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두려웠던 마음에게
안녕? 혹여나 안녕하지 못하더라도, 어째서인지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세상 혼자인 것 같은 마음에 오늘도 혼자 눈물을 쏟느라 휴지를 쌓아두고 부지런히 코를 풀고 있을지 모르는 너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더라.
혼자가 두려운 마음, 지금도 여전해. 사실 요즘도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서 외출할 때 먼저 나가 있겠다는 남편에게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거든. 다만 전처럼 나의 감정을 모른 척하거나 원망하지는 않게 되었어. 작은 불편함이 일 때도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살피며 나를 도닥여주고 있지. 그러니 너는 얼마든지 울어도 된다는 걸 기억했으면 해. 네가 마주했던 감정들과 쏟아냈던 눈물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최근에 남편과 아기와 함께 배를 타고 제주도로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어. 스무날 중 엿새는 친정엄마와 오빠, 나흘은 시부모님과도 함께였어. 놀랍지? 어릴 적 가족 여행이라곤 다섯 살에 해수욕장에 갔던 것이 전부였는데 말이야. 다들 아기 우주가 보고 싶어서 제주까지 날아왔다는 거야. 벌써 두 돌을 바라보는 우리 딸 우주가 있어서 더 완벽했던 여행이었어.
지인도 많이 만나서 우리 가족끼리만 있거나 혼자인 시간이 거의 없었어. 나의 회복을 위한 여행이기도 했지만, 사람 좋아하는 우주 때문에라도 같이 놀 아이가 있는 지인과 약속을 잡게 되더라고. 마지막 날에도 기어코 여행 초반에 만났던 소울이 오빠를 한 번 더 만나서 놀다가 배를 탔어. 행복해하는 우주를 보며 덩달아 한참을 웃었어. 신나게 놀고 헤어지는 순간마다 우주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안녕이 아니라 "같이 놀자"라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날마다 "같이 놀자" 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남편을 만나고 내 삶이 많이 바뀌었지. 남편은 ‘칭요’라는 별칭을 쓰고 있어. ‘칭찬의 요정’이라는 뜻이야. 별칭처럼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잘 건네는 따뜻한 사람이야. 칭요를 만나기 전에 나는 지금보다도 심각한 일 중독자였어. 말하자면 칭요는 집에 있을 때도 일만 하다가 침대로 비로소 진짜 퇴근을 하던 나에게 "같이 놀자"(라고 말로 하진 않았지만) 하며 손을 잡아끄는 사람이었어. 주로 칭요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본다든지, 드라마를 정주행 한다든지, 대부분 그가 원하는 것을 함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내가 원했지만 스스로는 선택하지 못했던 삶이었어.
나도 실은 노는 게 제일 좋아. 어린 시절에는 온 동네를 누비며 뛰어놀았고, 친구들과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즐기기도 했잖아. 약속 없이 친구 집에 찾아가 "같이 놀자" 하곤 했었지. 언제부터인가 현실적인 이유들로 마음 편히 놀 수가 없었을 뿐. 마음이 어려우면 공부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어. 사람은 마음이 즐거울 때 더 잘 배우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말이야. 어찌할 수 없는 나의 환경과 감정들에 매일을 눈물 속에 살면서 도대체 행복이 무엇일까 궁금해했지. 그러다 나름의 결론을 내렸어.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꿈을 꾸었어.
그 꿈에 가슴이 뛰다 보니, 어느새 일 중독자가 되어 있었어. 다른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도 없이 그저 편안하게 있을 때,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 그런데 욕심을 내서 모든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다 나를 혹사시켰어. 몸과 마음이 고장 나서 출근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나를 먼저 돌보지 못했던 것을 반성했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내가 쓸모 있다고 여겼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러니 그렇게 타인의 부정적인 말이나 피드백에 민감했지. 이제야 시선을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가져오기 시작했어.
다른 이와 잘 놀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에게 먼저 "같이 놀자" 말할 수 있어야겠더라. 외로움 속에서 허우적 대느라 함께 있어도 함께 하는 법을 몰랐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신나게 같이 놀았어. 그 안에서 나를 아끼는 마음도 잊지 않았어. 칭요의 친구들은 모두 잘 노는 사람들이었어. 혼자서도 잘 노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더라. 나이가 들어도 우리 모두는 아이와 다르지 않아. 삶이 곧 놀이가 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구별 여행이라는 말도 있잖아.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일상에서도 여행처럼 지내고 있어. 일단 나 자신과 같이 잘 노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해.
너에게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못나게 울면서 휴지를 쌓아두어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인걸. 우리, 같이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