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일단은 기록부터!
'나에게 불면은 불치병이다.'
나에게 불면은 불치병이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 병. 이후로 평생을 불면과 함께 불안하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마냥 저주와 비극으로 볼 것은 아닌 것이 본의 아니게 밤을 충실히 지키다가(?) 예민한 시적 감성을 가지게 됐다. 불면이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라도 치유하고 싶다. 정말 끝장내고 싶다. 아침에 글도 쓰고 운동도 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나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시작해본다. 나름 준비도 해온 것 같다. 나의 불면 퇴치 프로젝트, 시작한다!
c'est parti!!!
(불어로 '출발!')
누운 시간 (smart phone off): am 00:30
기상 시간 1차: am 04:45
기상시간 2차: am 07:00
success/ fail: S
누운 장소: 소파 (최근 스튤 추가로 누울 수 있게 됨.)
수면등 on/ off: on
자기 직전 행위: 1)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마침 거기 서 있다가' 아이패드앱 낭독 (녹음)
2) 예거마이스터 (리큐르) 35도 샷 한 잔.
수면도움 아이템: 스팀 눈 마스크 착용, 다수의 쿠션
메모: 시작 첫날부터 의외로 성공, 스팀 눈 마스크가 큰 효과를 발휘한 듯. 오후에 피아노 레슨을 손이 떨릴 정도로 열심히 한 후유증과 보람이 작용한 듯.
무조건 스마트폰을 끄기로 함.
-불규칙한 생활로 체력 급격 저하됨. (중년의 위기 감지, 코로나 때 망가진 생활습관)
-다이어트를 위한 밑작업 (주1회 조깅, 주 1회 수영을 2회, 3회로 늘리고 싶음)
(여친이 배를 통통 튕기며 재밌어 할 때 수치심 느껴짐, 내 배는 결코 귀엽지 않음!!!)
-아침에 글도 쓰고, 운동도 하는 사람으로 자랑하고 싶음.
-단편이 아닌 장편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이젠 짧은 글이 아닌 호흡이 긴 서사를 쓸 때가 왔는데 몸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애인과 어긋나는 하루 사이클 맞추기! (애인은 교사라 10시에 자고 다음날 6시 정도에 기상하는 사람)
내 깊고 깊은 불면증의 시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일 후회해서 뭐하나 싶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연애사에서 발등을 찍고 싶은 몇몇 결정적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2 시절이다.
반드시 발등을 찍어야 하는 아주 결정적인 장면이다. 당시 나는 교회를 누구보다 열심히 다녔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도 있었지만 (결코 없지 않았다.) 교회 성가대에 짝사랑하는 또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그 아이가 더 나에게 적극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표했다. 그런데 그 애정이란 것이 이성에게 갖는 호기심은 전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순수한 우정의 차원에 불가했다. 그런데 그 사실이 큰 실망으로 아쉽게 끝났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리 되질 않았다.
그녀 역시 최악이었다. 그녀가 나를 동성친구보다 더 편하게 생각하고 다가오면서 비극은 심각해졌다. 그녀는 당시 내 절친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맘처럼 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냥 나를 좋아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차에 그녀는 나를 만난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통해 내 친구에 대한 정보와 감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견디기 힘든 감정이 생겼음에도 나는 따뜻한 정보원 역할을 충실히도 했다. 왜냐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했기에 그 역할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기랄!!
내 친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그녀를 좋아하고 아끼는 내 앞에서 그녀는 아파하고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나는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됐다. 그런 내 맘도 모르고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라며 내 손도 편하게 잡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터치지만 스킨쉽이 자연스러웠다. 바보 같은 나, 아니 바보인 나는 그저 좋았다. 우린 세상은 모르지만 특별한 사이니까...
그러던 어느날 우리 집에 새벽 세 시에 전화가 걸려 온다. 조심스럽게 받으니 그녀였다. 나는 왜 깨어 있었을까?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내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슬퍼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 날이 밝았다. 우리 사이는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그 다음날도 새벽에 전화가 왔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2주 혹은 3주가 지났을까...
그녀는 내 친구와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됐고, 그녀가 바라마지 않던 즐겁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당연히 그 뒤로는 새벽에 전화가 올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났음에도, 쫑 났음에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벨소리가 무의식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환청이 들려왔다. 아무리 부정하고 싸워도 나는 밤에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불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뒤로 마음대로 잠을 자는 일이, 편하게 자는 일이 나와는 멀어져 버렸다. 꽤 오래 짝사랑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신이 인간에게 주는 달콤한 잠을 영영 상실하고 말았다. 신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인간을 열렬히 흠모한 벌을 받은 것이다.
*우울감을 덜기 위해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면, 너무 잠이 안와서 클래식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교향악단의 곡을 들으면 안 오던 잠이 오기도 했다. 클래식은 지루함,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렇게 지루한 클래식이 나를 구원하는가 싶었는데, 우연히 쇼팽을 만나면서 무너졌다. 쇼팽의 왈츠와 발라드에 매료돼 잠은 커녕 음악에 빠져들어 밤은 더 길어지고 감수성은 묘하게 흘러갔다. 이후로 모든 인터넷 아이디는 10년 이상 'chopin'을 사용하게 됐다.
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다시 시도해보자!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보자!
찾다 보면 잃어버린 시간도 찾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