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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03. 2024

어두운 그림자 아래, 눈부신 가시의 탄생.

1화 1992년 7월 성희가 태어났다.


1992년 7월, 나 김성희는 매우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의 부모님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당시 어머니는 18세였고, 아버지는 30세였다. 그들은 자주 다투었는데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과 날카로운 도구 사용까지 서슴지 않았다. — 아버지는 어느 촌 동네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생계를 위해 14세에 서울로 상경했다. 막노동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는 한결같이 근면·성실하였고, 내가 태어날 즈음에는 업계에서 꽤 인정받는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직장에서, 언제나 밝고,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 성인의 모습을 보였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시고 귀가하여 갖은 폭력으로 가정의 평화와 가족의 인격을 학살하는 폭군이었다. — 어머니도 시골에서 태어나 15세의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했다. 그녀도 아버지 못지않게 문제가 많았다. 폭력성은 물론, 아버지 몰래 여러 곳에서 사채를 지고 도망 다니기도 하며, 가정의 위기를 가중했다.


여하튼, 부모님 말씀으로는 내가 아기였을 때 정말 온순했다고 한다. 태어난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울지 않았다며, 배가 고파도,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도 울지 않고, 계속해서 잠만 잤다고 한다. 가끔 눈을 뜨고 있을 때조차 칭얼거리지 않았고, 혼자서 허공을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고. 백일이 지나고 200일, 첫돌, 두 돌이 되어도 칭얼거리며 성가시게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가 항상 한자리에서 혼자 잘 놀았다며, 세상에 나 같은 아이만 있다면 100명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내게 자국 남은 첫 번째 기억은 3살 무렵의 어느 늦은 오후였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웠던 난,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내 존재를 알리고,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꾀병이었다. 어머니는 포대기로 나를 둘러업고 대문 밖을 나섰다. 그때 우린 서울에 있는 달동네 중턱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좁은 골목과 오래된 집들 사이에 낮게 어둠이 깔리고, 해 질 녘의 붉은빛이 그 위로 내려앉아, 곳곳에 금빛 물이 들었다. 그녀가 내 발을 감싸 쥘 땐, 구름을 밟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두툼한 등은 그 어느 곳보다 포근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장소로 느껴졌다. — 겨우 3살이었지만, 혼탁하면서도 달콤 선선했던 그때의 풍취가 생생하다. 어머니의 온도와 숨결, 달동네를 물들인 낮과 밤의 비율도 선명히 아로새겨 있다. 아마도 그녀가 자주 안거나 업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날의 모든 감각이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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