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은화 Sep 15. 2023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서 0901

Day 1. 일단은 기록부터!  

 

'나에게 불면은 불치병이다.'


나에게 불면은 불치병이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 병. 이후로 평생을 불면과 함께 불안하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마냥 저주와 비극으로 볼 것은 아닌 것이 본의 아니게 밤을 충실히 지키다가(?) 예민한 시적 감성을 가지게 됐다. 불면이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라도 치유하고 싶다. 정말 끝장내고 싶다. 아침에 글도 쓰고 운동도 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나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시작해본다. 나름 준비도 해온 것 같다. 나의 불면 퇴치 프로젝트, 시작한다!


c'est parti!!!  

                               (불어로 '출발!')




누운 시간 (smart phone off): am 00:30

기상 시간 1차: am 04:45

기상시간 2차: am 07:00

success/ fail: S

누운 장소: 소파 (최근 스튤 추가로 누울 수 있게 됨.)

수면등 on/ off:  on

자기 직전 행위: 1)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마침 거기 서 있다가' 아이패드앱 낭독 (녹음)

2) 예거마이스터 (리큐르) 35도 샷 한 잔.

수면도움 아이템: 스팀 눈 마스크 착용, 다수의 쿠션


메모: 시작 첫날부터 의외로 성공, 스팀 눈 마스크가 큰 효과를 발휘한 듯. 오후에 피아노 레슨을 손이 떨릴 정도로 열심히 한 후유증과 보람이 작용한 듯.

무조건 스마트폰을 끄기로 함. 

 



[불면 퇴치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시작한 이유들]


-(대전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음. 망함.

-불규칙한 생활로 체력 급격 저하됨. (중년의 위기 감지, 코로나 때 망가진 생활습관)

-다이어트를 위한 밑작업 (주1회 조깅, 주 1회 수영을 2회, 3회로 늘리고 싶음)

 (여친이 배를 통통 튕기며 재밌어 할 때 수치심 느껴짐, 내 배는 결코 귀엽지 않음!!!)

-아침에 글도 쓰고, 운동도 하는 사람으로 자랑하고 싶음.

-단편이 아닌 장편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이젠 짧은 글이 아닌 호흡이 긴 서사를 쓸 때가 왔는데 몸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애인과 어긋나는 하루 사이클 맞추기! (애인은 교사라 10시에 자고 다음날 6시 정도에 기상하는 사람)



내 깊고 깊은 불면증의 시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일 후회해서 뭐하나 싶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연애사에서 발등을 찍고 싶은 몇몇 결정적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2 시절이다.

반드시 발등을 찍어야 하는 아주 결정적인 장면이다. 당시 나는 교회를 누구보다 열심히 다녔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도 있었지만 (결코 없지 않았다.) 교회 성가대에 짝사랑하는 또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그 아이가 더 나에게 적극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표했다. 그런데 그 애정이란 것이 이성에게 갖는 호기심은 전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순수한 우정의 차원에 불가했다. 그런데 그 사실이 큰 실망으로 아쉽게 끝났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리 되질 않았다.


그녀 역시 최악이었다. 그녀가 나를 동성친구보다 더 편하게 생각하고 다가오면서 비극은 심각해졌다. 그녀는 당시 내 절친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맘처럼 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냥 나를 좋아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차에 그녀는 나를 만난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통해 내 친구에 대한 정보와 감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견디기 힘든 감정이 생겼음에도 나는 따뜻한 정보원 역할을 충실히도 했다. 왜냐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했기에 그 역할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기랄!!


내 친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그녀를 좋아하고 아끼는 내 앞에서 그녀는 아파하고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나는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됐다. 그런 내 맘도 모르고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라며 내 손도 편하게 잡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터치지만 스킨쉽이 자연스러웠다. 바보 같은 나, 아니 바보인 나는 그저 좋았다. 우린 세상은 모르지만 특별한 사이니까...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 새벽 세 시에 전화가 걸려 온다. 조심스럽게 받으니 그녀였다. 나는 왜 깨어 있었을까?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내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슬퍼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 날이 밝았다. 우리 사이는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그 다음날도 새벽에 전화가 왔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2주 혹은 3주가 지났을까...

그녀는 내 친구와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됐고, 그녀가 바라마지 않던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당연히 그 뒤로는 새벽에 전화가 올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났음에도, 쫑 났음에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벨소리가 무의식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환청이 들려왔다. 아무리 부정하고 싸워도 나는 밤에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불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뒤로 마음대로 잠을 자는 일이, 편하게 자는 일이 나와는 멀어져 버렸다. 꽤 오래 짝사랑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신이 인간에게 주는 달콤한 잠을 영영 상실하고 말았다. 신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인간을 열렬히 흠모한 벌을 받은 것이다.


*우울감을 덜기 위해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면, 너무 잠이 안와서 클래식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교향악단의 곡을 들으면 안 오던 잠이 오기도 했다. 클래식은 지루함,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렇게 지루한 클래식이 나를 구원하는가 싶었는데, 우연히 쇼팽을 만나면서 무너졌다. 쇼팽의 왈츠와 발라드에 매료돼 잠은 커녕 음악에 빠져들어 밤은 더 길어지고 감수성은 묘하게 흘러갔다. 이후로 모든 인터넷 아이디는 10년 이상 'chopin'을 사용하게 됐다.




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다시 시도해보자!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보자!

찾다 보면 잃어버린 시간도 찾을 수 있으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