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녀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자주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특히 외상을 질 때 더 그랬다. 달동네 중턱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출입문에는 진돗개 코만 한 방울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 방울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을 여닫을 때의 초조함을 녹여줄 특별한 절차가 필요했다. 속으로 동요 섬집아기를 부르며 들어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하는 순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뒷부분을 이어 불렀다. 이러면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뇌에 여러 자극을 동시에 주어 방울 소리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원리가 아닐까 싶다. 근거는 없다. 우연히 이렇게 들어갔는데 잠시 편안했다. 그 이후로는 거의 강박적으로 이 의식을 거치며 들어가게 되었다.
주인아주머니 허 씨는 말투는 거칠어도 따뜻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성희 왔니? 뭐 줄까?』 허 씨가 가게에 딸린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엄마가 디스 두 갑, 과자 한 개 사 오래요. 돈은 내일 드린다고.』 그 친절한 면전에 대고 또 무전취식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늬 엄마는 만날 애한테 이런 걸 시켜, 다음부턴 직접 오라 그래! 안 준다고! 어휴, 과자 골라.』 그녀의 목소리는 깨진 병이 굴러다니는 소리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한참 동안 과자를 골랐다. 바닥에 펼쳐진 상자 속 과자들은 저렴했으나 당기는 것이 없었다. 입구에 놓인 시판 족발이 눈에 들어왔다. 비싸서 외상 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만져보고 싶어 꾹 눌렀다. 허 씨는 내 팔을 끌어당겨 계산대로 데려갔다. 가계부를 펼쳐 외상 내역을 보여주었다. 『외상/김혜숙: 디스플러스 4갑 4천 원, 맛동산 600원, 아이스크림 250원…』 내일은 꼭 갚으라고 했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가장 싼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물건을 담으며 냉랭하게 무언가 투덜거렸다. 이어 기다리라고 하더니 방에서 시판 족발을 가지고 나왔다.
『아줌마가 먹으려고 놔둔 건데, 오늘까지 먹어야 해. 며칠 지나도 괜찮긴 한데, 아휴 그냥 오늘 먹어.』 귀찮다는 듯이 유통기한이 다 된 족발을 툭 건넸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집에 가는 길에는 그것을 버리고 싶었다. 자괴감과 맞바꾼 족발을 입에 넣을 때마다 치욕을 씹어 삼키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팔에 건 봉지가 빙글빙글 돌며 손목을 조였다. 손목이 끊어져 나가는 게 이 굴욕감보다 덜 아플 것 같았다. 어머니는 허 씨의 반응을 물었다. 봉지를 열고는 당황하며 이 비싼 족발을 고른 거냐고 물었다. 나는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활기가 띠었다.
어머니는 작은 키에 100킬로가 넘는 풍만한 체구였다. 먹는 걸 아주 좋아했다. 지지리도 가난한 탓에 따끈한 족발은 연중행사였어도, 비교적 저렴한 시판 족발은 그녀가 즐겨 먹는 별미였다. 시판 족발 포장지에 가위집을 내면 진공으로 포장된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며 구미를 당기는 냄새가 올라왔다. 막상 맛은 그리 좋지 않았다. 뼈가 9할 9푼으로 느껴질 만큼 먹을 것도 거의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자다 깨어 보니 어둑한 새벽이었다. 어머니는 잠들지 못한 채 눈알이 벌겠다. 그녀는 이불 위에서 시판 족발의 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는 손을 쪽쪽 빨며 궁상을 떨었다.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던 내 입에 틈틈이 욱여넣었다. 야무지게 씹는 걸 보며 만족스러워하더니 족발이 영어로 무엇인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우습게 혀를 꼬아 「줙발」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연신 손뼉을 치며 뒤로 넘어갈 듯 대소했다. 다시 고개를 숙여 고무 같은 덩어리를 뜯어주었다. 붉어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쓸어내리며 미안하다고 했다. 왜 미안해한 건지는 모른다.
별로 우습지도 않은 소리에 박장대소하며 눈물을 감춘 그녀에게 그 족발은 무슨 맛이었을까. 무엇과 맞바꾼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