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민하고 여린 마음에게
너무 예민하고 여린 나의 마음에게 첫마디를 떼려고 마음을 집중하는데 눈물부터 난다. 다름이 아니라, 네가 있어 축복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
책을 쓰겠다는 의지로 동네책방 글쓰기모임을 신청했어. 그리고 다른 모임에서 새벽 글쓰기도 시작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너를 향한 글 한 편 한 편이 탄생하고 있지. 매번 글을 쓰면서도, 글을 함께 나누는 순간에도 눈물이 흐르네. 마음이 잘 담기고 있다는 뜻이겠지? 글쓰기모임에서 MBTI 성격 유형 T인 분들이 도대체 왜 우냐고 물으시기에 우는 게 아니라 단지 눈에서 물이 나오는 거라고 답했어.
예민해서 예민하다는 말도 상처가 되곤 했어. 예민하다는 말은 곧 누군가를 찌르고 말 것 같은 뾰족한 느낌이잖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 괴로웠어. 예민한 마음의 뾰족함은 실은 자신을 향하고 있거든. 나에게 박혀 있는 가시가 많으면 예민할 수밖에 없더라. 명상으로 마음에 받힌 가시들을 뽑아내면서 예민한 상태가 변하는 것을 보고 확신하게 되었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안에 박혀 있는 가시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그것을 자극하는 타인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 안의 가시를 빼야 그 고통이 끝이 나. 손가락 끝에 가시 박혀본 적 있지? 그 가시는 눈에 보이지 않다가 그 부분을 건드리면 통증이 오잖아. 그럴 때 나를 건드린 무언가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박혀서 아프구나 깨닫고 빼내면 괜찮아지지. 마음도 똑같아. 알아차려야 뺄 수 있으니 그걸 알려주는 상황에도 고마울 따름이야.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가시도 많고, 삶의 모든 자극이 고통스러울까 궁금했어. 너를 원망했지. 그런데 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함 사람』에서 ‘매우 민감한 사람(HSP:Highly Seneitive Person)’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이후로는 시선이 달라졌어. 체크리스트 항목 23개 가운데 12개 이상이면 HSP라는데, 20개 정도가 모두 내 이야기인 거야. 내가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 다른 사람도 그런 특성을 가졌다고 하니 온전히 이해받는 기분이었어. 주변에는 잘 없지만 다양한 계기로 비슷한 사람들과 이어지는 것도 큰 힘이 되었어.
지금은 누가 나더러 예민하다고 말해도 상처가 되지는 않아. 인정할 수 있어. 가시투성이 마음속 숨은 가시들을 열심히 빼내고 보니, 전보다 둔감해지기도 했고. 예전 같으면 화가 치밀었을 것 같은데 괜찮은 나를 발견하곤 하거든. 하지만 나의 ‘민감함’은 더 또렷해지더라. 다른 사람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인지한다거나, 타인의 감정의 영향을 받아 쉽게 소진된다거나 하는 나의 특징들. 그것은 내가 ‘매우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는 고통이었어. 민감한 사람일수록 마음에 가시도 잘 박히고 그래서 더 예민한 사람이 되기 쉬워. 하지만 예민한 상태에 있다고 모두 민감한 사람은 아닐 거야. 민감한 사람이라고 해도 나만큼 예민하지는 않을 테고 말이야.
누군가 나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가벼워졌다고 하면 덩달아 기뻤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것보다도 더 힘든 감정에 빠져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어.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그때는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타인의 감정까지 떠안는 일이 고통이었는지도 몰라.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이제야 오롯이 나를 위해 마음을 쏟아 본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편안하게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 상대가 힘든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예전만큼 버겁지 않더라. 마음 없이 들어준다는 게 이런 건가 봐. 마음이 비워진 만큼 상대를 품을 수 있는 거였어.
솔직히, 너무 예민하고 여린 마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말도 못하게 어려운 일이야. 그럼에도 이제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너를 숨기고, 감추고,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게 부끄러워. 네가 신호를 보낼 때, 마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알아줄 준비가 되어 있어.
너는 나의 고유함이었어. 민감함은 재앙이 아니라 재능이었더라. 덕분에 내면의 여러 마음을 잘 알아차렸지. 너의 섬세함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녹일 정도로 참 따뜻해. 나를 이해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안아줄 수 있을 거야. 그동안 외면해서 미안해. 이 민감함이라는 축복을 다정하게 누리면서 살아가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