 않으니까.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너는 아마 ‘더 사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지. 후회하는 모든 순간도, 나를 힘들게 하는 내 마음조차도 조금 더 사랑할걸. 그것만 남네. 후회해도 괜찮아. 나는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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