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서 미안해.
오래전,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은 여자가 내게 진지하게 죽음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왜 나에게 털어놓은 건지는 모른다. 단지 그녀는 나와 통하는 게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뿐 아니라, 누군가와 통한다는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전부터 내게 여러 가지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나는 언제나 내 일처럼 열심히 해결 방안을 모색하여 답했다.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위하는 방식이었다. 공감이나 따듯한 위로는 잘 안되더라도 말이다. 그동안 그녀가 그것을 좋아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그녀가 죽음을 고민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이전에 그녀가 말했던 수많은 고민 중 가장 쉽다고 생각했다. 죽으려면 방법은 많고, 그 방법들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그녀에게 어떻게 죽을 생각인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약을 먹고 죽거나, 어딘가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다.
난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적합하지 않고,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목을 매는 것이 가장 아프지 않고, 빠르며 확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힘들게 살아온 그녀였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고통 속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죽지 말고 전적으로 정신과에 기대 볼 것을 가장 추천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많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은 듯 지내보라거나, 정말 힘들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노숙을 하며 막살아보라는 등 여러 가지를 추천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죽었다 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말이다.
그녀는 내가 잔인하다고 했다. (난 고민 끝에 애써 내놓은 답변에 대고 잔인하다는 말을 하는 그녀가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는 고맙다고 했다.
그녀가 고맙다고 한 이유는, 내가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공감이나 위로의 말로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했다. 비록 이런 접근 방식을 잔인하게 느끼긴 했지만, 자신의 고민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면서.
결국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도 죽지 않았고, 노숙자가 되지도 않았다. 그녀는 힘들었던 기간 동안 나와 이야기한 그 시간에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로 오히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했다.(물론 모든 것이 내 덕은 아닐 테지만) 오래전이라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몰라도, 그때는 실제로 더 잘 살게 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원래부터 필요 없었고, 그녀에게도 내가 필요 없어졌으니 우리는 연락을 끊었다.
지금 누군가 내게 죽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때처럼 대답할 것인가?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실 돌이켜보아도 내가 그녀에게 어떤 위로를 해줬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아무래도 조금 더 유려하게 대처하고 싶다.
그녀가 잘 살고 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에 그녀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해결해 주려는 누군가가 존재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진심, 뭐 그런 걸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받으면 아무래도 조금은 더 살고 싶지 않겠나. 이런 마음이 든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그리고 그 각기 다른 존재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이 조금 더 힘을 내서 빛을 내비쳐주길.
더 잘 보이도록; 다가갈 수 있게.
멀리서라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