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을 삼키던 마음에게
목구멍에 돌덩이라도 있었나 봐.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들이 하나 같이 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멈췄었거든. 다급하게 ‘안 돼! 그 말을 했다간 비난받을 거야.’라고 외치는 네게서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들이 나에겐 많았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 모난 마음이 들키는 것, 상황에 맞지 않는 눈물 때문에 오해받는 것 등등. 쉽게 상처받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네가 나설 수밖에 없었을 거야.
글이라도 쓸 수 있어서 감사한 날들이었어. 하지만 목으로만 말을 삼킨 게 아니야. 나만 아는 일기장을 채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SNS에 글을 쓸 땐 검열에 검열을 거듭해야 했잖아. 피곤한 일이었어. 그나마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어도 발행한 글은 주워 담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지. 너는 똑같이 속삭였어. ‘안 돼! 이 글을 썼다간 비난받을 거야.’ 그나마 이제는 까마득해진 너인 줄 알았는데. 책 쓰기를 위한 글을 쓰다 보니, 너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상하게 글이 써지지 않아서 마음을 따라가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어. 소리 내어 엉엉 운 건 오랜만인 것 같아.
모든 글을 ‘눈물’과 함께 쓰고 있다니. 진심이 가득한 건 좋은데, 읽는 이에게는 부담이면 어쩌지? 나의 아픔을 꺼내는 일이 도리어 비난으로 돌아오면 어쩌지?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면 어쩌지? 책 쓰기, 포기해야 할까?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정말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기는 할까? 과연 도움이 될까? 밑도 끝도 없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생각 속에서 2주 전 글쓰기 친구의 타로 리딩이 떠올랐어.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지인이 선물로 응원의 타로를 봐줬었거든. 책 쓰기를 위한 조언으로 “자기 의심을 하지 말 것”이라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나오더라고. 덕분에 자기 의심을 멈출 수 있었어.
이 편지는 새벽 글쓰기 모임 덕분에 마저 쓸 수 있었어. 서로의 글을 피드백하는 날이 있어서, 오늘은 꼭 완성해 보겠노라 용기를 냈거든. 아무리 너를 떠올렸다고 해도, 이렇게 글이 안 써질 줄은 몰랐어.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 두려워도 계속 써 보려고 해.
사실 요즘은 할 말을 못 해서 후회하는 게 아니라 하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야. 중간은 어렵네. 그래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좋아.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병이 났었거든. 상처를 주고받기 싫어서 말을 삼켜도, 그것이 도리어 남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고. 막상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아도, 너의 두려움만큼 비난받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더라. 잘 됐지?
어릴 때 엄마에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빚을 내서라도 시켜주려고 하셨어. 대신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여 다투는 소리에 잠을 설쳐야 했지. 나는 우리 집이 조금이라도 더 평화롭기를 바랐기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속으로만 생각하게 되었어. 나중엔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믿어버렸지. ‘굳이’ 갈등을 만들면서까지 하고 싶은 건 없었어. 아마 다시 돌아가도 그런 선택을 했을 거야.
그런데 11년 전, 명상을 시작한 첫 주에 안내자가 불러주는 주제 가운데 ‘하고 싶은 것’에 가장 먼저 반응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야.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꾹꾹 누르고 있었던 거였어. “어른스럽다.”라는 칭찬에 정말 어른이라도 된 줄 알았건만. 사실은 아이답게 떼도 쓰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더라. 아닌 척을 했던 거지. 애어른으로 살던 나는 정작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더 아이 같이 살고 있어.
때로는 “너희 아빠는 뭐 하셔?” 이런 사소한 질문에도 머뭇거렸어. 가족 이야기는 말이 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쏟아지고 말았으니까.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는 이들에겐 늘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 용기 내서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낸 날에도,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이도 없었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말을 삼키는 것이 나았어. 정말 그랬어. 그땐 그게 최선이었지.
돌아보니 나는 내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고, 모날 수도 있고, 이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더라. 결점 없는 사람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착각했던 모양이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점이 있다고 해서 나를 미워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미움받을까 봐 말을 삼켰으면서, 미움받을 거라는 불안은 여전히 남아서 계속 나를 따라다녔어. 말을 삼킨다 해서 품고 있는 생각이 사라지지는 않거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나를 떠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많은 인연이 그렇게 멀어져 버리고 말았어.
하고 싶은 말을 삼키게 했던 많은 마음을 비우니 진정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또렷해졌어. 나에게는 갈등을 풀고 싶고, 모난 것을 품고 싶고, 이상한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있었어. 말을 삼키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을 몰랐을 뿐. 이제는 알겠어. 갈등의 원인이 되고, 모나고, 좀 이상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니 좀 편해. 그러면 좀 어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갈등이 없기란 어려워. 갈등이 있더라도 잘 해결해 가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려면 ‘나’를 잘 들여다봐야 하더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고. 그래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들을 수 있어.
고생 많았어. 이제는 좀 쉬렴. 목을 막고 있던 돌덩이가 조금씩 흘러내려 그 자리에 바람이 스치고, 빛이 드는 걸 느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아도 괜찮고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어도 괜찮아. 말이 꼭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건 아니더라. 침묵으로, 눈물로, 글로, 마음의 결로 흘러나오는 것들도 모두 나의 언어였어. 그 모든 흐름이 나라는 걸 알아. 흐름에 나를 맡기며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가 되어 볼게. 이 마음이 흘러 어디에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그동안 나를 지켜줘서 고마웠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