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에게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을 ‘너’로 칭하며 편지를 쓰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해. 꼭 너에게 화해의 편지를 쓰고 싶었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널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걸 알거든.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해. 누군가 나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는 건 전체가 아닌 일부일 뿐이잖아. 온전한 이해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나를 돌아보는 일이 참 어려웠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걱정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도대체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불쑥불쑥 솟아나던 그 내가 말이야. 이제 그 마음은 단지 지나간 마음이기에 ‘너’라고 부르는 거야. 그 마음 자체이면서도, 너는 결코 그 생각 속에만 빠져 있지는 않았지. 내가 존재하는 건, 절망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견뎌 주었던 네 덕분이야. 고마워. 정말 그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아.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삶을 돌아보며 마음을 마주하고 비우니 자유로워졌어.
지난 삶을 돌아보고 비우는 명상을 1년쯤 했을 때였어. 아,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그 과정도 다 달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전하는 거니까 오해는 없었으면 해. 열심히 빼기 명상을 하는데 엄마 뱃속의 내가 떠올랐어. 정말 그때의 기억이 아니라 크면서 들었던 이야기로 갖게 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 생각 한 톨이 강력하게 삶을 지배하고 있었나 보더라. 집 상황이 어려워서 엄마에게 아기를 지우길 권했던 친척도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거든. 물론 엄마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대. 그런데도 머릿속에서는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드니까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함께 떠올라 눈물로 그 마음을 비웠어.
이 장면이 떠오른 것도 벌써 10년 전이야.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오느라 그렇게 힘들었나 봐.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지. 그렇게 인정받아야만 사랑받는다고 느꼈어. 마음과는 달리 오히려 주변에 피해만 주게 될 때, 참 고통스러웠어. 그럴 때마다 차라리 내가 사라지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 마음의 뿌리를 뽑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명상 덕분에 그 마음이 싹 사라지고 나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게 된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마음은 허상이라서 버릴 수 있는 거더라. 놀라웠어.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 허상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렴풋이 알아차렸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어. 친구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을 때 말이야. 그때 함께 떠오른 사람 때문에 화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소한 것으로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잖아. 그 뒤로 쭉 화를 삼키며 사느라 고생은 좀 했어도, 명상만큼은 참 쉽게 할 수 있었어. 그것이 허상이라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마음이 99만큼 쌓여 있을 땐 1만큼의 자극에도 100만큼 폭발하느라 화가 날 때도 눈물만 흘러서 할 말도 다 못 했는데. 비우니 좋더라. 이제는 화가 나더라도 차분하게 말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 할 말을 다 하니까 더 못돼지기도 했지만, 명상을 한다고 해서 완벽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살아가면서 계속 나를 돌아보는 것이지. 지금처럼 나의 마음에게 작고 다정한 회복의 말을 건네면서 말이야.
절망 속에 있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야. 어릴 적부터 종교는 있었는데, 대학 때 다시 찾게 되었을 때 거기서 “원래 사람은 행복하도록 태어났다.”라고 하더라.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길 잘했어. 그런데 또 노랫말에서 “나를 버려야 한다.”라고도 하더라? 왜 내가 행복해야 한다면서 나를 버리라고 하지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또 속는 셈 치고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잠시지만 ‘나’를 버린 자리에 채워지는 무언가를 경험했어. 그 뒤로 내 기도는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다 버리고 순리대로 살게 해 주세요.”뿐이었어.
첫 발령을 받던 해, 선배 선생님 소개로 마음을 비우는 명상 방법을 알게 되었어. 11년을 하고 나면 엄청나게 달라질까 싶었으나, 답답한 순간도 많았어. 처음에 명상을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게 해 줬던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끝까지 남아서 괴로운 거야. 그 마음이 뿌리 같은 것이었나 봐. 죽은 나무의 가지를 치고, 줄기를 무너뜨려도 가장 끈질긴 밑둥치가 있잖아. 새로운 씨앗을 심으려면, 죽은 것은 솎아 내야 했지. 나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새롭게 삶을 배우고 있어.
미안해. 그동안 너를 미워하고 외면했던 것을 사과할게. 그렇게 힘든데도 괜찮은 척을 얼마나 많이 하면서 살았니?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야. 곪아 있던 마음을 그대로 안은 채로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믿고 있었지 뭐야. 숱하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새로운 과제로 나를 시험하더라. 나는 또 넘어지면서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했어. 그래, 그 덕분에 네가 아직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야. 괜찮지 않은 나를 마음 깊은 곳에 가두어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을 지금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의 마음아. 이제는 사라졌기에 너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어. 마주하고 안아주어야만 비로소 너를 떠나보낼 수 있었지. 오늘을 새롭게 시작해 볼게. 오늘은 날마다 처음, 지금 이 순간은 늘 우리에게 처음 오니까. 나에게도 빛이 비치고 있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세상이 나를 온 마음으로 환영하고 있음을 기억할 거야. 나를 위한 이 편지가, 우리를 닮은 또 다른 마음에게도 작은 빛으로 닿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