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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이름들

나의 눈물에게 쓰는 편지

by ViDA

명상을 만나기 전에는 ‘가족’의 ‘ㄱ’ 자만 떠올려도 눈물부터 쏟아졌어. 그런 마음을 품은 채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 날아오는 ”왜 울어?“에 답하지 못한 채, 나 자신조차 너에게 ”도대체 왜?“ 다그치기만 했었어.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었겠니.


두 돌을 맞이한 딸이 이제는 말로 “도와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데도 가끔 짜증 섞인 울음으로 욕구를 표현할 때가 있어. 다그치지 않고 차분하게 마음을 읽어주면 뚝 그치고 말로 표현하더라. 운다는 사실 자체로 비난받아서는 안 돼. 그리고 나처럼 이유도 모르고 눈물만 흘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했어.


나는 눈물 부자야. 아직 나보다 눈물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사람들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기 때문이려나. 살면서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날보다 눈물을 흘린 날이 훨씬 더 많아. 너무나 행복하게 보낸 최근 일주일 동안에도 눈물 흘린 날이 사흘은 되거든. 과거에는 1년 중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지. 너는 그렇게 끊임없이 알려주었어. 내 마음을 알아주라고, 안아주라고, 돌봐주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방법을 몰랐기에, 언제 어디서든 마구 쏟아지는 너를 원망하기만 했어. 참으려 해도 넌 꼭 할 말을 하고야 마는 아이처럼 흘러나왔지. 어떻게든 내 안에서 나가야 한다는 강한 의지라도 가진 듯이. 그래서 더 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어.


지난주에도 상담을 하면서 눈물 한 바가지 쏟았어. 의아하기도 하더라. 11년 넘게 명상을 하면서 비워냈다고 생각했던 마음인데 싶어서. 분명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남아 있었던 거야. 유리창을 닦을 때 한 번에 지워지는 때도 있지만 오래 묵은 때는 조금 더 반복해야 지워지는 법이잖아. 눈물은 나에게 신호와 같았어. 너는 그렇게 내가 더 깊은 마음을 마주할 용기를 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지.


마음공부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마음을 비웠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 마음을 돌아보고 비운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야. 지금 나의 마음을 계속 관찰하고 돌아봐야 할 일만 남는 거지. 이를테면 마음 빼기를 한다면서 ‘나는 마음 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더하기 하면 무슨 소용이겠어? 그 마음조차도 비우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빼기인데 말이지. 내 이야기야. 명상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수록, 그 경험마저 마음속에 넣고는 더, 더,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더라고. 하지만 명상은 내가 완전히 바뀌는 공부가 아니라, 그저 나로 돌아가는 공부였어.


‘아,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눈물에게 이름을 붙여준 순간, 서럽던 울음이 사라졌어. 다 같은 눈물인 줄 알았더니 너는 참 많은 이름이 있었더라.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 질투하는 마음, 혼자가 두려웠던 마음 등등. 그 마음 하나하나를 마주하고 안아주기 위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무수한 이름을 가진 내 눈물아, 마음을 마주할 용기를 주어서 고마워. 덕분에 다른 이들의 눈물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에 눈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대. 깊이 마주하기 때문에 눈물도 흘릴 수 있는 것이지. 너로 인해 때로는 오해받고, 당황스럽고, 불편한 순간도 있었지만, 네가 바란 건 오직 나의 평안이었지. 이제는 알아. 눈물은, 마음이 보낸 가장 다정한 신호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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