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하는 마음에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부럽고 질투 나던 때가 있었어. 너는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였지. 사소한 다름에 대해서도 수치심이 몰려왔어. 단순히 ‘나에게는 없고 남에게는 있는 것’이 문제는 아니었어. 주로 그토록 원하지만 닿을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은 특별하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누리고 있을 때. 그때 너는 더 뜨겁게 나를 집어삼켰지. 특히 ‘가정환경’과 관련해서.
다름을 아는 것과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잖아. ‘나는 어긋나 있다.’라는 인식과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내면의 시선이 너를 부추겼지. 마주하면 너무 아파서 외면했지만, 돌아보니 너는 늘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고 있었어. 이제는 너를 느낄 때,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마주하곤 해.
가끔 누군가 나를 질투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었어. 며칠 전, 오랜만에 명상센터에 가서 ‘질투하는 마음’을 주제로 삶을 돌아보았지.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어. 어린이집 성탄절 행사 때였어. ‘비교’를 시작해 그것을 열등감으로 가져왔던 최초의 기억이야. 어린 나의 눈에도 내 옆의 친구가 화장을 해서 평소와 다르단 걸 느꼈거든. 엄마가 아무것도 챙겨주지 않은 내 모습이 초라하더라고. 그 마음을 버리는데 새삼 눈물이 나더라.
엄마의 최선을 원망하지는 않아.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병을 앓았고, 재발할 때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으니까. 경제 활동이 어려운 아빠 대신, 엄마가 어린 나를 업고 우유 배달도 하며 생계를 꾸려가셨어. 한두 달씩 집을 비우던 아빠가 사실은 할아버지 댁이 아니라 병원에 가느라 그랬다는 걸 나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알았어.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우리 집과 너무 다른 풍경이 많았어. 엄마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간식, 퇴근하는 아빠가 사 오는 치킨을 기다리는 일, 가족끼리 시시콜콜한 장난을 주고받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다름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자라나면서 점점 우리 집엔 친구를 초대하지 않게 되었어. 하지만 네 덕분에 분명해진 게 있었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화목한 가정’이라는 거. 그래서 지금 나는 장난기 많고 따뜻한 남편과 살게 되었네. 매일매일 웃을 일이 가득해.
질투 받는 일이 두려워진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 나는 따돌림을 당했고, 엄마가 나를 따돌린 친구 집에 찾아가셨어. 그 친구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더라. “부러워서 그랬어요.” 내가 선생님께 칭찬을 받는 모습에 질투가 났다고. 믿을 수 없었지. 나는 ‘잘 사는’ 그 친구를 부러워하던 중이었는데 말이야. 그날 이후 괜히 튀어서 누군가가 나를 질투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더 움츠러들었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부럽다.”라고만 말해도 불편함이 일어서 말문이 막혔었어. 너를 품는 일도 두려웠고, 누군가의 질투를 받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지.
3년 차 때, 마음의 통증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나서 장기 병가를 내야 했던 때가 있었어. 그때 동료로부터 “부럽다.”라는 말을 들었어. 아파서 쉴 수 있는 내가 부럽다는 거야. 내가 세상 모두를 부러워하듯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서 부러운 점을 찾을 수밖에 없나 봐. 너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이니까. 부러움과 질투는 다름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어.
활력이 넘쳐야 할 20대에 장기 휴직을 하며, 어지러워서 누워 있어야 했던 시간이 길었어.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글을 쏟아냈지.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에 힘을 얻었지만, 나는 여전히 ‘멈춰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하고 싶지만 못한 것을 이미 많이 해 온 친구에게 “부럽다.”라고 했더니, 친구가 말하더라. “너는 아파봤잖아.”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어. 그래, 내가 아팠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었지.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니, 각자의 삶에서 저마다 다른 것을 쌓아 가고 있지. 나의 다름을 끌어안으니, 너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어. 부럽다는 건 그것을 원한다는 뜻이더라. 나는 닿을 수 없다며 한계를 정하는 일을 그만두었어. ‘아직’ 닿지 못했을 뿐이거든. 너를 이해하고 나니, 다른 사람의 마음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어. 이제는 나를 향한 “부럽다.”라는 말에 마음을 닫아 버리지 않아. 그저 웃으며, “나도 네가 부러워.”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 너는 나를 이끌어주는 안내자였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